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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는 평생 ‘경험한 자아’와 ‘말하는 자아’ 사이의 간극에 시달렸다. 홀로코스트 피해자가 그 비극을 경험하지 않은 ‘특권’을 가진 자에게 베풀어야 하는 배려와 관용. 나는 이 부정의를 참을 수 없다. 나는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고통, 폭력, 슬픔이 연구되기 어려운 이유라고 생각한다.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고통이 언어화될 때만이 우리는 위로받을 수 있다. 내 고통이 역사의 산물이라는 인식만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그런 점에서 학문이란 무엇인가, 지식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작가의 말 중
한국 사회에서 ‘아내 폭력’은 언제나 아내(여성)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폭력으로 환원된다. 즉 한국 사회에서는 가정 폭력이 원래 의미인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아니라 가정에 대한 폭력으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 ‘아내 폭력’에 대한 접근 방식은 주로 ‘폭력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자’는 가족 유지를 근간으로 한 것이었다. 28p
위 사례 여성은 자신을 도와주어야 할 경찰이 완전히 남편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신고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데다가, 그럴 경우 남편의 체면이 손상될 것을 더 걱정하고 있다. 이들은 남편으로부터 학대당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남편의 수치,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데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아내 폭력’은 아내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행복한 가정에 대한 폭력이다. 그래서 이들이 떠나지 못하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집이다. 자신의 침묵으로 행복한 가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성이 가정을 대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내는 집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집 그 자체가 된다.
177-8p
공각 지각 능력은 개인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에서 능동성과 관련이 있는데, 특히 오랫동안 폭력당한 여성들은 공간 지각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수학자들에 의하면 수학에서 성별 능력 차이가 가장 현격하게 발견되는 분야는 공간 지각력인데 이는 여성이 수동적으로 사회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존재한다 혹은 살아 있다는 근거는, 곧 인간의 몸이 공간의 어느 구체적인 장소에 실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간이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로부터 ‘객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공간이 인식 주체자의 몸을 기준으로 삼아서만 특정하게 인식된다는 것이다.
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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