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없는 밤

위수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우리에게 없는 밤

이 책을 읽은 사람

나의 별점

읽고싶어요
17,000원 10% 15,300원

책장에 담기

게시물 작성

문장 남기기

분량

보통인 책

출간일

2024.7.22

페이지

388쪽

상세 정보

“견고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적인 불안과 충동에 항상적으로 노출된” ‘은의 세계’를 “차갑고 섬세”(김형중 해설)한 문체로 그려내며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아온 작가 위수정의 두번째 소설집 『우리에게 없는 밤』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소설집 이후 2년 만에 찾아온 이번 책에는 2022년 제23회 이효석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아무도」를 시작으로 같은 해 제2회 김유정작가상 수상작인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포함하여 총 열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무덤이 조금씩」이 당선된 이후 5년 만에 출간한 첫 소설집에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렸던 것과 비교해볼 때, 다시 2년 만에 출간하는 두번째 소설집에 실린 열 편의 작품은 첫 소설집 이후 작품에 대해 한층 커진 기대와 관심으로 작가가 더욱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는 사실의 방증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앞서 밝힌 바와 같이 2022년에 연이어 문학상을 수상한 「아무도」와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각각 수상 소식을 전하기에 한 계절 앞서서 문학과지성사의 ‘이 계절의 소설’에도 선정되어 2022년 봄과 가을, 한 해에 두 번이나 작가의 이름을 <소설 보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위수정의 소설은 인물이 처한 상황, 내면의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독자를 작품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나와는 동떨어진 배경 속에,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을 살고 있음에도 소설 속 인물의 삶을 읽는 이로 하여금 고스란히 감각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담담하고 절제된 문장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작품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작가의 집요한 응시가 향하고 있는 곳에서 독자를 기다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과 그로 인한 고통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상세 정보 더보기

이 책을 언급한 게시물1

Jason님의 프로필 이미지

Jason

@jasont8tw

다 읽고 나니.. 작가의 첫번째 작품집도 읽고싶은 책 목록에 추가..

우리에게 없는 밤

위수정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2주 전
0
집으로 대여
구매하기
지금 첫 대여라면 배송비가 무료!

상세정보

“견고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적인 불안과 충동에 항상적으로 노출된” ‘은의 세계’를 “차갑고 섬세”(김형중 해설)한 문체로 그려내며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아온 작가 위수정의 두번째 소설집 『우리에게 없는 밤』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소설집 이후 2년 만에 찾아온 이번 책에는 2022년 제23회 이효석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아무도」를 시작으로 같은 해 제2회 김유정작가상 수상작인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포함하여 총 열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무덤이 조금씩」이 당선된 이후 5년 만에 출간한 첫 소설집에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렸던 것과 비교해볼 때, 다시 2년 만에 출간하는 두번째 소설집에 실린 열 편의 작품은 첫 소설집 이후 작품에 대해 한층 커진 기대와 관심으로 작가가 더욱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는 사실의 방증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앞서 밝힌 바와 같이 2022년에 연이어 문학상을 수상한 「아무도」와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각각 수상 소식을 전하기에 한 계절 앞서서 문학과지성사의 ‘이 계절의 소설’에도 선정되어 2022년 봄과 가을, 한 해에 두 번이나 작가의 이름을 <소설 보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위수정의 소설은 인물이 처한 상황, 내면의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독자를 작품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나와는 동떨어진 배경 속에,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을 살고 있음에도 소설 속 인물의 삶을 읽는 이로 하여금 고스란히 감각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담담하고 절제된 문장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작품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작가의 집요한 응시가 향하고 있는 곳에서 독자를 기다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과 그로 인한 고통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책 소개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모르는 단어 같았다”

평등한 밤 같은 건 오지 않는 불가능의 세계 속에서
노래가 되지 못한 채 울리는 허밍들

김유정작가상 수상작 「오후만 있던 일요일」
이효석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아무도」 수록!
평단과 독자, 모두가 기다려온 위수정의 두번째 소설집

소설이란 언제나 당대의 윤리나 규범, 도덕을 벗어난 자리에서, 오히려 그것들을 의심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 그러므로 인간과 세계에 대해 좀더 깊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에요. [……] 저는 누군가를 위로해주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한 적은 없어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어떤 상황이나 인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인터뷰 「위수정 X 이소」(『소설 보다: 봄 2022』)에서

