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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4.9.6
페이지
228쪽
상세 정보
2018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다양한 시적 질료를 채집해 독창적인 시 세계를 펼쳐 보인 김연덕의 두번째 시집 『폭포 열기』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사랑에의 강력한 몰입과 이를 둘러싼 기표와 기의의 긴밀한 관계를 탐구한 기록으로서, 괄목할 만한 성취인 첫 시집 『재와 사랑의 미래』(민음사, 2021)에 이어 3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폭포’라는 장대한 자연물을 주요 소재로 삼아 총 43편의 시를 6부로 나누어 묶었다. 시인이 긴 시간 골몰해온 사랑의 형태는 평면적인 언어의 질서를 거부하고 입체적인 골조를 드러낸다. 일상 세계에 공고히 활착한 언어의 바위와 뿌리를 휘감고, 곡선의 유연함으로 시적 공간을 자유로이 활공하는 사유의 실험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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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다양한 시적 질료를 채집해 독창적인 시 세계를 펼쳐 보인 김연덕의 두번째 시집 『폭포 열기』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사랑에의 강력한 몰입과 이를 둘러싼 기표와 기의의 긴밀한 관계를 탐구한 기록으로서, 괄목할 만한 성취인 첫 시집 『재와 사랑의 미래』(민음사, 2021)에 이어 3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폭포’라는 장대한 자연물을 주요 소재로 삼아 총 43편의 시를 6부로 나누어 묶었다. 시인이 긴 시간 골몰해온 사랑의 형태는 평면적인 언어의 질서를 거부하고 입체적인 골조를 드러낸다. 일상 세계에 공고히 활착한 언어의 바위와 뿌리를 휘감고, 곡선의 유연함으로 시적 공간을 자유로이 활공하는 사유의 실험을 읽을 수 있다.
출판사 책 소개
“완전하게 건축된 삶의 고독을 깊은 안전을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강바닥의 따뜻함을요”
수치심의 복원을 통해 껴안는 열기
천국의 바깥으로 내뻗는 눈부신 생명력
사랑의 입체를 조각하는 김연덕의 두번째 시집
2018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다양한 시적 질료를 채집해 독창적인 시 세계를 펼쳐 보인 김연덕의 두번째 시집 『폭포 열기』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사랑에의 강력한 몰입과 이를 둘러싼 기표와 기의의 긴밀한 관계를 탐구한 기록으로서, 괄목할 만한 성취인 첫 시집 『재와 사랑의 미래』(민음사, 2021)에 이어 3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폭포’라는 장대한 자연물을 주요 소재로 삼아 총 43편의 시를 6부로 나누어 묶었다. 시인이 긴 시간 골몰해온 사랑의 형태는 평면적인 언어의 질서를 거부하고 입체적인 골조를 드러낸다. 일상 세계에 공고히 활착한 언어의 바위와 뿌리를 휘감고, 곡선의 유연함으로 시적 공간을 자유로이 활공하는 사유의 실험을 읽을 수 있다.
사랑에 있어서 김연덕은 만드는 손과 부수는 손을 모두 가진 ‘양손잡이’다. [……] 이 사랑은 실패하지만 지지 않는다. 이미 지고 시작하는 사랑은 기껏해야 ‘조금 더’ 지거나 ‘조금 덜’ 질 뿐이다. 물론 그 ‘조금’에마저 부끄러움을 느끼는 시인은 천국을 세우고 또다시 부수며 영원히 실패할 사랑을 기록할 것이다.
