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

이황 지음 | 창비 펴냄

이황 (조선 유학의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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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4.7.15

페이지

300쪽

상세 정보

창비 한국사상선 제5권 『이황: 조선 유학의 분수령』은 인간 본성에 관한 연구로 조선의 유학을 동아시아 전체의 교범으로 격상한 퇴계 이황의 글을 엮어낸 책이다. 이황은 한평생 주자의 학문을 주석하고 집대성하면서 당대 유학의 경향을 이끌었고, 그가 창설을 주도했던 서원들은 그의 사후 400여개로 늘면서 조선의 주요 교육기관으로 발돋움했다.

조선 국왕을 비롯한 국정 지도자들에게 스스로 몸과 마음을 부단히 갈고닦을 것을 권하면서 군주와 사대부가 문교(文敎)의 정치에 매진할 것을 주문했다. 이로써 그는 조선의 유학을 연구와 실천 양면에서 한 단계 올려놓았고 유학이 조선 중후기의 통치이념으로서 완전히 자리잡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이 책에서는 이황이 남긴 글 가운데 이학의 전승과 확산을 위한 노력, 이학의 이론에 대한 성찰, 경세 방략, 생활의 경계 등을 엿보게 해주는 글을 위주로 선별·번역해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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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박사 최경희

@c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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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상선 이황 
 
창비에서 지원 받아 경상대 교육대학원 교육철학 전공학생들과 함께하는  '사유의 정원' 철학동아리에서 한국사상선 '이황' 편을 함께 읽었다. 
 
1학기 때 동양교육철학을 공부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공자의 유학사상과 한국의 유학에 대해 공부했던 경험이 있어서 이번 창비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국사상선은 우리 전공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2026년 창비 60주년이 되면 총 30권이 완간 된다고 하니 벌써 기다려진다. 
 
동아시아 사상의 흐름은 크게 유교와 불교, 도교인데,
한국은 이러한 세 가지 사상을 모두 흡수하며 발전시켜 왔다.
특히 중국과 지역적으로 인접한 까닭에 고대로부터 유교사상이 한국에 들어와
민족정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유교는 중국을 발상지로 하고 그것이 여러 나라로 전해졌다.
삼국시대 이전의 한국사상에 관해서는  문헌 부족으로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한자와 더불어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 당나라의 학제인 국학을 받아들인 때를 그 기원으로 삼는다. 
 
당시의 유교는 유능한 관리를 양성하는 데 목적이 있었고,
부차적으로는 지도 계급으로 하여금 경사에 통하게 하고 사부와 문장을 능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특히 조선의 유교는 철학이 중심이었고 그 철학은  실제 행동으로 민중을 움직였다.
국정의 부패를 규탄하는 유생들의 상소가 있었고,
국권이 침해되었을 때 항거하는 의로운 행동이 있었다.
 
선조때는 많은 유학자가 배출되고, 리기 심성(理氣 心性)의 신유학(宋學)이 크게 일어나 조선 유학의 전성 시대를 이루었다.
그 중에도 이황과 이이는 가장 뛰어나 한국 유학사상의 대표적 유학자다.  
 
한국사상이라는 표현 자체가 조금은 낯설었지만 이황편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역사에서 지성들의 사상과 철학이 재조명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조선 시대 유학은 연구와 실천에 있어 이황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이황은 조선 유학의 분수령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이황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
그러나 12세 때 숙부로부터 논어를 배웠고 20세에는 건강을 해칠 정도로
'주역' 등의 독서와 성리학에 몰두했다고 한다. 
 
이황의 성리학은 정자와 주자가 체계화한 개념을 수용하여 '이(理)를 보다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서 '이기이원론'이란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이를 모든 존재의 생성과 변화를 주재하는 우주의 최종적 본원이자 본체로서
규정하고 현상세계인 '기(氣)'를 낳는 것은 실재로서의 이라고 파악했다. 
 
이황은 토론을 좋아했고, 자신의 주장에 대하여 남의 평론을 즐겨 들었다고 한다.
학문에서 자신하는 태도가 지식의 확장을 가로막는 장애가 된다고 이를 경계했고,
타인과의 논변을 통해 칠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고 학문적 관점을 넓혀나갔다. 
 
1549년 풍기군수를 사직한 뒤 줄곧 학문에 전념했는데
자신이 벼슬에 맞지 않다고 여겼다. 
 
이황의 업적들을 읽으면서 이 시대에 오직 학문에 증진하는 이황과 같은 진정한 학자가 많지 않음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그의 사상적 측면에서 '선'을 실천하다가 당하는 비방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게 처신하기를 당부한 부분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즉, 그의 논리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때로 비방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조선의 사림이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맞서는 주요한 전통이자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황의 이기이원론은 한 번 읽으면 따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몇 번을 읽고 있으면 그 뜻이 이해가 되고 그 가르침이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늘은 곧 이(理)다. 그 덕은 네가지가 있다.
원, 형, 이, 정으로 원은 시작함의 이다. 형은 형통함의 이다, 이는 완수함의 이다, 정은 종결함의 이다. 사덕이 순환하여 쉬지 않은 것은 진실하여 속임이 없는 것의 정묘함이 아님이 없다" 
 
옛 선비와 학자들은 글귀 하나 문장 하나에도 이렇게 철학적 함축성을 담아내고 있다. 
 
