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없는 계절

신유진 지음 | 마음산책 펴냄

상처 없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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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4.1.30

페이지

208쪽

상세 정보

아니 에르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에르베 기베르 등 다양한 프랑스 작가의 책을 번역하고,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만의 글쓰기 세계를 구축해온 신유진 작가의 신작 산문집 『상처 없는 계절』이 출간되었다. 이번 책에는 읽고 쓰는 삶뿐 아니라 반려인과 반려견, 엄마와의 유쾌한 일상, 새로 마련한 보금자리인 카페 ‘르 물랑’ 이야기 등 나를 둘러싼 사람, 자연과 함께하는 현재가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타자를 세심히 살피는 시선이 돋보이는데, 동시에 작가는 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보게 된다.

책의 제목이자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상처 없는 계절'은 상처가 부재하는 시절이라기보다 오히려 많은 상처를 겪어낸 사람의 오늘을 뜻한다. 때로 우리는 아픈 시절을 더 소중하게 느끼기도 하는데, 이는 상처를 다루는 방식을 찾아나갔던 기억이 상처를 상처로만 남지 않게 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작가가 선택한 방식으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더듬더듬 나아간 결과로 태어난 문장들을 읽으며 치유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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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

@jinnwxy

  • 진희님의 상처 없는 계절 게시물 이미지
6년 연애하고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부터 읽은 책을, 헤어지고 나서 다 읽었다. 아주 촘촘하게 쓰여진 이 책은 단 세 줄만으로 나를 단단하게 보이지 않는 기둥에 묶어 일으켜 세워주었다. 부서졌으나 - 아주 망가지지는 않겠다는 각오로, 상처 입었으나 - 병들어 죽지 않을 마음으로, 오래 가난하지 않을 희망으로. 나는 오래 힘들지 않을거란 희망으로 시간을 채운다. 그 시간이 이 책처럼 촘촘한 밀도로 지나가길 바란다.

상처 없는 계절

신유진 지음
마음산책 펴냄

👍 이별을 극복하고 싶을 때 추천!
1개월 전
0
이주연님의 프로필 이미지

이주연

@yijuyeonxm0c

부서졌으나 아주 망가지지는 않겠다는 각오로, 상처 입었으나 병들어 죽지 않을 마음으로, 오래 가난하지 않을 희망으로.

;책의 첫 장을 열면 실린 글이다. 처음부터 감성을 일깨우는 문장들이 들어온다. 각오와 죽지 않을 마음, 가난하지 않을 희망이라는 글들이 살아온 날들에 대한 소회와 지금과 앞으로 살아갈 태도가 전해진다.



문맹의 시간 42쪽
나는 아고타 크리스토프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을 믿음으로 기억한다.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쓴다는 작가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가 대단한 작품을 쓴 직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문맹의 시간을 살아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오래전 내가 간직했던 바깥 언어를 떠올리며 나의 믿음을 적어본다.

‘쓴다’

이 말에는 과거형도 미래형도 필요하지 않다.

;자신의 경험과 공감대가 있을 때 더 들어오는 글들이 있다. 독서모임에서 현재 중국에 파견 나가 있는 분이 있다. 이 장은 그분이 공감이 많이 된다고 했다. 전에 읽었던 크리스토프의 책 이야기와 작가 자신이 이방인으로서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가 함께 덧씌워지면서, 그럼에도 쓰고자 하는 이의 마음도 다가오고, 이방인으로서의 느꼈을 고독감도 함께 전해진다. 외국에서의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은 없으나, 살면서 느끼는 삶의 이방인의 고독감이 종종 느껴진다. 지금 이 삶에서 이방인으로서 살고 있다는 순간순간의 느낌이 전해져 올 때, 두 작가처럼 이 시간을 잘 견디고 살아낼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해 본다.


아름답게 어긋나기 47쪽
누군가 내 일을 물으면 번역이라는 말보다 글을 ‘옮긴다’라는 동사를 써서 말한다. 동사로 말하는 나는 몸으로 말을 살아내는 사람이 된다. 의자에 앉아 더 오래 엉덩이로 버티고, 납작한 활자가 아닌 피와 살과 뼈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만지는 마음으로 단어를 고른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창작일 것이다. ‘옮긴다’는 말속에는 머물던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을 향하는 이동의 의미가 있고 그 걸음에는 새로운 시선과 발견, 길의 확장이 있으니 그것이 창작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번역이라는 행위가 어떻게 창작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문장이다. 두 번역가의 에세이 제목을 빌려 작가이면서 번역가로서의 정체성을 말하고 있다. 번역에 대한 사유가 작가 자신의 삶의 여정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꿈이 진실이 될 때까지 67쪽
꿈은 이야기의 영감이다. 영감과 계시는 다르다. 계시의 주체는 ‘나’가 아닌 ‘그 누군가’이고, 삶이 그가 정해놓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라면, 그의 뜻을 미리 안다고 달라질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영감’은 다르다. 누군가 살짝 불어넣어 준 ‘숨’처럼, 그것은 형체 없이 내게 온다. 그러니까 형체를 만드는 주체가 ‘나’인 것이다. 꿈을 재료로 쓴, 영감으로 쓴 모든 문학은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진실한 무언가로 바꾸어 놓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거짓은 아니라는 엄마의 말은 분명 틀리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창작자의 몫이니까. 물론 문학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이라는 커다란 창작품에 비하면 문학은 그저 작은 극이지 않은가.

