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이희영 지음 | 현대문학 펴냄

페이스 (이희영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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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4.3.25

페이지

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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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한국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장르> 시리즈의 세 번째 책, 이희영 작가의 『페이스』가 출간되었다. 월간 『현대문학』 2023년 9월호에 실렸던 동명의 중편소설을 개작한 『페이스』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얼굴을 본 적 없는 인물의 시선을 통해 외양 너머 보이지 않는 자아의 세계를 그려낸 작품이다.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페인트』로 40만 명에 이르는 독자들의 호응을 끌어내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이희영 작가가, 이번에는 ‘얼굴’로 표상되는 자기 인식의 통로를 과감히 지워버리는 상상을 전개함으로써 “자의식의 미결정 상태에 도전”(김지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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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

@lucyuayt

“주제넘은 소리일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는 천천히 내뱉는다. 그러고는 조심히 입을 연다.
“크게 달라질 건 없는 것 같다. 너와 아빠 사이 말이야. 물론 나는 제삼자 입장이고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삶을 사는 건 아니잖아. 정말 네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을 거야.”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스케치북에 실수로 물감을 흘린 적이 있어. 밑그림 다 그리고 색칠을 하려는데 물감 한 방울이 엉뚱한 곳에 떨어진 거야. 맨 처음 든 생각은 아! 망했다. 열심히 그린 그림이 다 날아갔구나. 다시 그릴 시간도 없고, 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그냥 채색을 시작했어. 색칠하면서도 그 물감 자국만 자꾸 도드라져 보이잖아. 에라 모르겠다, 이왕 망친 거 대충하자, 그렇게 정신없이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거짓말처럼 물감 흘린 자국이 안 보이는 거 있지?”
카드를 손에 쥔 채 묵재가 나를 본다. 나는 다시 말을 잇는다.
“그냥 너와 아빠가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을 밑그림이라고 생각해봐. 거기에 물감 한 방울이 떨어졌어.”
처음에는 유독 얼룩만 도드라져 보일 것이다. 그 한 방울이 전체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생각하겠지. 하지만 결국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의 문제다. 삶의 얼룩들에 한번 시선을 빼앗기면 더 크고 소중한 것들이 안 보인다.
“나는 너와 아빠가 열심히 그린 나머지 그림들에 집중했으면 좋겠어. 얼룩은 안 사라져. 결국 더 짙은 색으로 덮을 수밖에 없어. 행복이나 추억 같은 것으로...”

너는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내 얼굴이 보이지 않아. 태어나서 단 한번도 내 얼굴을 본 적이 없어. 음, 이런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지금까지 한 번도 네 생물학적 아빠를 보지 못한 것과 비슷할 거야. 그래도 우리 괜찮잖아. 하루하루 잘 살아왔고 살아가는 중이고 또 살아갈 거잖아. 물론 속상한 적도 많지.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대체 무슨 잘못을 했을까? 슬프고 화나고 억울한데, 사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해. 다만 내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이지. 네가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상상할 수 없듯, 내가 너에게 그런 아픔이 있는지 생각하지 못했듯 말이야.
살아가면서 열심히 그린 밑그림에 물감 한 두방울 씩 안 흘려본 사람은 없을 거야. 다만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가 중요하겠지. 작은 얼룩 말고 더 넒은 부분을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솔직히 나는 내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오히려 편할 때도 있어. 남들보다 외모에 덜 신경 쓰거든. 뭐, 쓸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대신 남들은 볼 수 없는 나만의 얼굴이 있어. 매일 아침 그 기묘한 스타일을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거든.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세상의 시선이 아닌 너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뭔가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
소리 없는 말들을 건넨 후, 나는 묵재를 향해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미소를 보낸다. 비록 나는 볼 수 없는 미소지만 부디 이 마음이 묵재에게는 닿기를 원한다.