“견고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적인 불안과 충동에 항상적으로 노출된” ‘은의 세계’를 “차갑고 섬세”(김형중 해설)한 문체로 그려내며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아온 작가 위수정의 두번째 소설집 『우리에게 없는 밤』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소설집 이후 2년 만에 찾아온 이번 책에는 2022년 제23회 이효석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아무도」를 시작으로 같은 해 제2회 김유정작가상 수상작인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포함하여 총 열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무덤이 조금씩」이 당선된 이후 5년 만에 출간한 첫 소설집에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렸던 것과 비교해볼 때, 다시 2년 만에 출간하는 두번째 소설집에 실린 열 편의 작품은 첫 소설집 이후 작품에 대해 한층 커진 기대와 관심으로 작가가 더욱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는 사실의 방증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앞서 밝힌 바와 같이 2022년에 연이어 문학상을 수상한 「아무도」와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각각 수상 소식을 전하기에 한 계절 앞서서 문학과지성사의 ‘이 계절의 소설’에도 선정되어 2022년 봄과 가을, 한 해에 두 번이나 작가의 이름을 <소설 보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위수정의 소설은 인물이 처한 상황, 내면의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독자를 작품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나와는 동떨어진 배경 속에,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을 살고 있음에도 소설 속 인물의 삶을 읽는 이로 하여금 고스란히 감각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담담하고 절제된 문장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작품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작가의 집요한 응시가 향하고 있는 곳에서 독자를 기다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과 그로 인한 고통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의 특징으로 종종 중산층 이상의 계급성을 이야기할 때 “그들이 가진 속물성, 그들이 학습한 교양이 내면의 욕구나 본능과 충돌하는 지점들에 주목하고 싶었”다고 밝히며, “돈이나 교양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 삶에는 분명히 있고 그러한 정말과 좌절의 경험이 동일하게, 그러나 각각 다른 방식으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한다(인터뷰 「위수정 X 선우은실」, 『소설 보다: 가을 2022』). 결국 위수정의 작품 속 인물들의 경험은 읽는 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중산층 이상의 계급’, 다시 말해 “맘먹으면 별다른 준비나 계획 없이 한적하고 철 지난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 물에 몸을 담근 후 자연산 재료로 만든 해물탕 정도는 먹다 남길 수 있는 수준의 부”를 “필수적인 ‘토대’”(김형중 해설)로 삼는 위수정의 ‘은의 세계’는 이번 책에 수록된 열 편의 소설에서 더욱 확장되어 금의 세계, 혹은 그 반대의 흙의 세계까지 뻗어 나간다.

“그곳에는 지금 눈이 내리니?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드는 눈이?
그러나 여기에 그런 눈은 내리지 않을 것이다”
저 얼음처럼 차가운 취향의 장벽 앞에 드러난 폐허의 자리


‘취향’은 고작 이별의 이유나, 존중하면 그만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강력한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계급을 형성하고 재생산하는 일이 취향의 몫이다. 아마도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자라면 계급이란 취향이 아니라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고집스레 강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댁들 취향이고) 작가 위수정에게 취향은 그와 다르다. 위수정에 따를 때 취향은 넘어설 수 없는 계급 간 경계를 확정하고 유지시킨다.
―김형중, 해설 「눈만 내리면 평등한 밤이」(p. 365)에서

이번 소설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위수정의 소설에 따르면 금, 은, 흙 세계의 경계를 획정하고 유지시키는 것은 ‘취향’이라고 설파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아무도」의 희진과 「오후만 있던 일요일」의 원희, 「제인의 허밍」의 규희와 「우리에게 없는 밤」의 라이온퀸 그리고 「몬스테라 키우기」의 민희에서 보듯, 적극적으로 취향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미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을 누리며 다른 이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여유가 몸에 배어 있는 금의 세계 사람들은 오히려 다른 세계를 욕망하기까지 하지만 결코 자신이 가진 것을 과감히 버리지는 못한다. 한편 「제인의 허밍」의 한나와 같은 은의 세계 사람들은 끝없는 모방으로 금의 세계에 다가가려 하지만 거대한 취향의 장벽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궁핍한 삶을 살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 과제인 흙의 세계 사람들에겐, 비슷한 취향을 가졌으나 결국은 돈 문제로 헤어지고 마는 「플루토, 너의 검은 고양이」 속 동거인들처럼 취향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거나, 「우리에게 없는 밤」의 지수와「집」의 화자처럼 자신의 폐허를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는 것일 뿐이다. 이제 각각의 작품 속에서, 작가가 깊이 들여다보고 묘사하는 이 세계 속의 인물들을 만나보자.

