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남의 집

이윤석 외 1명 지음 | 다산북스 펴냄

즐거운 남의 집 (전월세의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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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4.2.20

페이지

230쪽

상세 정보

사회가 상상하는 청년은 ‘원룸’에 산다. 집이 아닌 방에서 ‘자취’한다. 10만 원짜리 용달차로 이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짐, 집주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얌전한 생활, 최소한의 주거면적에서도 적당히 만족하며 사는 삶… 세상이 기대하는 청년들의 삶은 못 대신 꼭꼬핀으로 잠시 고정된 채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대표적인 주거불안정 집단인 2030세대의 주거를 누구보다 진정성 있게 대변할 수 있는 90년대생 건축가 이윤석과 김정민. 세입자로서의 희로애락을 피부로 체감하는 이들이, 때론 서럽고 때로는 즐거운 2년짜리 시한부 거주에 관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돈 주고 살 수 있는 집은 아니더라도 내가 나답게 하루를 살 수 있는 집은 모두에게 필요하다. 집이 자산과 투자 대상으로 여겨지는 지금, 매매가 아닌 주거권의 관점에서, 매물이 아닌 삶의 양식으로 집을 바라보는 건 정녕 불가능한 일일까?

무너질 일 없는 벽돌집을 여러 채 가진 기성 건축가들은 공감할 수 없는 청년 세대의 주거 현실과 빌린 집에 관한 고찰을, 두 저자는 젊은 건축가이자 세입자의 시선으로 날카로우면서도 위트 있게 포착해 냈다. 전월세 거주자들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담은 이 책은 집을 부동산으로만, 지위와 계급으로만 보는 사람들에게 외치는 당찬 선언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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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yijuyeonxm0c

부제 전월세의 기쁨과 슬픔이 제목의 역설과 잘 어울렸다. 흥미롭게 읽었다.
건축가인 두 사람이 나뉘어서 ‘집’에 관한 개인적 시선에서부터 인문사회적인 사유로까지 흘러가는 이야기들이 들어왔다.
일견 30대들의 전월세의 이사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에서 계속 살아가면서도 언젠가 소유하게 될 집에 대한 의미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프롤로그는 이윤석이 에필로그는 김정민이 썼는데, 도입부의 글과 마무리의 글이 책의 정체성을 담고 있어서 여는 맛과 마무리의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1장 솔직하게 만들어가는 집
'여지의 여지 '편에서 공간의 여지에 대한 저자의 말에 스며들듯 수긍하게 된다.
넓은 평수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공간의 여지가 그곳에서 사는 이의 생각과 무의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영향으로 더 긍정적이고 더 창의적으로 사고가 넓어질 수 있다는 증거처럼 읽혔다.
1인 가구의 최소 주거면적에 대한 논의들을 읽다 보면 자본 또는 경제적 측면으로 해석한 공간의 ‘최소성’은 생활하는 이의 동선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이 느껴졌다. 간혹 가전제품을 사용할 때 이 제품을 디자인 한 이는 이런 제품을 사용해 본 경험이나 동선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일까, 실제 사용하는 경험치가 있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불편하거나 참신해지는 상반되는 경우 모두 다.

17쪽
‘최소’라는 기준은 작두로 쓰인다. 시대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고안해 낸 극도로 효율적인 평면도를 칼날 삶아 삶의 여지를 도련한다. 시대라는 도곽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삶은 과정일 뿐이라 여기고, 과정이 된 삶들은 아무렇게나 최소로 방치되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고 개념이 다시 정의되고 있는 지금, 어떤 사람들이 선택한 삶의 모양은 서서히 청년이라는 틀 안에 박제되고 있다. 박제된 청년은 최소한으로 살아야만 하는, 최소한으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정붙이고 녹붙이고'편의 에피소드도 집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갖게 해 준다. 자신의 공간과 물건에 이야기를 만들어서 하나의 역사를 쌓아가는 모습들이 새삼 개인의 역사들이 모여서 시대의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취향’에 대한 김정민의 생각은 취향조차도 자본의 논리로 해석되어 평가하려 하지만, 자기의 솔직함과 생활감이 있는 인테리어가 더 좋은 취향의 인테리어라는 문장에서는 30대의 젊은 건축가의 주체성과 자유로움을 엿본다.
두 저자는 고양이를 기른다는 점과 건축가라는 직업으로 집과 방에 대한 생각과 지금까지의 전월세 이사 여정기를 말하고 있다. 책 집필을 위한 현장조사를 위해 지인들과 관련인들의 실제 살고 있는 집들을 탐방하면서 느끼고 접한 생각들도 실려 있다.

