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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손님
안드레 애치먼 지음
잔(도서출판) 펴냄
_ 그 시절을 돌아보면 조금의 후회도 없다. 위험천만한 모험이나 수치심,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통찰력 그 무엇도 후회되지 않는다. 서정적으로 비추는 햇살, 한낮의 강렬한 열기에 고개를 꾸벅거리는 커다란 식물로 가득한 들판, 나무 바닥이 끽끽거리는 소리나 침대 옆 협탁에 놓인 대리석 평판으로 재떨이를 살짝 미는 긁히는 소리.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적이었고 감히 헤아려 보지도 못했고 끝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았지만 굳이 이정표를 살펴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돌아오는 길을 위하여 빵가루를 흘리는 대신 다 먹어 치웠다. 알고 보니 올리버가 소름 끼치는 인간일 수도 있고 나를 영원히 바꿔 놓거나 망쳐 버릴 수도 있으며 시간과 소문이 우리가 나눈 모든 것의 내장을 드러내고 물고기 뼈만 남을 때까지 다 갉아먹을 수도 있었다. 내가 나중에 이 시간을 그리워할 수도 있고 훨씬 더 잘 살 수도 있지만, 그 시절 내 방에서 보낸 오후마다 내가 순간을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항상 기억할 것이다.
_ 확실한 것은 그에게 숨길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살면서 그렇게 자유롭거나 안전하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_ 나는 이 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 골목길은 어두컴컴했고 고대에서 내려온 듯 움푹움푹 팬 자갈길은 축축한 공기 속에서 반짝였다. 고대의 운반공이 도시가 땅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항아리에서 끈적끈적한 물질을 꺼내 뿌려 놓은 것 같았다. 모두가 로마를 떠났다. 너무 많은 것, 모든 것을 본 텅 빈 도시는 이제 우리만의 것이었다. 하룻밤 동안 시인이 그만의 이미지로 불러낸 도시 같았다. 찌는 듯한 더위라도 오늘 밤을 망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원한다면 동그랗게 서서 걸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걷는다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
달달한 로맨스가 필요할 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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