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형제를 때려죽인 ‘카인’은 기존의 싱클레어가 가지고 있는 낡은 규범, 가치도 때려죽였다. 하나님은 이 잔악무도한 죄인의 이마에 표적을 세웠다. 그러나 그가 달아놓은 표적 위 글씨는 내 눈에는 보이지 않고 내가 직접 새겨야만 한다.
사실 힘의 우월함을 나타내는 훈장인데 두려움을 느낀 이들이 비겁함을 새겼듯이.
자격은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지만, 누구나 가질 수는 없다. 영민하고 예민한 두뇌는 오직 무너지는 사회에서만 작용한다.
(우선 ‘무너지는’이라는 어휘가 풍기는 부정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하겠다. 이미 쓰인, 그리고 계속 쓰일 긍정/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어휘들에 대해서는 지극히 사적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을 기준에 기대어 사용하는 것임을 미리 말하겠다. 선과 악의 기준을 정해 제시하여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발칙하고 주제넘은 일임을 알기에)
영민하고 예민한 두뇌가 오로지 무너지고 있는 세상에서 발휘되는 이유는, 우선 정지되어 있고 전혀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혹은 긍정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고 있다면 나의 이 증세가 나타나지 않고, 나타나더라도 공동의 증상으로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빌어먹을 질병 진단 따위도 받지 않을 테다. 이 질병이라는 진단도 표식일 수도 있겠다. 카인의 이마 정중앙에서 빛을 내뿜는 표식 말이다. 이것은 물질적인 것과 거리가 멀고, 상징적이라 언제든 환하게 보일 수도, 언제 존재하기나 했냐는 듯이 먼지가 수북이 쌓여 사라질 수도 있다. 나는 단지 표식을 가질 자격 중 가장 낮은 정도의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예민, 섬세한, 이 성향은 나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알을 깨트려 새롭게 태어나려 하지 않고, 알 속에서 계속 산다면, 기존의 ‘환한 세계’ 안에서 투쟁하지 않고, 안주하고 포기해버린다면! 도대체 그렇게만 살아간다면!
신이자 사탄 “압락사스”를 심장과 두뇌 속에 깊게 받아두고, 모든 것을 판단하거나 나의 세상을 규정할 때 꺼내야 한다. 비록 그 과정이 고통이 느껴지는 투쟁 같더라도 그의 보상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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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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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