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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
이세라 지음
나무의철학 펴냄
읽었어요
나는 재이의 그런 면이 좋다. 앞으로도 계속 시답잖은 미끼로 자신을 유인하는 것에 불쾌할 줄 알고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거나 내키지 않으면 무리에서 이탈할 줄도 아는 용기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p.32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생각했다.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매주 선을 보는 그 사람이나, 선 볼 남자를 구해 오라며 부모님을 닦달하는 나나 어쨌든 원하는 건 똑같구나.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사람. 진짜 모습을 보여줘도 서로 달아나지 않을 관계. 그렇게나 차갑고 콧대 높은 척을 하고 있어도 우리는 결국 외로움 앞에 무너지는 약한 존재들이고 사랑에 있어서는 같은 꿈을 꾼다. p.78
나는 이런 식의 발화 행위, 개인의 고백들이 모이고 모이면 사회 인식이 바뀌고 제도가 만들어져 결국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너무 순진한 믿음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볼 땐 '작은 것들의 힘'을 믿지 않는 태도야말로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순진하고 오만한 자세다. p.125
아마 드가는 알코올 중독의 위험을 알리는 일 따위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단지 자신이 목격하고, 직접 살고 있기에 한 '실제의 삶'을 그렸을 뿐이다. 함께 있어도 서로의 고독을 잘 눈치 채지 못하고 자꾸 외로워지기만 하는 위리의 삶을 말이다. 술을 찾을 수밖에 없는 날, 술을 앞에 두고 깊은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는 밤이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찾아온다는 것을 드가는 알고 있었다. p.165
<질투>는 사랑을 회의하고 의문을 던지는 영화가 아니다. 서로에게서 서서히 고개를 돌리며 멀어져갈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살아남는 뜨겁고 따뜻했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사랑보다 더 길게 지속되는 것은 사랑했던 기억이고 적어도 '그때는 그래주었던' 상대에 대한 고마움이다. p.170-171
간절함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인생이 늘 내게 호의적일 수 없고, 그럴 의무도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인다. 뭔가를 성취하며 발전하는 순간에도 나는 분명 성장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크게 실패했을 때 내 세상은 더 넓어졌다. 인생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나니, 남은 남들을 그럭저럭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p.181-182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에 불행해진다면 '그 꿈'을 한 번쯤은 재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날마다 축제일 수는 없겠지만 나는 이제 마음의 추가 슬픔이나 우울 쪽으로 더 기울어진 채 살아가는 일은 더 하고 싶지 않다. p.185
그렇다. 자존심은 밥도 돈도 될 수 없지만 때로는 밥과 돈보다 더 소중한, 온몸을 던져 지켜내야 하는 어떤 것이 된다. 존엄을 갖춘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 동시에 타인이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 이 둘 모두가 우리에게는 똑같이 중요하다. p.194
그런데 실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아픔이었기 때문에 타인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그걸 뒤늦게 알았다. 정말 힘든 시간이 찾아오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매 순간이 버겁고 모든 게 힘겨운데 도저히 도와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실은 이런 상태라고,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완전히 길을 잃은 기분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p.196
지나이다의 행복한 시절, 그녀가 가장 예쁘고 빛났던 그 시간은 과거에만 있지 않다. 그리워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그녀는 언제나 '지금'을 사는 사람이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흘러가게 두고, 넘어진 지금 이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지나이다의 그림을 통해 배운다. 특히 세월에 알맞게 변해갔던 그녀의 자화상으로부터. p.202-203
문득 얼마 전 엄마에게 외할머니 병문안을 왜 더 자주 가지 않는지, 왜 더 신경 쓰지 않는지 쏘아붙였던 게 생각났다. "엄마, 그러다 엄마가 아플 때 우리가 엄마처럼 하면 어떻게 할래?"라는 말까지 해가면서. 아, 나는 얼마나 오만하고 둔감한 사람인가. 각자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어떤 순간에도 잊지 않는다면 살면서 하는 실수 중 절반 이상은 줄어들 텐데. p.205
토레스의 이별 연가는 우리에게 더 큰 사랑을 제안해온다. 그들과 우리, 이쪽과 저쪽, 정상과 비정상 따위를 구분 짓고 편 가르지 않는 사랑 말이다.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 토레스가 들려준 건 결국 이별이 아니라 사랑 이야기다. p.245
예상했겠지만 나는 헤어졌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주연의 영화 <비포 선라이즈>였던가. 오래전에 본 어떤 영화에는 이별과 관련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별 후에는 마음에 딱 그 사람만큼의 구멍이 남는데, 그건 어떻게 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절대 메워지지 않는다고. 이별이 그래서 무서운 거라고.
이 장면을 보고 나는 슬퍼졌다. 자고로 이별은 이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속에 영원히 그 사람의 빈자리가 남는, 그래서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문득 애틋하고 마음 시려오는, 그런 게 사랑이고 이별이지 않을까 싶어서. p.278
만약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이 당신을 이해하기보다 변화시키는 데 더 몰두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와 함께 있을 때 나의 진짜 모습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나는 그 사람을 멀리하라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을 포기해야 유지되는 관계는 꺼림칙하다. 사랑은 결코 희생이 아니다. 어느 정도 희생이 필요하고 그것을 피해갈 수 없을 뿐이다. 어느 한쪽도 많이 바뀌거나 많이 참을 필요가 없는 관계, 그건 사랑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다. p.285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는 베르그와 같은 적당한 거리도, 앙리처럼 밀착된 관계도 모두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지금까지 나는 전자로 더 기울어져 있었다. 이제부터는 조금 다르게 사랑하고 싶다. 결국 우리는 만나기 위해 떨어져 있는 게 아닐까?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잠시 헤어져 있기도 하고,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해 조금은 느린 속도를 유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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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작머리님의 인생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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