자신의 집이 싫다고 하면서 가는 내내 왜 ‘내 집이 싫은지’를 말하는 이를 통해서 집을 긍정하려고만 했던 이유를 소비가 나를 증명하는 시대인 자본주의 사회의 맥락에 젖어 있음을 말한다. 이 부분에서 또 마주친 것은 자본주의는 소비주의이고 소비가 나를 증명하고 표현하는 시대에 살기에, 나의 소유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 생각하지 않는 지점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곧 자신이 나쁘다는 또는 별 볼일 없다는 표현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얼마큼의 소비를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는 문장에 새삼 환기하면서 동의하게 된다.

2장 셋방일지
아파트의 창문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창문으로 인해 계층과 사회적 구분을 읽게 된다. 동일한 크기와 효율성으로 정착한 아파트 창호의 크기의 반대편에 빌라라는 집들의 사회적 불평등과 사용의 풍경을 던져준다. 방범창과 가림막으로 막고 보완해야 하는 빌라들. 이런 논의는 자신의 경험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읽어내고 말하고 기록하면서 건축가로서 어떤 반영과 개선을 할지 궁금해지고 기대된다.
‘뷰’에 관한 논의에서도 자연을 담는 뷰, 경관도 특정 계층이 소유하게 되는 것의 불평등 지적한다. 녹지공간인 공원이나, 경관을 더 많은 계층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도시, 주거지 형성의 중요성을 말한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공유하는 자연에 대한 의미를 일깨운다.

집이라고 불리는 많은 집들이 매트리스만으로 인식되는 저자의 프랑스 유학 때의 경험을 제시하면서 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최소의 집에서는 수면과 화장실 사용만이 가능하며 나머지 다른 것들, 주방과 거실의 기능은 축소 또는 축약된 채 최소한의 생활을 하게 되는 점들을 지적한다. 빨래방과 스타벅스의 방문이 일상이 되는 젊은 층의 생활 문화도 이런 주거 형태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빨래를 널고 차를 마시고 화분을 키운 베란다의 공간을 갖기 힘든 구조의 주거 형태들이 가져온 공유 공간의 외주화를 만들었다.
‘안행복주택’편지글에서는 정책 입안자의 태도와 정부와 국민이라는 키워드를 들여다보게 한다. 정책이 더 실제적이고 현실적으로 운용과 실용이 필요한 지점을 집는다.

3장 일상의 발명가들
식탁테리어라는 말은 아마도 저자가 만든 단어가 아닐까 유추해 본다. 혼자 살면서 시작된 식탁인테리어로 식탁에서 사용하는 그릇들을 바뀌거나 모으고, 요리를 하면서 성취감을 맛보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된다. 2장에서 언급되었던 주방 공간의 축약과 축소가 요리라는 행위를 멀게 하고 간단하게 데워먹는 간편식의 식생활을 유도한다. ‘감히, 요리를 해먹어. 그냥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라는 거친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요리는 개인 취향이다. 선호 여부에 따라서 즐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는 주거의 구조는 사유의, 사고의 폭도 움츠러들게 한다.
반려동물을 기르기도 하고 실제로 기르는 이들의 집을 탐방한 경험은 건축가로서 집을 설계할 때, 기존의 인간만을 기본으로 한 설계에서 한 걸음 다가가 다양한 형태의 삶의 모습을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실현성의 싱크로율은 아직 낮겠지만, 다양한 형태의 삶을 상상하고 반영하고자 하는 현장성이 넓어질 때 주거에 대한 집에 대한 의미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4장 우리를 담을 집
어차피로 만든 세상편에서의 에피소드는 집에 관한 따뜻한 관점의 한 갈래를 마주하게 한다. 평수나 크기로만 말해지는 주거지가 아닌 동네라는 의미로 거주하고 생활했던 곳의 생활정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덕담의 메모, 깨끗한 이사 정리로 입주 청소비를 아낄 수 있고 그런 기분을 전해주고 싶다고 탐방했던 곳의 이야기는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실제 인터뷰라서 감동이 더했다.

전월세 집이라도 사는 동안은 내가 거주하므로 나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제목은 역설적이듯 하지만 바로 그런 지점을 짚은 것이 아닐까?
벽돌로 쌓은 집과 지푸라기로 엮은 집편의 논의처럼 늑대집만이 안전한 것이 아니라 돼지들의 집은 지푸라기 집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주거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말이 들어온다. 집안이든 밖이든 안전할 권리가 있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의 흐름은 그저 집에 관한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힘이 있다고 느낀다.

217~218쪽
도시는 거름망으로 걸러진 사람들끼리 사는 곳이 아니다. 도저히 서로 겹치지 않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사는 곳이다. 이것을 억지로 구분하고 나누려고 한다면 당연히 괴상한 형태로 자라날 수밖에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건 다름을 계속해서 알아가는 것이지 다름을 계속해서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와 성별은 같지만 국적은 달라, 나는 너와 언어는 같지만 피부색은 달라... 이렇게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분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세계의 크기가 얼마나 협소한지 가늠하게 할 뿐이다.
‘언어’라는 단어를 알았을때, ‘자가 주거’라는 단어를 알았을 때, ‘성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알았을 때마다 우리의 세계는 커지고 있다. 중요한 건 ‘다르게 만드는 것’에 방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감각’을 체화하는 일이다.

