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휴식을 찾아서

Edited by
제이

‘어떻게 쉬는 거였더라?’ 그렇게 바보처럼 되묻게 되는 것이다.

―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서윤후

색색의 고층 아파트가 솟아있고, 화려한 네온 간판이 도시 곳곳을 밝히며, 이층 트램이 도로를 가로질렀다. 홍콩은 내가 상상했던 풍경 그 자체였다. 왕가위 영화의 주인공들이 바로 튀어나올 것 같은 무드. 복잡하고 자유롭고, 팬시하며 또 낡은 골목들. 퇴사 후 아무 생각 없이 그 분위기에 취해 보리라, 아무 계획 없이 그 골목들을 걷고 오리라 상상했다. 모든 것이 내가 꿈꾼 그대로였는데도 홍콩 여행은 휴식했다는 개운함을 주지 못했다. 왜였을까? 너무 복잡한 도시라서? 너무 화려한 곳이라서? 애초부터 장소를 잘못 정했던 것일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독서 커뮤니티 기획자로 일했던 4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으로 꼽을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루에 여덟 시간씩 매일 할 수 있는 덕업일치의 삶. 세상에 없던 프로그램을 현실로 구현하는 일.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람들과 우리만의 콘텐츠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작업. 나는 내 직업을 소개할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즐기는 직업’에는 그만큼 감당해야 하는 것이 따른다. 일로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진 것과는 다른 종류의 그림자이다. 삶과 일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업무와 휴식이 분리되지 않고, 일하는 나와 자연인으로서 나를 분리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취미가 일이 되었기에 따르는 당연한 현상이다.
일요일에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책을 읽던 휴일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모임 할 만한 책이 아니면 읽지 않게 되었고, 쉬기 위해 하는 독서에서도 북클럽으로 풀어낼 지점이 있을까 늘 레이더를 바짝 세운 상태였다. 어느 날 훌쩍 떠난 바다에서도, 해변을 배경으로 책 읽는 영상을 찍어 인스타에 콘텐츠로 써야겠다는 생각에 카메라 구도 잡기에 바빴다. 이런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엔진을 늘 풀로 가동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과부하가 찾아왔다.

그래서 퇴사 후 떠나게 된 홍콩만큼은 완전히 시동을 꺼보자고 생각했다. 아무 생각 없이, 계획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리라 다짐했다. 도착해서야 이것저것 검색을 해봤는데 너무 많은 정보가 몰려들었고,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유명지 관광도 힐링 여행도, 이도 저도 아닌 채 3박 4일이 흘러가 버렸다.

홍콩에서 돌아와 본격적인 백수 라이프를 시작한 나는 잃어버린 쉼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밀린 잠을 실컷 자고, 위스키의 세계에 빠지기도 하고, 콘서트를 보러 가고, 커피 클래스에 참여하며, 산에 올랐다. 과열된 엔진을 부릉거리며 휴식을 찾기 위해 헤매고 다녔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은 이런 나를 위해 수많은 쉴 거리와 놀거리 즐길 거리를 추천해 주었고, 나는 그것을 따라 더 많은 휴식의 세계를 체험했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쉼의 순간은 찾기 어려웠다. 쉬는 방법을 아예 잊은 것일까? 휴식에 관한 감각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불안해졌다.

“너 진짜 아무것도 안하고 쉬어본적이 있긴 해? 너를 안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한 번도 그러는 꼴을 본 적이 없어.” (...) K가 말하는 그 온전한 휴식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나를 진정으로 쉬게 할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룩할 수 있을까?

―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그래서 (뇌가 손끝에 달린 인간인) 나는 적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휴식은 무엇인지, 휴식으로 느꼈던 구체적인 경험들은 무엇인지.

내가 생각하는 휴식의 ‘느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 의도도 없이 편안한 감정을 느끼는 것.

내가 휴식으로 느꼈던 구체적인 ‘활동’
-등산, 요가, 독서, 글쓰기, 명상, 낮잠, 혼자 걷기, 제니퍼 스타인 캠프의 영상 작품 감상하기

내가 생각하는 휴식이란 진공 상태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순도 100%의 진공 말이다. 의도와 생각과 정보로 꽉 찬 세상. 그게 도시에 사는, 동시대에 사는 나의 자연이다.

나는 휴식에 관한 정의를 다시 내리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자연과, 내가 경험한 휴식의 순간을 고려해서 말이다. 괴롭게 몰입하면 의무-일이 되고, 즐겁게 몰입하면 휴식-놀이가 된다. 진공에 가까워지는 일은, 수동적으로 널브러지고 무언가를 없애는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집중하고 귀를 기울이며 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서 가능하다. 따라서 나는 의도를 가지고 의도 없는 시간을 기획하기로 했다.

젊은이들은 종종 세계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 외부의 어떤 것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고 책임질 것도, 지켜야할 규칙도 없이 자유롭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 (…)
그러나 목적은 세계 안에서의 자유를 허락한다. 그러한 자유는 우리가 세계의 특정 부분과 관계를 형성하여 거기에 반응하고, 또 그에 관해 책임감을 느낄 때 비로소 주어진다.

― <전념>, 피트 데이비스

지난달 다녀온 도쿄 여행은 내게 만족스러운 휴식이 되었다. 책과 미술을 컨셉으로 잡고 떠난 여행이었다. 츠타야 서점의 다이칸야마, 긴자, 롯폰기 지점 등을 투어했고, 진보초 고서점 거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서적과 고지도, 옛 엽서들을 구경했다. 팀랩 플래닛에서 오감으로 즐겼던 미디어 아트, 국립 신미술관과 모리 미술관에서 만난 다양한 작품들은 내게 잘 쉬었다는 그 개운한 감각을 드디어 느끼게 해주었다.

홍콩만큼이나 복잡한 도시이지만 도쿄는 지난 여행과 달리 내 삶에 쉼표를 찍어주었다. 무작정 쉬어야겠다는 막연한 빈칸이 아니라, 내가 의도적으로 만든 빈칸이었기에 그 휴식은 나를 충만하게 차오르도록 만들었다. 목적을 가지고 내 앞에 주어진 세계와 적극적으로 관계하며, 나는 자유롭게, 또 완연하게 쉬고 있다는 감각을 만끽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먹었다. 완벽을, 완벽히 폐기하리라고. 지금이 아닌 언젠가,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꿈꾸는 게 아니라, 그저 작은 빈틈을 찾아보리라고. 단 1퍼센트의 ‘공백’이 주어지더라도 기꺼이 그것을 그러안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 보리라고.

―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4월, 완연한 봄이다. 언제보다 휴식을 위해 여행을 떠나고 나들이를 나가는 일이 많아지는 시기다. 여러분께 빈칸을 건네며 글을 맺는다. 내가 가장 즐겁게 몰입했던 시간은 언제일까? 적어 내려가다 보면, 내가 의도하고픈 휴식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 원하는 휴식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비워내면서도 충만해지는 그런 시간 말이다.


당신이 가장 즐겁게 몰입했던 시간은 언제인가요?
  • ‘휴식’을 느낌으로 표현하기
  • ‘휴식’의 경험 구체적으로 적기
제이
@eejj
문화 프로그램 기획자이며 소설 쓰는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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