한국사상선 이황편은 한편으로는 난해하고 어렵고 따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정독하면서 그 뜻을 알아가는 시간은 새로운 길을 알게 되는 기쁨의 순간을 맞이함과 같다.
 
 "공자는 계속 잇는 것은 선함이고 이루는 것은 성이라는 논의를 했다.
주자는 무극이면서 태극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들은 모두 이와 기가 서로 따르는 가운데 이를 따로 꺼내어 단독으로 말한 사례다" 
 
문장 하나 풀이하는데 많은 시간이 든다.
도 닦는 심정으로 더운 여름 날 읽은 책이다. 
 
양명학 비판, 사칠논변, 서원과 향악의 선도, 군자의 길........ 
 
여름 
 
아침
새벽 일어나면 빈 뜰 대나무마다 이슬 선명하여
창문 밀치고 멀리 푸른 산빛 마주하지.
어린 동자 익숙하게 물 한병 따라 부을 때
얼굴 씻는 대야에 탕왕 날마다 새겼던 좌우명. 
 

조용한 한낮 산속 강당으로 햇살 맑아
옥빛으로 빼어난 나무들 처마와 기둥 둘러싸고,
북쪽 창 아래 한가롭게 누워 태곳적 사람 되면
서늘한 바람 한마리 새소리 실어오지. 
 
저녁
석양의 고운 빛 계곡과 산 진동할 때
바람은 자고 떠도는 구름 사이 새들은 저대로 돌아오고,
그윽한 그리움에 홀로 잠기니 누구와 더불어 말하랴
바위 언덕 고적한 사이로 물 소리만 졸졸. 
 

고요한 뜰 빈산에 달 절로 밝고
짐을 벗은 이부자리 꿈속 혼도 맑지
깨어선 혼잣말 고하지 않으니 무슨 일인지 어찌 알랴
누우면 들리는 건 한밤중 학 우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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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

이황 지음
창비 펴냄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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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창비 한국사상선 제5권 『이황: 조선 유학의 분수령』은 인간 본성에 관한 연구로 조선의 유학을 동아시아 전체의 교범으로 격상한 퇴계 이황의 글을 엮어낸 책이다. 이황은 한평생 주자의 학문을 주석하고 집대성하면서 당대 유학의 경향을 이끌었고, 그가 창설을 주도했던 서원들은 그의 사후 400여개로 늘면서 조선의 주요 교육기관으로 발돋움했다.

조선 국왕을 비롯한 국정 지도자들에게 스스로 몸과 마음을 부단히 갈고닦을 것을 권하면서 군주와 사대부가 문교(文敎)의 정치에 매진할 것을 주문했다. 이로써 그는 조선의 유학을 연구와 실천 양면에서 한 단계 올려놓았고 유학이 조선 중후기의 통치이념으로서 완전히 자리잡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이 책에서는 이황이 남긴 글 가운데 이학의 전승과 확산을 위한 노력, 이학의 이론에 대한 성찰, 경세 방략, 생활의 경계 등을 엿보게 해주는 글을 위주로 선별·번역해 실었다.

출판사 책 소개

학문의 본령과 학자의 자세
유학자들의 기준이 된 퇴계의 사유와 실천


창비 한국사상선 제5권 『이황: 조선 유학의 분수령』은 인간 본성에 관한 연구로 조선의 유학을 동아시아 전체의 교범으로 격상한 퇴계 이황의 글을 엮어낸 책이다. 이황은 한평생 주자의 학문을 주석하고 집대성하면서 당대 유학의 경향을 이끌었고, 그가 창설을 주도했던 서원들은 그의 사후 400여개로 늘면서 조선의 주요 교육기관으로 발돋움했다. 조선 국왕을 비롯한 국정 지도자들에게 스스로 몸과 마음을 부단히 갈고닦을 것을 권하면서 군주와 사대부가 문교(文敎)의 정치에 매진할 것을 주문했다. 이로써 그는 조선의 유학을 연구와 실천 양면에서 한 단계 올려놓았고 유학이 조선 중후기의 통치이념으로서 완전히 자리잡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이 책에서는 이황이 남긴 글 가운데 이학의 전승과 확산을 위한 노력, 이학의 이론에 대한 성찰, 경세 방략, 생활의 경계 등을 엿보게 해주는 글을 위주로 선별·번역해 실었다.
조선 성리학을 이끈 방향타이자 동아시아 주자학의 교과서

