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바뀌는 삶 속에서
중심 잡는 법

Edited by
미아
최근 아끼는 손목시계가 멈췄습니다. 며칠 동안 움직이다 말다 하더니, 이제는 언제인지도 모를 시간에 시침과 분침이 멈춰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 시계는 친언니 K가 결혼하면서 형부로부터 건네받은 예물이에요. 작고, 심플하고,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이 금빛 물건을 좋아했습니다. 이십 대 초반부터 차기 시작해 벌써 저와 함께한 지 7년이 된 이 손목시계는 지금까지 두 번 멈췄습니다.
첫 번째로 멈춘 건 2019년 제가 첫 인턴 면접을 보러 다니던 때였습니다. 스페인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와 직무 경험을 쌓고자 지원했던 인턴 자리였어요. 그때 받은 면접비 2만 원으로 시계 약을 채웠던 기억이 납니다.

운이 좋게도 한 번에 합격한 그 회사는 취업 준비생이라면 다 알고 있는 강남에 있던 대형 자격증 학원이었습니다. 저의 주된 업무는 강의 내용을 요약해 블로그에 올리고, 영상의 섬네일을 기획하고, 리뷰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일이 제 성향과 안 맞는 것 같아, 인턴 기간이 종료되자마자 그만두기로 했어요. 그렇다고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있거나,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단지 제가 처음으로 조직안에서 사람들과 일해봤다는 것과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 같아 기뻤어요. ‘나도 돈을 버는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하고 말이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올해, 두 번째로 시계가 멈췄습니다. 시계가 열일하는 동안 저도 열심히 제 길을 걸었더니, 마지막 학기 대학생이었던 저는 그간 취준생을 거쳐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4년 사이에 이 모든 것을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르게 흐른 듯 하지만, 천천히 되짚어 보면 그 시간은 참 길고 힘들었습니다.

단순히 취업 준비를 하고 직장인이 되는 과정이 힘들었다기보단, 모든 선택의 갈림길에서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판단하고 걸어 나가야 한다는 게 막막했던 것 같아요. 인생에 예고 없이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어려움과 외로움, 고단함은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인지, 언제쯤이면 사랑과 행복이 찾아올지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하면 됩니다' 하고 친절히 알려주는 사람보다, ‘알아서 하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직접 해보는 것뿐이었어요.
결국, 삶이라는 건 내가 직접 겪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30여 년간 겪고 느낀 모든 고통과 행복이 흔적으로 남아 제 삶이 되는 거였어요. 아무런 힌트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퇴근길에 통닭 하나 사 들고 귀가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달까요. 이제 보니 각자에게 위안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있기에 우리는 요지경스러운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서른을 목전에 둔 요즘은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른다는 걸 체감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스스로를 이루는 뿌리와 줄기를 떠올려 보는데요. 나에게 의미 있는 물건을 소중히 하고, 건강을 잘 가꾸고, 내 주변을 가지런히 하고, 곁을 챙기고, 단단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생각합니다. 변하는 모든 것을 맞이하는 자세로써 말입니다. 다음으로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떠올려 봅니다. 지금의 ‘나’는 어려움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끝까지 마주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자, 서로를 돕고 살자고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에 뜨끈한 용기가 생기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나만 제쳐두고 빠르게 가는 것만 같은 세상 속에서 안심하는 방법은 이렇게 ‘나’에 대한 사실들을 나열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지금의 내 모습이 구체화됩니다. 그 모습이 때에 따라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혹은 별로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불확실에서 오는 불안감은 덜한 것 같아요. 내가 어떤 것으로 이뤄져 있는 사람인지를 곰곰이 되짚다 보면 중심을 잡기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책상 위에 멈춰있는 시계를 봅니다. 처음 시계를 선물 받았던 때에 비해 지금의 저는 조금 더 차분해졌고, 노련해지고, 색깔이 더 진해지고, 무게감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스스로가 노력해 온 것을 인정해 주고 칭찬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껴요. 이번에 다시 약을 채우면, 4년 혹은 5년 뒤쯤 시계가 멈출 것 같아요. 그때 저는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요. 또 세상은 얼마나 바뀌어 있을까요. 적어도 그때의 삶은 빠르게 바뀌는 것들 사이에서도 중심을 잡는 삶, 그리고 기쁨이 조금 더 많은 삶이기를 바라봅니다.
주중엔 마케터 주말엔 댕집사
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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