;누군가 살짝 불어넣어 준 숨을 통해서 인생이란 창작품을 잘 만들고 있는 걸까?
영감과 계시에 대한 표현에서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이 쏠린다. 신의 계시는 주체가 나가 아닌 신이기에 영감이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의지를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듯하지만 다른 간극의 계시와 영감은 영감을 통해서 스스로 꿈을 찾아가려는 인간의, 인생이 모습이 보인다.


꿈 바깥의 삶 71~72쪽
꿈의 자리를 채웠던 것들이 다 빠져나간 뒤, 내게는 남은 게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애썼을 뿐이다. 그것은 꿈 바깥의 삶이었고, 나의 배움은 꿈이 사라지자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한동안 텅 빈 사람을 살았다. 모든 게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난 후에야 내가 단 한 번도 꿈 바깥의 사람을 살뜰하게 돌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는데, 왜 아무도 우리에게 꿈 바깥의 삶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에도 무엇이 되지 않았을 때의 삶을 사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무엇을 하든 나로서 사는 일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연극을 그만두고 현실을 살기 위한 바깥의 삶이 시작되면서 보지 못했던 현실의 삶이 보이기 시작하고 의문이 든다. 꿈이란 걸 이룬 이보다는 현실에 발 딛기 위한 바깥의 삶이 더 보편적일 텐데. 꿈을 이루던 현실을 살던 ‘나로서 사는 일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맴돈다. 성취만을 삶이라고 한다면, 성취에 이르지 못한 것들은 다 무의미한 일인 걸까. 바깥의 삶일지라도 그것 역시 나이므로 존중과 인정을 스스로 놓치지 말아야겠다.


나의 여름과 당신의 여름이 만나면 81쪽
심보르스카가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을 더 좋아했던 것처럼, 사랑도 별들의 시간이 아닌 풀벌레의 시간을 살아야 하니까, 사람의 시간은 늘‘오늘’이어야 하니까.

;요즘에 읽는 책 속에서 많이 등장하는 시인 심보르스카다. 인용되는 시인의 시어들은 소박하지만 지금을, 오늘을 더 소중하게 살아가는 의지가 느껴진다. 이 에피소드 역시 작가의 기억 속 여름들의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지금 읽는 당신은 어떤 여름을 살고 있는지, 어떤 ‘오늘’을 살고 있는지 묻는다.


다시 한 살을 사는 마음으로 89~90쪽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향해 썼던 모든 글이 내게로 되돌아왔던 것 같다. 기쁜 이야기는 내 마음의 기쁨의 자국으로, 슬프고 아픈 이야기는 작은 성장으로. 그러니 글쓰기란 결국 보내는 말이 아니라 맞이하는 말이 아닐는지.

다시 한 살을 사는 마음으로 자라고 싶다. 사랑하는 것들을 끌어안으면서. 끌어안으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게 있다고 믿으면서.


;돌잡이 축사의 글을 쓰면서 자신의 글이, 글쓰기가 삶 속에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아기에게 보내는 축사의 문장이 결국은 자신에게 보내고 싶은 문장이기 때문이다. 축복의 말을 보내는 행위를 통해, 자신조차도 축복을 받는다는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마지막 문장은 돌쟁이 아기를 끌어안으면서 삶에 대한 기쁨을 느끼는 이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포옹할 수 있는 관계와 삶의 모습들이.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에 대하여 94쪽
그의 말에 지난 몇 달 동안 기쁘면서 불안했던 나의 마음에 시원하게 길 하나가 뚫린 기분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천재 구두 디자이너가 아니라 구두를 고치는 장인이 되는 것이고, 타고난 것이 아닌, 시간이 완성하는 게 장인의 재능이라면 나 역시 꿈꿔볼 만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오직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일 테다.

;구두를 수선하면서 ‘시간의 힘’을 말하는 구두 수선 아저씨와의 대화에서 작가는 통찰을 얻는다. 재능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공을 들이고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다 보면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바람을 본다.