이황은 1501년(연산군 7년)에 태어났다. 그다음 해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숙부 이우의 보살핌과 지도를 받았는데 숙부마저 이황이 17세 때 세상을 떠나면서 그 뒤로는 특정한 스승 없이 혼자서 공부를 이어갔다. 성균관에서 공부했으며 34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543년 『주자대전』 간행 시에 교정을 맡았으며 그 뒤로 『주자대전』을 새롭게 고증하여 그 주제를 정확히 규명하는 실증적 연구를 이어갔다. 특히 주희의 문집 전체를 통독한 뒤 『주자서절요』를 펴냈는데, 이 『주자서절요』는 당대 동아시아 주자학의 주요 교과서처럼 쓰였고, 이황의 이론은 이후 조선 이학을 이끄는 방향타가 되었다.
벼슬에는 큰 뜻이 없어 명종이 여러차례 불렀을 때에도 얼마간 조정에서 일하다가 다시 귀향하기 일쑤였다. 1567년에는 명나라 사신을 응대하는 제술관에 임명되어 명 사신들에게 한반도를 대표하는 유학 지식인들(우탁, 정몽주에서부터 조광조와 서경덕에 이르기까지)을 소개했다. 뒤이어 선조 대에도 왕의 부름을 받고 조정에서 일하며 당시 조정의 급선무를 정리하여 「무진육조소」를 올렸다. 또한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올려 군주가 사적인 욕망을 자제하기 위해 일상에서 항상 성학(聖學, 성인이 되는 학문)을 갈고닦을 것을 당부했다.
이황이 유학 연구와 실천에 매진했던 때는 중국에서는 양명학이, 일본에서는 불교가 성행하던 때였다. 이황은 당시 유행하는 중국 양명학에 맞서 정통 주자학의 입장에서 인간의 본성을 해명하고 실천했다. 이황 이론의 핵심은 “선학(禪學)처럼 인륜의 마음을 깨닫고 각성하는 것이 아니라, 외물이 오면 응대할 수 있게 인륜의 이치가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는 마음의 상태를 잘 견지하는 것”(18면)에 있었다. 이 내용을 담은 『연평답문』은 특히 일본에서 이학을 전파하는 데에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
1555년 귀향한 뒤로 이황은 본격적으로 주희의 편지 중에서 여러 이론적 쟁점 및 정론이 되는 부분을 선별했다. 이 작업은 단순히 『주자서절요』와 『자성록』이라는 해설서를 펴냈다는 결과를 넘어, 이론을 실천으로 전환해내지 못하는 이황 자신의 내적 간극을 좁히는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그에게 큰 의미가 있다. 이처럼 지식을 축적함과 동시에 실천을 통해 인격의 성숙을 꾀하는 시도는 당대 동아시아 유학자들에게 절실히 다가왔고, 자연히 『주자서절요』와 『자성록』은 당대 유학자들의 주요 교과서로 자리매김했다.
이황은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접한 『심경부주』를 통해 『심경』을 평생 수행의 지침으로 삼기도 했다. 이 또한 조선 유학자들의 또다른 지침이 되어, 이후 조선에서는 『심경』을 공부함으로써 이학의 심법(心法)을 실천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심경』은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요순의 마음과 같게 하는 성학(聖學)의 지침이 되고, 임금을 향해서는 요순 같은 성군으로 인도하는 격군(格君)의 지침이 되며, 백성을 위해서는 요순처럼 백성을 친애하는 안민(安民)의 지침이 되었다.”(20면)
이황은 유년 시절부터 이(理)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졌다. 12세 때 숙부에게 “무릇 사물에서 옳은 것이 이(理)인가요”라고 묻고 자신의 오랜 의문을 해소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뒤이어 공부를 이어가면서 인간의 본성이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으로 발현되는 과정을 이(理)와 기(氣)로 설명하는 문제를 연구했다. 이 같은 성찰은 기대승과의 서신 왕래를 통해 8년에 걸쳐 논변으로 전개되었고, 이것이 바로 이른바 사칠논변, 사단칠정논변이다. 특히 서경덕의 제자인 이구가 체(體)와 용(用)이 어떤 실체가 아니라 추상적 개념이라고 제기했을 때에 이황은 이(理) 자체가 구체적인 실체〔體〕이며 사물에서 발현될 때에 용(用)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사칠논변은 조선 후기 내내 유학자들에게 회자되며 유학 이론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단서가 되었다.
이황의 업적 중에서는 서원의 중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서원과 향약에 관련한 이황의 글 가운데, 그가 백록동서원의 사액을 요청했던 글과 이산서원의 학규, 역동서원의 건립을 기념하여 쓴 글, 향약조례, 그리고 향회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자리를 정해야 한다고 밝힌 글 등을 뽑아 수록했다.

시대를 넘어 학파를 넘어, 조선 유학의 에토스가 되다

이황은 자신의 죽음 이후에 자신에 대한 과장된 평가를 막기 위해 직접 본인의 일생을 정리해두었다. 이 책에는 이황이 만년에 적은 「도산기」와 「도산잡영」을 비롯하여 「자명」 「고종기」 「유계」를 수록했는데, 이는 죽음을 맞이하는 대학자의 실제 모습을 생생히 엿볼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학문을 즐기는 ‘지식인의 한 전형’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황을 ‘조선의 에토스’ 그 자체로 평가해도 손색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라는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나 최제우, 박중빈의 개벽사상 등으로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이황을 포함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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