즐거운 남의 집

이윤석 외 1명 지음
다산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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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상상하는 청년은 ‘원룸’에 산다. 집이 아닌 방에서 ‘자취’한다. 10만 원짜리 용달차로 이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짐, 집주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얌전한 생활, 최소한의 주거면적에서도 적당히 만족하며 사는 삶… 세상이 기대하는 청년들의 삶은 못 대신 꼭꼬핀으로 잠시 고정된 채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대표적인 주거불안정 집단인 2030세대의 주거를 누구보다 진정성 있게 대변할 수 있는 90년대생 건축가 이윤석과 김정민. 세입자로서의 희로애락을 피부로 체감하는 이들이, 때론 서럽고 때로는 즐거운 2년짜리 시한부 거주에 관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돈 주고 살 수 있는 집은 아니더라도 내가 나답게 하루를 살 수 있는 집은 모두에게 필요하다. 집이 자산과 투자 대상으로 여겨지는 지금, 매매가 아닌 주거권의 관점에서, 매물이 아닌 삶의 양식으로 집을 바라보는 건 정녕 불가능한 일일까?

무너질 일 없는 벽돌집을 여러 채 가진 기성 건축가들은 공감할 수 없는 청년 세대의 주거 현실과 빌린 집에 관한 고찰을, 두 저자는 젊은 건축가이자 세입자의 시선으로 날카로우면서도 위트 있게 포착해 냈다. 전월세 거주자들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담은 이 책은 집을 부동산으로만, 지위와 계급으로만 보는 사람들에게 외치는 당찬 선언처럼 들린다.

출판사 책 소개

★ 소설가 장강명, 건축큐레이터 정다영 추천!★

내가 산 집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사는 집
감히, 빌린 집도 내 집이라 선언한다!


‘민달팽이 세대’. 주택가격 급등으로 청년들이 주택 마련은 꿈도 꾸지 못하고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살아가는 현실을 껍데기 집이 없는 민달팽이에 빗대어 칭하는 말이다. 민달팽이는 집이 없으므로 속살이 훤히 드러나 보이고 사방에 도사리는 위험으로부터 피할 곳이 없다. 점액질 같은 희미한 흔적을 남기면서 항상 어디론가 바삐 이동한다. 오래 머물 안식처 없이 이곳저곳 흔적만 남기고 떠도는 청년 세대의 처지를 대변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19~34세 인구 중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가구의 비율은 86.8%(출처: 국토교통부 「2022년도 주거실태조사」). 웬만해선 평생 내 집 마련을 하기 어려울지 모르고 아마 그중 상당수는 ‘하려고 들지도’ 않을 것이다.

회사의 어떤 중년 남성과 나눴던 대화가 기억난다. 그는 나에게 결혼은 했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물었다. 회사 근처에서 살고 있다고 대답하니 그는 “윤석 씨는 숙소에서 자취하니 밥도 잘 못 챙겨 먹겠네”라고 말했다. 우리 집을 왜 숙소라고 말하지? 분명 내가 사는 곳은 집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 같았다. 오래 있을 만한 곳도 아니라고 생각했겠지. 집도 아니고 오래 있을 만한 곳도 아닌 숙소에서 밥까지 지어 먹는다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구나. 애초에 결혼도 안 했으니 밥 차려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갑자기 나는 모든 방면에서 미성숙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_본문 중에서

청년들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착실히 모아 마련할 수 있는 보증금의 크기는 빤하고, 사회가 상상하는 청년의 삶의 크기도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청년들이 거하는 곳은 ‘온전한 집’이 아닌 빨리 벗어나야 할 과도기적 공간, 아파트를 사기 전까지 잠시 머무는 곳, 그러니까 탈출해야 할 임시 숙소라 여겨진다.
그러나 월세 아니면 전세라는 형태의 빌린 집에 살면서도 이곳이 단순히 다음 역을 위한 정거장만이 아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 90년대생 건축가이자 세입자인 두 남자, 이윤석과 김정민. 이들은 ‘소유만 부추기는 사회에서 집을 갖지 않고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안고 집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즐거운 남의 집』을 통해 꺼낸다. 2030세대가 쉬이 주택 마련을 할 수 없는 환경임을 인정하면서도 내 집이란 꼭 집을 사야만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물리적인 집이 나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내가 집에 쌓은 정과 녹(綠)과 이야기가 모여 삶을 지탱하는 것이라 말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빌린 집도 내 집”이라 소리치는 이들의 이야기가 책을 통해 시작된다.