―하혁진, 해설 「천국을 부수는 손」에서
사랑의 파편이 간직한 광휘와 생명력
천국의 바깥에 펼쳐진 헝클어진 아름다움
다시 누런 논밭을 지나가는 기차 안에서 그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거대한
새와 같았던 그 꽃을 장식했던 사람에게
쓸쓸한 범죄를 이해하는 사람에게
나만의 방식으로, 섬광을 일시적으로나마 돌려줄 수 있을지 모른다고
―「나의 레리안」 부분
시집의 첫 시 「놀라지 않는 이 사랑의 삶」에는 “관리만 하고 살기엔 아직 젊은 내가” 등장한다. 시인이 두번째 시집을 구상하며 새롭게 획득한 시적 장소일 ‘산장’을 인수한 ‘나’, 즉 화자는 “가만히//있어야 한다는 지침”을 따르기엔 ‘젊다’. 누구의 명령도 주문도 받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동시에 결과에 대한 두려움 역시 크다. “당신의 이야기가 전부 내 것이 되기엔/아직 내가 너무/젊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전부 내 것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실패를 염두에 둔 선언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겠다. 화자는 왜 “당신의 이야기”를 “내 것”으로 품으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단서처럼 이어지는 시들은 ‘수치심’에 관한 고백이다. 모두가 잠든 밤, 타인의 눈이 감긴 밤에, 화자는 적당한 밝기를 구사하되 의도가 느껴지지 않는, “고전적인/아픔을 가두고 있는” 수정을 “인공 빛 아래” 작업대에서 손본다. 마치 ‘사랑’ 같아 보이는 것을 세공하는 것은 “낮에는 하지 않는 일”이다. 수정을 들여다보며 “이런 식으로 나에게도 거칠고 아름답고/뜨거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노동이 확인시켜주는 순간이 좋았”지만, “좋지만은 않았”다는 깨달음에 화자는 도달한다. 스스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전기의 작동으로 들어오는 빛, 자연이 아닌 인공의 설정으로 구현된 그토록 “새삼스럽고 간편하”며 환한 공간 아래에서 그가 느끼는 감정은 “현대적인 아픔”이다. 낮 동안의 수치를 정교하게 다듬고 밀어내기 위해 골몰하는 ‘재연’의 시간에 살아나는 감각. 반면 “고전적인/아픔”(「수정은 아름답고, 수정은 정확하고, 수정은 승리한다」)은 예측할 수 없으니 통제가 불가능하고, 그 어떤 목적성에 의해 야기된 것이 아니며, 자아에게 가해진 순간의 충격이자 습격에 가깝다. 본연의 수정이 가둔 아픔이, 화자를 끊임없이 압도하며 질식시킨다.
다시 돌아와서, 시집 전체의 프롤로그 격인 첫 시의 시간적 배경인 ‘낮’은 환하다. 모두의 눈이 깨어 있는 시간이다. ‘수치심’이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감정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낮은 화자의 불안을 고조시키고 감정을 자극하는, 편치 않은 시간대일 것이다. 그럼에도 화자는 이제 조심스레 진심을 털어놓는다. “사실은 이런 낮이 마음에 들어”. 화자는 자신이 인수한 산장에 “시공업자들”을 “한데 모은”다. 김연덕의 시에서 흔하게 출몰하는 시적 질료일 그들은 “어깨가 넓”고 “손목과 손끝이 특히/단단”하다는 묘사에서 보듯 뚜렷한 질감과 부피를 지닌 채 움직인다. “(안전한) 서랍을 놀라게 하는 자연이/반쯤 열린 삶으로/(시공업자들이 착용한) 오래된 디자인의 작업복과 어깨로//내려앉”는다. 안전한 밤과 인공의 세계를 떠나 산장에 도착한 시인과 산자락의 자연적인 작업 현장에 ‘동의’한 “시공업자들”을 통해 독자는 새로운 시적 서사가 도래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시인은 “바닥 없고/사회성 없는 폭포 이미지가” 주는 “이상한 위안”을 받아들여, 자연물인 ‘폭포’의 메커니즘을 시적으로 재구상한다. 강물이 수직으로 급강하하며 연출하는 장관. 대자연의 풍경을 뚫고 돌연 솟아난 폭포의 드라마틱한 풍경은 시집의 중심에 놓인다. 김연덕 시의 화자는 진짜 폭포가 아닌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인쇄된 폭포”(「미지근한 폭포」)를 유심히 관찰하는 데에서 출발해 생활 속 여러 장소를 떠돌며 “한낮의/현실 가운데” 서서 “느리게 흘러가는 모든 나의 수치스러운/장면들”을 목도한다. 때때로 진짜를 가린 아름다움에 습관처럼 걸음을 멈추고 매료되지만 “나의 피부에서부터 며칠 전 잊었던 열기”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나의 레리안」)낀다. “가짜가 힛 힛 웃으며 나를/치고 갔다는 기분”(「폭포 열기 열기」)을 힘껏 견딘다.