「아무도」

그런 식으로 내가 점점 더 외롭고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그대로 두었다. 이러려고 집을 나온 거니까. (p. 14)

희진은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고 남편 수형을 떠나 혼자의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 남자와 함께하는 삶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고,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유부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그를 향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그로 인해 더욱 고통스러운 스스로를 방치하는 희진의 곁에는 이 모든 것을 알고도 한결같이 다정하고 따뜻한 부모님과 남편이 있다. 한편 희진의 욕망을 욕하는 사람, 반대로 그 꿈처럼 모호한 현실을 유지하길 바라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기에, 희진은 결국 자신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임을 안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

원희는 불협화음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기승전결이 있는 고전적인 곡들을 선호했다. 그런데 고주완의 공연 이후로 달라졌다. 원희는 이렇게 단번에 취향이 다른 쪽으로 열리는 경험을 해본 기억이 없었다. (p. 59)

여유롭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육십대의 원희는 친구 수임의 권유로 젊은 피아니스트 고주완의 연주회에 갔다가 그에게 빠진다. 오랜 시간 잊고 지낸 감각이 살아나면서 원희는 처음 경험하는 온라인 팬 카페 활동에 활력을 느끼기도 하고, 지금껏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불협화음으로 이루어진 곡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이러한 즐거움도 잠시, 고주완의 공연 후 젊은 여성에게 경멸 어린 말을 듣게 된 원희는 셋째를 임신 중인 딸과 치매를 앓고 있는 시모를 둔 자신의 현실을 자각한다. 매혹적인 불협화음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욕망과 현실 사이의 슬픈 간극은 원희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어쩐지 원희의 미래는 고급 실버타운에 있는 듯 보인다.

「제인의 허밍」

한나는 잠시 후면 제인이 된다. 거울을 보며 입꼬리를 올려보았다. 입만 보면 사람들은 한나가 미소 짓는 줄 알 것이다. 얼굴을 상상하겠지. 자신의 취향에 맞는 눈동자와 콧대와 이마와…… (p. 90)

한나는 무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하는 방송인 ‘제인의 허밍’을 운영하는, 20만 구독자를 가진 인플루언서 유튜버이다. 간혹 허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고급한 취향을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한나의 방송은 그녀에게 그전과는 다른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처음부터 살아온 세계가 달랐던 규희와의 재회를 통해 한나는 다시금 자신이 따라 갈 수 없는 거리를 느낀다.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급한 취향이 단지 흉내일 뿐이라는 것을 확인한 규희와의 만남 이후, 한나는 방송에서 더욱 과감한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이 동경하는 제인 버킨의 모습에 한 걸음 더 다가가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우리에게 없는 밤」

견고하고 단단한, 얼음으로 만든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 건 실제로 본 적도 없는데. 실수로 손이라도 닿으면 얼음에 손이 붙어버려 뗄 수 없는, 억지로 떼었다가는 살갗이 찢어져 피를 볼 것이 분명한. 지수의 내부에서 빨간불이 깜박였다. 위험하다고. (pp. 134~35)

지수는 고등학교 때 부터 재미 혹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조건 만남’을 가져왔지만, 대학교 2학년인 지금은 필요에 의해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아르바이트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진심으로 고양이들을 돌보는 친구 은선과 함께하며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지수는 은선이 그리는 미래에 자신이 빠진 것이 못내 서운하다. 어느 날 라이온퀸이라는 아이디로 연락해 온 여성과 고급 호텔에서 인상적인 시간을 보낸 지수는 은선과 자신에게는 평등한 밤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폐허뿐인 현실의 자리를 확인한다.

「몬스테라 키우기」

습관이라고 했다. 발소리를 내지 않고 걷는 것. 문을 세게 여닫지 않는 것. 보육원 원장은 정이 많았으나 예절 교육에 엄격한 편이었다고 했다. 민희는 보육원 출신이라는 말을 누군가의 입에서 실제로 들어본 적이 처음이었다. (p. 168)

마약중독 치료 후 요양을 겸해 해안 도시의 고급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민희는 보육원 출신의 지역 대학생 한재순을 룸메이트로 들인다. 민희는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재순은 집안 살림을 꾸리면서 민희를 돌보며 둘은 점차 가까워진다. 한편 재순이 박재희란 이름으로 민희의 집과 그 외에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원래 자신의 것인 양 가장하여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을 알게 된 민희는 처음에는 그것을 흥미로워하지만, 어느 날 잠든 자신의 발 사진과 함께 올라온 “자본주의의 개년. 왜 사는 걸까”라는 문구를 본 뒤 알 수 없는 배신감으로 재순에게 선을 긋는다. 박재희는 인스타그램에서 그 문구를 오타였다고 정정하지만 한번 멀어진 민희의 마음은 회복되지 못하고, 결국 민희는 재순을 집에서 내보낸다.