다른 나라 105~106쪽
그르니에는 청춘이라면 누구든 ‘다른 곳에 가서 살리라’는 첫 번째 욕망을 품는다고 했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 욕망에 사로잡혀 살았고, 때로는 그 욕망을 질책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내게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하면 실패할 것이라고, 실패의 맛을 보고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는 물론 그들의 말처럼 크고 작은 실패들을 경험했고 또 절망했지만, 그것은 결코 ‘후회’는 아니었다. 내게는 아직 닿지 못하는 ‘다른 나라’가 있었으니까. 그때 다른 세계를 향한 동경이 없었더라면 내 젊은 어땠을까? 설령 그것이 현실도피였다고 해도 그르니에는 말하지 않았던가. 도피가 없다면 삶은 멈춰버린다고.

;다른 나라,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이나 꿈은 젊음이 실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삶의 모험이자 낭만이 아닐까. 작가가 이방인으로서의 고독을 느끼기도 했지만, 젊은 시절 다른 나라에서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았던 경험은 작가의 삶에서 자양분으로 뿌리내렸다고 느껴진다.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여정 속에서 자기를 대면하는 여행이라는 말에 다른 나라, 다른 세계의 여정을 꿈꿔보게 된다.


두 사람 편에 책의 첫 문장의 구절이 나온다.

이 에피소드는 작가의 사랑 이야기이다. 파리에서 만난 반려자와의 젊은 날의 가난하지만 반짝이면서 꿈을 좇던 두 사람이, 꿈을 버리고 프랑스의 시골에서 버려진 물건이 아닌 예쁜 식탁과 물이 새지 않는 욕실의 집의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결혼을 했으며,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이야기와 다시 반려인이 편지로 작가는 일어선 듯한다. 그리고 책의 포문을 연 첫 문장을 만나다. 읽다가 다시 문장을 발견하니, 생의 한 시절을 통과하는 여정에서의 이야기가 코끝을 시큰거리게 한다. 작가는 그녀는 ‘거기에 그리고 지금 여기에’ 두 사람으로 오래 함께 있음을 고즈넉하게 말한다.

두 사람 일수밖에 없었던 이야기가 반려인으로서 함께인 그들에게 어떤 안온함 같은 게 느껴진다.

미움의 역사 149쪽
그러나 지금은 그저 미움을 쓰겠다. 미움을 그리워한다고 딱 거기까지만 말하겠다. 낯간지러워 다정한 말 한마디 못했던 할머니와 나에게는 그 정도가 어울리지 않겠는가. 그렇게 미워했던 사람을 간직해도 되지 않겠는가.

서로를 미워했던 우리를 오래 기억하겠다.

어쩌면 사랑보다 더 오래.

;미움의 역사라니. 다른 말로 애증의 관계라고도 부르는 그런 관계. 미움 아래에 깔려 있는 서투른 사랑의 다른 모습을 할머니를 통해서 본다. 가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런 관계들은 아프면 아픈 데로 애써 회복하거나 돌이키지 않고 흘러가는 게 좋다. 각각의 두 사람이 살아가면서 성장하고 변하고 죽음으로 이별하지만, 그 안의 미움의 역사는 미움이 아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변화된다.


좋은 섬유 유연제를 사는 일 167쪽
이제 나는 손에 쥘 수 없는 ‘질서’나 ‘안정을 꿈꾸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모두 내게 섬유 유연제 광고만큼이나 허상일 뿐이다. 서랍 속에 정돈된 삶이 아닌 바람 부는 언덕 위에서 흔들리는 삶을 살아도 좋다. 춤을 추듯 자유롭게 흔들리면 그만 아닌가. 그러나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쨍한 햇빛, 시원한 바람, 맑은 공기를 누릴 수 없는 삶이 성큼성큼 다가온다는 사실을 하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 잘 알고 있다. 다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지를 모르겠다. 아니, 그것도 잘 알고 있다. 아직 포기하지 못한 편안한 삶을 향한 욕망이 남았을 뿐. 나는 반드시 나의 욕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냄새 또는 향이 계층을 표현하고, 낮은 계층은 열악한 주거로 인해 환기에 취약한 주거 공간에서 살아간다. 이 에피소드는 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불러왔다. 가난했던 젊은 시절의 주거 환경은 세탁을 마음대로 할 수 없거나 하기 힘든 구조인 곳에서 살았다. 그런 까닭에 섬유 유연제를 사용하게 된 이유와 그 마음을 듣게 된다. 질서와 안정이라는 삶에 대한 원대한 꿈. 감성적 에세이를 읽다가 사회적 관점을 보게 된다. 빈곤과 향기. 주거공간과 계층. 사회 비판적 이야기조차 마지막 문장은 또 문학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고독을 위한 의자 172~173쪽
그 후로도 고독과 나는 오랜 시간 많은 것을 나눴다. 당연히 하루아침에 삶이 나아질 리 없었지만, 나아지지 않는 삶으로도 나만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고독에게 배웠다. 고독과 내가 함께 읽고 쓰는 동안 울음이 노래로 바뀌었다면, 그것은 고독이 내게 상처도 음표와 쉼표로 쓸 수 있다는 것을, 내 안에 보기 싫게 그려진 검은 줄도 오선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기 때문이 아닐까.

