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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뜨개 (첫 코부터 마지막 코까지 통째로 이야기가 되는 일)의 표지 이미지

아무튼, 뜨개

서라미 (지은이) 지음
제철소 펴냄

아무튼 시리즈는 취향만 맞으면 빠져들기 쉽다.
(+취향이 맞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 이야기를 힐끔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

고등학교 가정 시간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목도리 떠주는 시간이 있었다. 기말고사도 다 끝난 시점이라 수행평가도 아니어서 뜰 사람만 떴다. 나는 좋아하는 오빠에게 목도리를 주기 위해 실을 사고 가정 시간이 아닌 때에도 틈틈히 떴다. 내 마음은 그냥 짝사랑으로 끝났고 목도리도 내 옆에 그대로였다. 아깝다는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다 풀었다. 타원형으로 통통하게 말아서 쇼핑백에 넣고 잊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줄 걸 그랬나 싶지만 그땐 그래야만 마음이 괜찮아질 것 같았나보다.

아무튼,
잠시나마 추억에 잠겼다.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뜨개질'이 아닌 '뜨개'라고 불러달라고 한 점. 나도 뜨개질이라고 했는데 글을 읽으면서 앞으로는 '뜨개'라고 불러야겠다 생각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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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번역가 안나 루스코니는 이렇게 말했다. “말은 세상을 여행하고 번역가는 그걸 운전하는 사람이다.” 이 문장을 이렇게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실은 세상을 여행하고 뜨개인은 그걸 운전하는 사람이다.”
(뜨개는 실로 하는 번역이다 중)

"또 새로 시작해?"
새 실의 라벨을 풀어 코를 잡으려는 나를 보고 남편이 묻는다. 이어지는 질문.
"저번에 뜨던 목도리는 다 떴어?"
앞선 질문보다 한층 호기심 어린 목소리다.
'당연히 다 안 떴지. 그걸 꼭 물어봐야겠어?'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소리 내어 말한 대답은 이거다.
"목도리는 겨울 거고 이제 여름이니까 여름 거 먼저 하나 뜨려고."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며 코를 잡기 시작한다. 먼저 뜨던 걸 다 떠야 새걸 시작할 수 있다고 법에 정해져 있기라도 한가. 뜨고 싶으면 뜨는 거지.
(기꺼이 잡스럽게 거침없이 산만하게 중)

뜨개인에게 그토록 많은 문어발이 필요한 이유는 작가 구달에게 88켤레의 양말이 필요한 이유와 같다.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무엇이든 뜨는 것과 한 가지만 뜨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공간이 존재한다. 바로 그 공간에 문어발이 있다. 그러니까 문제는 문어발이 아니라, 문어발에 죄책감을 느끼는 마음이다.
(기꺼이 잡스럽게 거침없이 산만하게 중)

존재나 자취만으로도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 있다. 내게는 짐머만이 그렇다. 짐머만의 뜨개 철학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뜨개란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행위가 아니라 실과 바늘과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라는 만인 뜨개 가능설, 뜨개에는 옳은 방법도 틀린 방법도 없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만 있을 뿐이라는 열린 뜨개설, 마지막으로 뜨개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존재할 수 없고 그러므로 누구나 앞선 뜨개인에게 영감을 받아 자신의 개성과 필요를 담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영감 뜨개설.
(짐머만을 읽다 중)
2021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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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으면.”
“…….”
“좋은 일, 있을까요?”

다쓰우라 바다로 가는 기차 안에서 한 질문.
결말에 이르러 나는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살아 있으니까 정말로 좋은 일이 있었어.

맛있어서 눈물이 날 때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문예춘추사 펴냄

43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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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멜라이트 인스타에서였다. 책표지가 정해지지 않았고, 네 가지 후보 중 어떤 표지가 좋은지 묻는 글이었다. 나는 지금의 표지를 골랐는데, 직업을 바로 알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사다리 타기 같은 모양이 꼭 '우리는 다 연결되어 있어'라고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책을 가로로 돌리고 사다리 타기를 하면 이름과 직업이 연결된다! 진짜 맞는지 의심이 된다면 해보시길. 꽤 재밌다.). 크게 보면 벽돌처럼 보이기도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단단하고 굳게 우리 사회를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

열다섯 명의 직업인과 열다섯 개의 직업. 그들을 대표해 정지우 작가가 쓴 프롤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살아간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거나 하게 되든 그 일에서 당신만의 의미를 찾아내길 바란다." 책에 소개된 직업 중에는 나와 가까운 직업도 있고, 처음 들어본 직업도 있다. 생소했지만,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점만 나열하기보다는 그 직업이 가진 현실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책에서 말하는 직업인의 '낮'에서 이러한 부분이 소개되어 있다.

'자신의 시간을 오롯이 내놓아야'하는 보좌관(33쪽), '그저 좋은 일 하는 사람 혹은 고생 많이 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사회복지사(79쪽), '수년간의 노력이 세상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험'을 수없이 하는 개발자(182쪽), '교육자와 서비스업자 사이를 오가며 고민'하는 미술대학 입시 컨설턴트(285쪽), '전화를 돌려 미팅을 성사시켜'내기 위해 5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투자 상담가(327쪽) 등 각자의 고충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렇게 낮을 지나 '밤'에서는 일에서 찾은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일을 왜 계속하고 있는지 말하는 직업인들을 통해 나 역시 생각에 잠긴다. 나는 지금 이 일을 왜 계속하고 있을까? 무엇이 나를 이 일로 이끄는 것일까?

긴 고민의 시간을 거쳐 '새벽'에 이르면, 그 직업을 갖기 위한 방법과 과정을 알려주는 챕터가 나온다. '해당 직업에 관심 있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쓸모 있는 정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6쪽). 어떤 자격과 과정이 필요한지, 어떤 사람에게 이 직업을 권하는지, 미래에는 이 일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어떤 능력과 노력이 필요한지 등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청년이라면 직업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또 그 직업을 갖기 위한 준비 과정에 도움이 될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낮'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밤'을 통해 자신의 직업에서 느낀 보람을 떠올리며, 내일을 버틸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사표 한 장 넣고 다닌다는 말이 있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일을 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건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삶이라는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직업을 통해 가치를 발견하고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지우 외 14명 지음
멜라이트 펴냄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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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자리를 지키기 위해 버틴 거였는데, 버티는 것만으로는 안 되나보다. ‘통쾌’라는 게 없다. 작아지고 또 작아질 뿐이다. 나는 괜찮을까? 제대로 버틸 수 있을까?

불펜의 시간

김유원 (지은이)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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