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너무 큰 새해 다짐

Edited by
오디티닷
새해 첫 책을 펼친 날부터 제게는 작은 시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책을 펼치고 조금 후 웅! 하는 작은 울림이 책상 한켠에서 울리고, 느긋하게 그리고 나른하게 펼친 책장을 잡을 때와는 달리 조금은 급박하게 낚아 올린 핸드폰에 뜬 별 것 아닌 스팸 메세지를 굳이 펼쳐서 확인하고는, 다시금 책상 위에 내려두었습니다. 몇 장을 더 넘기고 나서는 ‘콜록’ 하는 작은 저의 기침 소리에 괜스리 소스라치게 놀라는 척을 하며 잠시 책을 내려두고 가습기를 틀기 위해 일어나 평상시와 달리 굳이 꼼꼼히 가습기가 더러운 곳이 없는지 점검하고는 가습기를 틀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다시 책을 펼치려니 괜스레 방금 지나온 빨래 건조대에 다 마른 수건들이 아른거려 나른하게 펼친 책을 조심스레 책상 위에 밀어두고는 빨래를 걷었습니다.

새해 첫 글을 썼던 다음날의 시련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얀 백지화면이 켜진 페이지를 씨름 하듯이 바라보던 저는 문득 네 가지 색의 아름다운 동그라미(Chrome)를 못 참고 눌러 뉴스를 보며 괜스레 혼잣말을 되뇌었습니다.

“아이디어를 찾아야 되니까, 볼 수도 있는 거지!”

한번 켜진 인터넷 뉴스는 언제나 그렇듯이 자연스럽게 유튜브로, 그렇게 OTT 서비스로 연결되어 하얀 백지 위에 커서만 혼자 외롭게 점멸하는 저녁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새해와 함께 마주친 위대한 다짐은 여느 해처럼 똑같이 멀어지고, 시간을 내서 책을 읽겠다는 다짐도, 글을 잘 써보겠다는 다짐도 또 지키지 못할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불안과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 속 어차피악마는 꽤 즐거워 했을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새해 다짐이 작심삼일이 되어간다는 생각을 한 다음날 새해 선물을 건네는 친구와 오랜만에 가진 술자리에서 꺼낸 삼일 만에 실패해 버린 미숙한 저의 이야기를 들으며 친구는 한참을 깔깔 거리며 웃었습니다. 제 표정이 퉁명해 진 건 당연했고 친구는 그런 저를 위로 하려는지 어깨를 툭 치고는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실패했다고 했지만 어쨌든 책도 읽었고, 글도 쓰기 시작했잖아? 그 어차피악마라는 친구랑 원만한 합의를 해야겠는데?”

여느 고전소설에 나온 메피스토와 파우스트 처럼, 그렇게 악마와의 관계가 나를 실패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장담하던 저는 문득 모모의 구절이 떠올라 되뇌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그게 중요한 거야”

- 모모 (미하일엔데) 中



식사 자리가 끝나고 집을 향해 가는 길에 친구의 조언에 따라 마음 속 어차피악마와 원만한 합의를 봤습니다. 당장 저의 목표만큼 완벽하게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한걸음씩 나가다 보면 제 다짐이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다행히 시간을 내어 책을 읽고, 몇 줄의 문장이 더해진 백지를 조금 더 채워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리게 하얗던 백지를 채운 첫 문장과 단어는 플라이북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이 여러분께 닿을 때 쯤, 여러분이 가진 새해의 다짐도 어차피 악마에게 꽤나 거대하게 부풀려져서 2024년의 다짐이 너무 막막해 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저와 같은 처지의 분들께 너무 커져버린 다짐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건 어쩌면 단 하나. ‘시작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건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하고, 채워가다 보면 2024년을 완성해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완벽하지 않아도, 위대하지 않아도, 반짝이고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가는 모든 구독자님들께, 작은 땅의 야수들 - 김주혜작가님 의 문장을 마지막으로 2024년 새해 다짐을 응원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주변의 모든 곳에서 삶은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계속 나아가는 중이었고,
그들의 삶 역시 다른 모든 것이
존재하는 세상 안에서 나아가고 있었다.
모든 존재가 공기처럼 가볍게
서로에 가 닿으며 투명하게 반짝이는 지문을 남겼다.

- 작은 땅의 야수들 中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전고운, 이석원, 이다혜 외 6명 지음 | 유선사 펴냄
우리가 알고 있는 뛰어난 작가들도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완성보다는 완벽을 위해 달리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완성보다는 완벽을 추구하기에, 선뜻 발을 떼지 못하는 지도 모릅니다. 완벽한 2024년 보다 완성된 2024년을 응원하며, 이 책을 추천합니다.
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 | 비룡소 펴냄
언제나 목표를 두고 하는 핑계 중 하나는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하고 나서 잠시 집안일을 하고 나면 잘 시간입니다. 아니 잠깐, 퇴근하고나서의 시간은 어디로 간거죠? 혹시 여러분도 회색신사에게 시간을 뺏기고 있는지 모릅니다!
독서모임 운영하는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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