오랜만에 책 자체의 감성에 푹 잠겨 몰입해서 읽은 책이었다. 분홍색인지 회색인지 구분이 잘 안가는 이 책만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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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그녀'의 편지를 읽을 때는 눈물이 울컥울컥 차올라서 쉬어가며 읽었어야 했다. 그녀에게서 비춰지던 나 자신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슬펐다. 여자라면 어느정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생각했는데 "도대체 얼마나 못생겼길래 저정도 취급을 받는 지 궁금하지 않아요?" 하고 묻는 스터디원의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책에 나오는 대사들이 당연히 현실과 동떨어졌을 것이는 여기는 그 천진난만함이, 그 무지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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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어리석고 잔인한 사회의 현실을 전시하는 책이 아니라서 좋았다. 자신이 믿는 바가 무엇이고 이 책을 왜 썼는지 호소하는 작가의 말이 너무 따뜻하고 감동적이어서 벅차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은, 스스로 쳐놓은 울타리에서 나오는 것도 좋겠다, 아니 나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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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쏟아지던 우중충한 겨울 날, 그와 닮은 우중충한 노래를 들으면서 책장을 넘기던 날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내 고질적인 문제점을 고쳐나갈 용기를 얻어서 얼떨떨한 기분이다. 성벽이 부서질 것 같으면 더 두껍게, 습격을 당할 것 같으면 더 높이 쌓으면 그만이라 여겨왔는데 성벽을 무너뜨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예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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