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생을 마감하고 빨치산의
딸이 그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3일간의 이야기.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하여 주위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아버지와 화해하게 된다.
비극적인 현대사와 좌우가 함께 묘하게 평화로운, 우리나라 축소판 같은 장례식장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글로 봐선 모르고 소리로 읽을 수 있는 구수한 사투리들이 페이지들을 수놓은 책.
그리고 아름다운 사투리 "항꾼에"를 알려준 소설.
***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마침내 그 시원으로 돌아갔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참으로 아버지답게. 마지막까지 유머러스하게, 물론 본인은 전봇대에 머리를 박는 그 순간에도 전봇대가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민중의 한걸음, 한걸음이 쌓여 인류의 역사를 바꾼다는 진지한 마음으로 아버지는 진지하게 한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다만 거기, 전봇대가 서 있었을 뿐이다. 무심하게, 하필이면 거기. 이런 젠장.
고통스러운 기억을 신이 나서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흔 넘어서야 이해했다. 고통도 슬픔도 지나간 것, 다시 올 수 없는 것, 전기고문의 고통을 견딘 그 날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찬란한 젊음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시골 태생이긴 하지만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었다.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웠지만 정작 자신은 노동과 친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노동은 혁명보다 고통스러있다.
삶이란 것이 오빠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오빠가 밝은 햇빛 속으로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오빠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조문을 마치고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세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혁명가였던 내 부모에게는 연애도, 옷도, 화장도, 별 의미 없는 사치에 불과했다. 그 틈에 끼어 나는, 혁명가도 아닌 나는, 신념도 없는 나는, 일상의 평범한 대화를 맛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되고 늙어가는 중이었다. 혁명가도 아니고 신념도 없는 주제에 진지하지 않은 것은 참지 못하는 꼰대 같은 어른으로. 그러니까 아버지, 나는 억울하다니까요! 그래봤자 아버지는 죽었고, 죽어서도 혁명가인 양 영정사진 속에서 근엄한 얼굴로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필시 그의 딸일 아이는 열일고여덟이나 됐을까? 앳된 얼굴이었다. 피부가 유달리 가무잡잡했다.
"우리 아버지를 알아요?"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아는데요?"
흔하디흔한 삼선 슬리퍼를 시멘트 바닥에 문지르며 아이가 머뭇거렸다.
"......담배 친군디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여든 넘은 아버지의 담배 친구라니.
"우리 아리는?"
"일등!"
"아들보담 낫구만."
아버지가 소리 내어 웃으며 마당을 빙 둘러 내달렸다. 새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았는지 나는 아버지의 목 위에서 등허리가 흠뻑 젖도록 웃어젖혔다. 우물가에 핀 달큰한 치자꽃 향기에 숨이 막 혔다.
나는 전혀 알지 못했던 내 아버지의 청춘이 담긴 사진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짚었다. 사진은 바닥에 남겨둔 채.
"자네 줄라고. 인자 우리 성 얼굴도 잊어불라고."
술이 불콰한 상태로도 지팡이를 다리처럼 자유롭게 쓰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미련 없이 잘 가라는 듯 오늘도 날은 화창했고, 도로변에는 핏빛 영산홍이 불타오르고 있었고, 허벅지 아래로 끊어진 그의 다리에서 새살이 돋아 쑥쑥 자라더니 어느 순간 그는 사진 속 그의 형보다 어린 소년이 되어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저 질이 암만 가도 끝나들 안 해야."
아, 작은아버지도 나처럼 이 길을 따라 떠나고 싶었구 나. 떠나려고 이 길을 걸어와봤구나. 그런데 왜 떠나지 못했냐고 나는 묻지 못했다.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어쩐지 알 것 같았다.
그 여름날 작은아버지가 웅얼거리던 말이, 까맣게 잊고 있던 말이 불현듯 기억의 표면으로 솟구쳤다. 한 등에 두 짐 못 지는 법인디.... 섬진강이 보이는 내리막길에서 자전거에 올라타며 작은아버지는 분명 그렇게 혼잣말을 했었다. 그러니까 그날 작은아버지는 나를 뒤따라오며 등에 얹힌 두 짐을 보았던 것이다. 자기 등에도 평생 얹혀 있었을 두 짐을. 그 짐이 버거워 작은아버지는 떠나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고 술에 취해 한평생을 흘려보낸 것일까? 아버지의 살아남은 유일한 형제를 위해 나는 소주병을 꺼내들었다. 기왕 취해 보낸 일평생, 하루쯤 더 보탠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것도 그 원흉이 간 자리인데.
"딴 집 애기들은 엄마가 젤 좋다는디 우리 아리는 당신이 최곤갑소이."
"하모. 우리 아리한테는 나가 젤이제. 당신보담 나가 젤이여."
"아이고 좋것소. 당신이 일등이라."
"왜 나가 일등인 중 안가?"
"당신이 만날 놀아중게 글지다."
"아니여. 나가 맹근 누룽지가 자네 것보담 시배는 크거든. 우리 아리가 누롱지라면 환장을 허잖애."
아닌디. 누룽지 안 쥐도 아빠가 최곤디, 잠결에 중얼거렸고 아버지는 하하, 밤하늘이 시끌적하게 웃어젖혔다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
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담배를 피우다 말고 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할배 뻿가루."
담배를 입에 꼬나문 채 봉지에서 유골 한줌을 집어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도 담배를 꼬나문 채 유골을 받았다.
"아이고, 아부지가 봤으면 장허다 하겄다. 가관이그마이. 혼차 보기 아깝다야."
아빠가 뭐? 할배가 뭐? 나와 아이가 동시에 외쳤다. 아이가 꺄르르르, 처음으로 나이에 맞게 소녀다운 웃음을 떠뜨렸다. 그러고는 아버지 유골을 제 머리 위로 획 집어 던졌다. 캄캄하지 않은데 미리 밝혀진 가로등 불빛에 하얀 뼛가루가 점점이 제 존재를 드러냈다. 골목이라 담에 막힌 것인지 뼛가루는 날아가지 않고 우리 머리 위로 쏟아졌다. 셋 중 누구도 몸 어딘가 내려앉았을 뺏가루를 털지 않았다. 아마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쩐지 아버지가 여기,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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