김연덕은 세월을 품고 퇴적과 침식으로 일어선 폭포의 물보라에 몸을 적신 채, “하나쯤//몰입하고 싶은//죽어서도 잊고 싶은 것”을 “하나쯤 잊고 싶은//죽어서도 몰입하고 싶은 것”(「수정은 아름답고, 수정은 정확하고, 수정은 승리한다」)으로 치환한다. 완전무결할 수는 없겠으나 “가벼운 수치심으로만 움직이는 장소”를 찾아, “자연에 기댄 거짓말로 느껴지지 않는 말들”(「gleaming tiny area」, p. 86)을 찾아 감행한 모험. 시인은 안전한 천국 바깥으로 나아가 곳곳에 흩어진 사랑의 빛을 좇기로 결심한다. 수치심 너머 사랑의 세계에 닿기 위해, “당신의 이야기”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절대적인 타자성으로 뛰어드는 새로운 자아
실패를 감수하고 변화를 기도하는 애틋한 몸부림
따뜻하고
머리 아픈 젊은 장면들
수증기와 무지개가 번갈아 펼쳐진 폭포 끝까지
빛과 물을 뒤집어쓰며 현실감
느껴지는 적당한 광채에 나의 전체를 빼앗기며 다른 말은 할 필요도 없어 아름답게
침묵하며 미친 듯이
웃으며 함께 다다랐던 느낌. 거의 완성될 뻔한 그런 느낌이 빠져나간
뼈.
─「폭포 열기 열기」 부분
이번 시집에는 같은 제목을 단 열한 편의 연작「gleaming tiny area」가 실렸다. 김연덕은 과거 『재와 사랑의 미래』에서 선보였듯, 시집을 구성하는 데 있어 탁월한 기획자이기도 하다. 기념품점을 나와 흘러 흘러 투명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기까지, 연작시만을 따로 읽었을 때 화자의 동선을 따라가보는 묘미가 있다.
시인은 수치심의 복원을 통해 더 멀리 드넓게 내뻗는 눈부신 생명력으로, 모두를 향해 새롭게 출현한다. 그리하여 단정할 수 없는 미래의 가능성에 기대어본다. “나의 자긍심은/때문에 언제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있다.” 화자가 응시하는 “미래에서/조금 지친 채 어둡고 자연스러운 색으로 낡아가는” 물건은 선물받은 것도, 덤으로 받은 것도 아니며, 주워 온 것도 아니다. “모든/것들인 동시에” “모든 것들이 아니며” 손에 쥘 때에 “무언가 괴롭고/정성스러운 나날들이 만져지는//나를 향해 있지는 않지만 이것을 만든 이의, 누군가의 세계를 향한 슬프고 기쁜/병들고/건강한/열망의 반복이 흘러드는 느낌”을 지닌 것이다. 그것은 고독과 맞서 시인이 어렵게 쏟아낸 사랑, 실체화되어 손으로 만져지는 진실일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구한 이 물건은 “창밖으로 쏟아지는 어두운 폭포를” 보고 “원하는 자리에서/원하는 속도로 삭아”갈 것이다. 폭포의 그림자에 묻혀 일순간 존재가 삼켜진 것처럼 보이기도 영영 사라진 것으로 착각되기도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따뜻하”고 “그리운 채 깨어 있는”(생활 속 폭포」) 물건의 느낌이다.
“나는 의도성이 짙은 사람”(「미지근한 폭포」)이라는 젊은 시인의 성찰에 우리는 깊이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적의도/호의도 없는” “이야기가 없고/고통이 없는”(「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은 한 시기가 뚜렷하고 촌스럽게 흐르는」) 외로운 시간을 지나 그는 타자의 의도가 충만한 세계에 몸을 내맡긴다. “되돌아오지 않는 물길들을 잊을 수도 키스를 멈출 수도 없어”(「미지근한 폭포」) 시작한 여행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시인은 스스로 설계한 안전한 천국을 떠나, 이미지에 갇힌 거대한 폭포를 맴돌며 열기를 껴안는다. “미지근한 온도로 사랑을 박제하고 있다는”(해설 「천국을 부수는 손」) 생각, 수치심을 딛고 김연덕의 시는 새로이 솟구치고 흐른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질문은 절대적인 타자성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물과 땀에 젖은 영혼은 점점 투명해지고 다친 손에는 맑고 흉한, “추하고 너그러운”(「잘못들」) 사랑이 고인다. 천국을 버린 대가로 돌려받은 “광휘와 생명력”으로 통증은 시작되지만, 해설을 맡은 하혁진의 말처럼 “사랑이 천성인 시인에게 그것은 차라리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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