페이스

이희영 지음
현대문학 펴냄

읽었어요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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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

@jjiniatv2

사춘기 소녀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20대 중반이 읽어도 지나온 날에 많이 공감이 됐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페이스

이희영 지음
현대문학 펴냄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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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

@jjiniat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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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이희영 지음
현대문학 펴냄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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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당대 한국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장르> 시리즈의 세 번째 책, 이희영 작가의 『페이스』가 출간되었다. 월간 『현대문학』 2023년 9월호에 실렸던 동명의 중편소설을 개작한 『페이스』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얼굴을 본 적 없는 인물의 시선을 통해 외양 너머 보이지 않는 자아의 세계를 그려낸 작품이다.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페인트』로 40만 명에 이르는 독자들의 호응을 끌어내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이희영 작가가, 이번에는 ‘얼굴’로 표상되는 자기 인식의 통로를 과감히 지워버리는 상상을 전개함으로써 “자의식의 미결정 상태에 도전”(김지은)한 것이다.

출판사 책 소개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장르> 시리즈의 세 번째 책 출간!

이 책에 대하여

“나는 내 얼굴을 모른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으니까.”
40만 독자가 열광한 『페인트』 이희영이 그려내는 거울 너머의 세계

“그동안 다른 소설들에서 만난 적이 없었던
자아에 대한 강력한 비유다”
_김지은(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당대 한국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장르> 시리즈의 세 번째 책, 이희영 작가의 『페이스』가 출간되었다. 월간 『현대문학』 2023년 9월호에 실렸던 동명의 중편소설을 개작한 『페이스』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얼굴을 본 적 없는 인물의 시선을 통해 외양 너머 보이지 않는 자아의 세계를 그려낸 작품이다.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페인트』로 40만 명에 이르는 독자들의 호응을 끌어내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이희영 작가가, 이번에는 ‘얼굴’로 표상되는 자기 인식의 통로를 과감히 지워버리는 상상을 전개함으로써 “자의식의 미결정 상태에 도전”(김지은)한 것이다.

“거울을 똑바로 마주 볼 것.
흐리거나 맑은 날씨처럼 매일이 다른 우리이므로”

‘나’라는 존재는 단 한 순간도 같은 모습일 수 없다는 진실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만연한 오늘날의 사회에서, 『페이스』는 과연 우리가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핀셋 같은 시선과 기준”(83쪽)으로 엄격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시적인 흉터를 가리고 지우는 데 급급한 나머지 꼭 직면해야 할 마음속 상처를 정작 외면해온 것은 아닌지. 『페이스』의 주인공 인시울이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얼굴’을 일부분이나마 마주하게 되는 계기가 다름 아닌 ‘흉터’였다는 사실을 통해 마음속 상처와 아픔이야말로 한 존재의 자아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임을 시사한다.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가 “상처 자국을 통해서만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다른 소설들에서 만난 적이 없었던 자아 정체성의 인식에 대한 강력한 비유”라고 말하였듯,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다는 상징”(148쪽)으로서의 흉터를 직면하고 나아가 긍정하는 시울의 모습은 우리가 자아상을 어떻게 구축해야 할지 그 실마리를 보여준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보는 것은 곧 마음을 여는 것이며, “그 너그러운 시선은 제일 먼저 스스로에게 향해야 한다”는 작가의 말과도 상통하는 지점이다.
『페이스』의 또 하나 빛나는 지점은, 자아에의 이해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대로 확장되어가는 광경까지 그려낸 데 있다. 시울이 직면하는 것은 자신의 흉터뿐만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넘어 나를 둘러싼 세상으로 시야를 넓혀가는 시울의 눈에 포착되는 주위 사람들이 감춰온 ‘진짜 얼굴’이다. 매일 거울을 붙들고 살지만 정작 자신의 반짝이는 면을 잘 알지 못하는 라미,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새겨진 연로한 얼굴 아래 천진한 표정을 지니고 있는 할머니 최옥분 씨, 그리고 다난한 가정사로 인해 무뚝뚝한 가면을 쓰게 되었으나 마음속 깊이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묵재를 차례로 바라보면서, 시울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직시하고 “거울 너머” 무궁무진하게 변화되는 세상이 있음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결국 『페이스』는 ‘나’라는 존재가 단 한 순간도 같은 모습일 수 없다는 진실을 전하는 소설이자, 그러한 진실을 이 세상 모든 ‘나’들에게 적용해보기를 다정하게 권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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