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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민음사 펴냄

가즈오는 이번이 두 번째다. 독자가 작중 상황을 편안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가즈오의 문체는 읽을수록 나를 끌어들이는데, 때문에, 정말 술술 읽힌다. 가즈오는 17년에 노벨상을 받았고, (노벨상을 받은 작가들이 고루하다는 건 아니지만 결국 대부분은 취향 차이다) 그의 글은 정말이지 눈물 나게 잘 읽힌다. 다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야 하는데, 도대체 이 작가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고 싶어서 과거 회상을 이렇게나 많이 (서술 방식으로 택)하는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남아 있는 나날> 역시도 그러했다).

요새 내가 하는 생각(셀프 인터뷰에서 언급했다)으로 감상을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박솔뫼는 (갑자기 등장했다) 이런 말을 한다. "아름다운 것이 다 떠났는데도 삶에는 기대가 남았다." (<백 행을 쓰고 싶다> 中) 그렇다, 인간인 우리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고 그게 우릴 살게 하기도 한다. 여기,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캐시, 토미, 루스(주인공들)다. 장기를 기증하다 죽거나, 그 기증자를 돌보는 간병사가 되거나(간병사도 결국 기증으로 생을 마감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그들은 '선택받은' 이들이었고, 그렇기에 "혹시 귀중한 뭔가를 잃어버렸다 해도, 애써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해도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어른이 되어 자유롭게 전국을 여행할 수 있을 때 노퍼크에 가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기고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는 사실(p.99)"을 유년기에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말하는 그런 '막연한 기대'를.

그로 가득 찬 일상에는 자꾸 차가운 현실이 끼어든다. "내 안에서 뭔가가 나를 포기시켰다. 어떤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좋아, 그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게 내버려 두자고. 그냥 그렇게 생각하게 하자고. 그렇게 해 버려.'" (p.272) 체념이 기대를 막아서는 일. 주인공들이 유년기를 보낸 '헤일셤'의 선생님들은 바로 그 지점을 우려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각자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았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니? 그랬다면 너희는 그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박했을 테고, 우리가 어떻게 너희를 설득할 수 있었겠니?" (p.367)

그러나 이제 삶의 마지막을 앞둔 주인공들은 묻는다. 불행 중 다행이 정말 다행이었느냐고, 혹 이 모든 게 '수치스러운 일(p.387)'은 아니었냐고. 우리를 인간답게 살게 하려 했던 당신들의 그 '보호'가 정말 옳은 일이었느냐고. 도대체 우리에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느냐고(p.357). 이 울부짖는 물음 앞에서 나는 숙연해진다.
2021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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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보러 다대포 가는 1호선 안에서 박솔뫼의 「여름의 끝으로」를 읽다가 이런 부분이,

“차미를 안고 등에 코를 묻으면 땅콩 냄새 같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일정한 소리로 코를 골며 자는 차미의 등에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잠이 올 것 같은 냄새였다.” (33쪽)

어젠 요가원에 좀 빨리 갔고, 한참 동안 나와 선생님 그리고 고양이 샨티밖에 없었는데, 샨티는 내 요가 매트 위에 올라와,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앉아 있고, 바즈라아사나로 요가를 준비하려던 나는, 금세 샨티의 집사가 되어, 샨티의 등을 주물주물,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어느덧 서늘해진 바람과 따듯한 샨티의 등을 동시에 만졌다. 여름의 끝이구나.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박솔뫼 지음
스위밍꿀 펴냄

2023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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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부산 가는데 『미래 산책 연습』 진짜 안 챙기려 했거든? 방금 후루룩 훑었는데 도무지 안 들고 갈 수가 없네··· 이를테면 이런 장면,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비빔밥을 시킬걸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제 하루가 지났고 남은 휴일은 무얼 하지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하려 했지만 때마침 테이블에 커다란 보리차 주전자가 탕 소리를 내며 놓였고 커다랗고 따뜻한 주전자를 보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고 보리차를 마시자 반찬이 나오고 상추가 나오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틈도 없이 테이블 위에 빠짐없이 차려진 밥을 먹기 시작했다." (47쪽)

나도 정말 제발 진실로 진정 이렇게 여행하고 싶다···
2023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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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문학평론가가 주고받은 열두 편의 서신을 모아 놓은 책. ‘지금-여기’의 책들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라 무척 재미있다. 두 분이 함께 읽은 책 중에는 내가 살펴보았거나 읽었던 책이 왕왕 있었고. 김대성, 김봉곤, 김지연, 김혜진, 서이제, 알렉세이 유르착, 유성원, 임솔아, 임현, 장류진, 조지 오웰, 한병철의 작품. 3분의 1 이상은 알고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그러나 내가 모르는 작품에 관해 나누는 서간을 읽을 때도 역시 즐거웠다. 온종일 한국문학 이야기 정말로 자신 있는 나로서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 가지고 양껏 수다 떠는 걸 지켜보는 게 못내 좋았다. 문학이 수다를 떨게 만드는 순간은 정말로 좋다!

*

“차이에 대한 기만적인 인정으로 무언가를 봉합해버리려는 편의적인 행태에 대해, 저 역시 선생님과 똑같이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계기를 촉발하지 않는 타자는, 아무리 ' 차이'라는 명분으로 세련되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동일성의 반복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선생님과의 대화 혹은 열띤 논쟁이 즐거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합의와 존중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7쪽)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년에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나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꼈을 때. 올해도 앞으로도 마음껏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장정일 외 1명 지음
안온북스 펴냄

2023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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