우리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우리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이야기가 생겼다


1990년대생 건축가이자 전월세 세입자인 이윤석과 김정민, 이 둘은 유튜브 채널 <서울은 이상한 도시>에서 ‘월세 아니면 전세’ 프로젝트를 통해 2030세대의 거주를 개인적 단위로 조망하며 그들이 남의 집을 어떻게 자기화해서 사용하는지 소개해 왔다. 월세 혹은 전세로 살지만 남들이 정의 내린 모습이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집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분명 내가 사는 집인데 자꾸만 여기가 ‘내 집’이 아니라고 하는 시선에 저항하며, 인터뷰이들의 이야기에 자신들의 생생한 전월세 거주 경험을 더해 집에 대한 이야기를 책에 가감 없이 담았다.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청년 세대들이 주거 공간을 통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나가고 있는지 기발하고도 새로운 시선으로 보여준다.
건축가라고 하면 으레 이름난 건축물과, 그와 비슷하게 휘황찬란한 집에 사는 모습을 떠올린다. ‘집은 나를 표현하는 도구’라 말하며 자신만의 맞춤 공간에 수백수천만 원짜리 가구를 들이는 사람들. 그래서인지 전월세 세입자라는 정체성과 가장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윤석과 김정민이 집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조금 다르다. 낡은 집의 주름을 조명으로 가리는 마음, 창문의 방범창과 가림막이 내포하는 힘의 방향, 자연이 특정 계층만 소유할 수 있는 명품이 되어버린 현상 등을 논한다. 집이 소유와 투자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지금 사회에서 이러한 집 이야기들은 어쩌면 오히려 현실과 가장 동떨어진 낭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이 꿈꾸는 것은 낭만이 아니라, 청년들의 평범한 바람이 마땅히 현실이 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닐까. 지금의 집은 ‘나를 표현하는 도구’로 보기에 너무나 비싸고 그래서 집은 나를 담는 그릇이 될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집은 못 샀지만, 2년간 즐겁게 살 자격 정도는 산 것 아닐까?”
빌린 집에서 산다는 것의 기쁨과 슬픔


‘오늘의 집’이나 SNS에서 흔히 보이는 집과는 다르게 우리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울창한 나무나 파란 하늘 대신 옆집의 콘크리트 벽이다. 다른 집들에 의해 잘려나간 조각 빛이 겨우 집 안으로 들어온다. 그마저도 방범창을 지나온 빛은 마치 감옥의 쇠창살 모양을 하고 있다. 인테리어는 또 어떨까. 미디어에선 ‘체리 지옥’이라는 표현을 내세워 인테리어 공사가 어떻게 체리 몰딩으로 뒤덮인 지옥을 세상에서 가장 하얀 집으로 변모시키는지 보여준다. 그에 반해 우리의 예산 안에서 고를 수 있는 집은 늘 알록달록하다. 지난 세대의 트렌드였던 옥색 몰딩과 걸레받이, 여기가 텔레비전을 걸어야 하는 자리임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거실 한편의 아트월, 2000년대 유행했던 꽃무늬 문짝의 냉장고, 그리고 그것과 똑같은 무늬의 포인트 벽지. 그것들이 미워 페인트칠을 하거나 시트지라도 붙여보려 마음먹지만 “퇴거 시 원상복구”라는 특약에 곧 발목을 붙잡히고 만다.
빌린 집에서 산다는 건 어떻게 보면 즐겁지만은 않은, 서러운 순간들을 눈앞에 두고 사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2년짜리 시한부 거주자에게도 2년간은 즐겁게 살 자격이 있는 것 아닐까? 『즐거운 남의 집』에는 제 나름의 방법을 연구하면서 ‘그럼에도’ 즐겁게 살아가려는 이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다른 건물에 가려 조각난 햇빛뿐이지만 초록 식물을 들여 분명한 행복의 대상을 만들고, 이전 세대의 트렌드가 끈질기게 괴롭혀도 그 안에서 특별한 구석을 찾아내거나, 거실에 마땅히 놓여야 할 텔레비전과 소파 대신 친구들과 모여 앉을 큰 식탁을 두는 식으로. 내가 산 집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는 동안은 온전히 내 집이니까. 그리고 이러한 고민들이 모여 나만 아는 삶의 증거가 된다.
집을 부동산이 아닌 정을 붙이고 이야기를 쌓아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빌린 집도 충분히 아늑하고 즐거운 내 집이 된다. 뒤돌아보면 물리적인 집이 없는 탓에 우리는 오히려 스스로가 스스로의 단단한 집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단단한 껍데기가 깨지는 순간 집이 사라지고 마는 달팽이보다, 집은 없지만 그 덕에 자기 스스로를 지켜온 민달팽이의 삶이 실은 더 단단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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