;고독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고립과 고독이 개념이 혼재되어 있어 부정적 의미로 인식되는 게 더 크다. 고독이 상처이기만 한 것이 아닌 음표와 쉼표로 쓸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고독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구하게 한다.


풍경 속으로 203~205쪽
산책과 사색을 즐기고 살롱에서 낭독회를 열거나 카페에서 토론을 즐겼던 작가들의 지적인 언어, 속도나 술이나 마약으로 자신을 파괴하는 순간에도 우아한 현악기 같은 소리를 내는 언어, 그런 말들은 내가 듣고 자라는 말과 달랐다. 그런 말들은 멀리 있었고, 멀리 있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름다웠다. 나는 그 말을 손에 쥐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책을 읽었던가. 그러고 보면 읽는 일은 내가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했던 사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게 독서는 저 멀리 있는 아름다움에 손을 뻗어보는 일이었고, 더 나은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일이었으며, 내게 없는 말을 감히 훔쳐 오는 일이었으니까. 아, 얼마나 탐스러운 말들이 그 안에 있었던가. 게걸스럽게 삼키고 싶었던 말들. 내 것과 바꾸고 싶었던 말들. 지금 내 안에 축적되어 나를 쓰게 하는 말들.


;이처럼 절절히 책 읽기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문장이라니. 멀리 있는 것의 아름다움의 사랑이 책 읽기로 확장되어 뻗어나가고 결국은 책과 관련된 이가 된 작가의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독서에 빠진 사람이라면, 특히나 문학적 독서에 빠졌던 사람이라면 이 문장 속의 열렬함에 함께 도취되지 않을까. 단순하고 간결한 행위처럼 보이는 책 읽기에 대한 찬가를 나는 이 문장 속에서 발견했고, 덩달아 기쁨에 전이된다.


내가 사는 동안 멈추지 않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지금은 태어날 이야기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귀 기울여 듣는다. 때대로 그것은 침묵으로 자라기도 한다. 나무처럼, 내 안에 한 그루, 두 그루, 침묵의 나무가 자란다. 이 나무들이 자라 숲을 이루면 고요가 될 것이다. 어쩌면 그때 나는 끄덕임을 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마지막 임종의 말 끄덕임을 통한 사유가 이렇게 전개된다. 사는 동안 멈추지 않는 이야기 그리고 고요를 통해 얻게 되는 끄덕임이라니.

작가의 사유와 감성, 시선들이 아팠던 힘들었던 젊음, 그리고 그 여정을 지나와 젊음을 반추하지만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귀 기울여 말하는 문장들이 여기 담겨 있다. 펼치면 그 세계 속에서 함께 유영하기도 하고 나 자신의 날들과 대비하여 문장들을 가져와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상처 없는 계절이라는 제목은 반어법적 표현이 아니었을까. 상처를 지나왔던 계절이 이제 상처 없는 계절로 치환된 계절, 삶의 이야기들로.

상처 없는 계절

신유진 지음
마음산책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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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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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에르베 기베르 등 다양한 프랑스 작가의 책을 번역하고,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만의 글쓰기 세계를 구축해온 신유진 작가의 신작 산문집 『상처 없는 계절』이 출간되었다. 이번 책에는 읽고 쓰는 삶뿐 아니라 반려인과 반려견, 엄마와의 유쾌한 일상, 새로 마련한 보금자리인 카페 ‘르 물랑’ 이야기 등 나를 둘러싼 사람, 자연과 함께하는 현재가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타자를 세심히 살피는 시선이 돋보이는데, 동시에 작가는 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보게 된다.

책의 제목이자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상처 없는 계절'은 상처가 부재하는 시절이라기보다 오히려 많은 상처를 겪어낸 사람의 오늘을 뜻한다. 때로 우리는 아픈 시절을 더 소중하게 느끼기도 하는데, 이는 상처를 다루는 방식을 찾아나갔던 기억이 상처를 상처로만 남지 않게 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작가가 선택한 방식으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더듬더듬 나아간 결과로 태어난 문장들을 읽으며 치유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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