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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름이 있었다

오은 지음
아침달 펴냄

뭘 하지?
뭘 먹지?

​서로에게 묻는 일
함께 답을 구하는 일

​뭘 해도 상관없었다
뭘 먹어도 상관없었다

답은 없었다
둘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을,
매일매일 습관적으로 던지고 있었다

​푹 자자
풍부해지는 감정처럼
풍성해지는 어휘처럼

매일매일
같은 꿈을 열심히 꾸었다

그때 뭘 했는지 기억해?
그때 뭘 먹었는지 기억해?

​기억하는 죄와
기억하지 못하는 죄

​헤어질 때는
어쩔 수 없이 죄인이었다

​매일매일이 그때그때로 수렴하고 있었다

​더 이상 같은 꿈을 꾸지 않았다

​뭘 사랑하지?
누굴 사랑하지?

​답이 없었다
혼자 있었다

- ‘애인’, 오은


앞만 보며 달려왔어요
뒤를 볼 겨를이 없었어요
누가 쫓아오고 있는 것처럼
그림자를 볼 여유가 없었어요

뒷바라지하느라 이렇게 늙었어요
앞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누가 달아나고 있는 것처럼
몰아세우니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어요

위를 떠받들며 살아왔어요
아래를 보살피며 살아왔어요
위아래가 있는 삶이었어요
옆에 누가 있는지
어떤 풍경이 흘러가고 있는지
이 거대한 풍경에서 나는 어떤 표정을 담당하고 있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어요

실은 무서웠어요
일그러져서 다시 펴지지 않을까 봐
희미해져서 다시 생생해지지 못할까 봐

무서워서 눈을 감아버렸어요
온몸이 거대한 속표정으로 변했어요

눈뜨면 여기였어요
여지없이 여기였어요

오늘은 오늘의 밥이 절실했어요
내일은 내일의 옷이 요긴했어요

십 년 뒤 오늘에는 집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앞을 보면
개떼처럼 몰려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뒤에 있어서
어디로 가는 길인지 모를 때가 많았어요

늘 위아래가 있었는데
꾹 다문 입술에서는
아무 말도 새어 나오지 않았어요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서 멈췄어요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
그림자가 꿈틀거렸어요

뒤를 돌아다보니 거울이 있었어요
내가 있었어요
잊고 있었던 얼굴에는 물굽이가 가득했어요

어디로 흘러도 이상할 게 없는 표정이

- ‘58년 개띠’, 오은
2021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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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 1 Corinthians 13


말은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찬미할 수만 있을 뿐 재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느꼈다.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p. 285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지음
열린책들 펴냄

읽고있어요
2023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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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두 이렇게 은밀한 일을 벌이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래서 갑자기 죽어 버리면 그런 비밀이 전부 까발려져 마치 살아있던 것 자체가 커다란 음모였던 양 보이게 되는 걸까. - ‘음모’ - p. 171

인내상자

미야베 미유키 지음
북스피어 펴냄

2023년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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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은 단지 말들을 떠돌게 하고 싶었다. 대단한 예술 작품, 베스트셀러, 히트작, 영원불멸의 클래식 따위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어떤 생각, 아이디어, 논평, 꿈, 일상, 작은 이야기, 소소한 논쟁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며 하루하루를 즐겁고 슬프게 스치고 사라졌으면 했다. - p. 71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선 약속과 의무라는 규약 너머의 행동이 필요하다. 이것을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폭력과 파괴, 선택과 충돌이 필연적이라는 생각을 극복할 수 있을까. - p. 115

…스크롤!

정지돈 (지은이) 지음
민음사 펴냄

2023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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