「플루토, 너의 검은 고양이」

싫다…… 아, 이것은 억울함이 아니라 싫은 감정이구나. 혐오구나. (p. 211)

서로를 연인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생활을 공유하는 두 사람. 취향이 비슷했고, 어떤 점에선 조금 어긋나도 크게 문제될 일이 없었던 두 사람이지만, 작고 검은 새끼 고양이를 만난 이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고양이 물품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고양이는 엄청난 병원비를 남기고 떠났고, 둘 사이엔 허공의 냉기만이 남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 끝에 결국 감정이 격해진 두 사람은 결국 돈 이야기를 끝으로 헤어지고 만다.

「멜론」

나는 숙주가 된 기분이야. 남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런 말이 어딨어. 아니, 무슨 기분인 줄은 알겠는데 그 말은 좀 심하다. 축복아, 방금 말은 못 들은 걸로 하자. (p. 241)

마흔이 넘어 1년 남짓의 연애를 한 뒤 새로운 관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결혼을 한 ‘나’와 남편 지운. 함께 사는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결혼 1주년 기념 여행을 계획하던 이 부부에게 사십대 중반의 나이에는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자연 임신이라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일을 ‘축복’이라 여기며 모든 생활을 배 속 아이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 남편과 달리,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신체적·정신적 변화에 큰 혼란을 느끼며 남편에 대한 분노를 쌓아간다.

「9」

혜신은 그날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것이 무엇인지 되물었다. 돈 때문이었을까. 정말로, 돈 때문에? (p. 252)

지인들과 함께 놀러 간 스키장에서 카지노에 첫발을 들인 혜신은 자신이 알던 세상과는 동떨어진, 낯선 장소라 느꼈던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잃은 돈을 되찾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혜신의 분투는 절박하게 발버둥 칠수록 그녀를 더욱 추락시킬 뿐이다. 늘 잃기만 하다가 오랜만에 돈을 따는 운이 좋은 날이 찾아와도 혜신은 쉽사리 집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지 못한다.

「집」

우리는 너무 오래 한곳에만 있었어. 다녀오면 좋을 거야. 달라질 거야. (p. 297)

빌라 전세 사기로 집이 경매에 넘어간 진과 부모가 진 빚을 갚는 데 지친 ‘나’는 나란히 회사를 그만두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나’가 다니던 은행에서 빼돌린 돈으로 두 사람은 도시와 국경을 옮기며 여행을 이어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진은 집에 남겨진 것들을 걱정하며 돌아가고 싶어 한다. ‘나’는 진에게 돈을 보냈다며 곰팡이가 피지 않고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을 얻으라고 말하고, 좋은 집을 구해놓으라는 메모를 남긴 뒤 떠난다. 비행기를 타고 추운 나라로 떠난 ‘나’는 얼어붙은 호수에 누워 얼음 아래, 물속에 있을 것만 같은 자신의 집으로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몸과 빛」

이런 순간이 모두에게 공평히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충만한 삶을 사는 이들은 좀처럼 접하지 못하는 순간이다. (p. 330)

1톤 트럭에 치여 도로를 피로 적시며 죽은 자신의 죽음을 보는 ‘나’의 모습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유령이 된 ‘나’는 육신과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자신을 친 배달 노동 운전자의 이후 시간을 따라간다. 궁핍한 삶을 살던 운전자는 처음엔 사고를 낸 충격으로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이내 합의금에 대한 걱정에 괴로워하고 종내 자신이 여자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력감에 ‘나’는 쓸쓸히 그를 떠나고, 빛 속에 몸을 잃고 사라진다.

계급의 장벽 앞에서 저마다 다른 모양의 고통을 감각하며 자신만의 폐허를 확인하는 인물들의 세계는 다름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이다. 작가는 지금, 여기, 우리의 밤을 들여다본.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드는 눈은 내리지 않을 것이고, 폐허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남의 흉내일 뿐인 허밍만 읊조리는 밤을. 그 밤의 한가운데에서 내뱉는 사랑한다는 말은 모르는 단어처럼 멀게 느껴지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위수정식의 위로일지도 모른다.

무제한 대여 혜택 받기

현재 25만명이 게시글을
작성하고 있어요

나와 비슷한 취향의 회원들이 작성한
FLYBOOK의 더 많은 게시물을 확인해보세요.

지금 바로 시작하기

플라이북 앱에서
10% 할인받고 구매해 보세요!

지금 구매하러 가기

FLYBOOK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