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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
출간일
2019.1.11
페이지
540쪽
상세 정보
"20세기 소설의 혁명",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이라고 일컬어지는 걸작,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편 '스완네 집 쪽으로',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3편 '게르망트 쪽'에 이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편 '소돔과 고모라'가 7, 8권으로 출간되었다.
'소돔과 고모라'는 성경에 언급된 성적으로 타락한 두 도시에서 가져온 이름으로, 이 작품에서 화자 마르셀은 다양한 계기와 상황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주제를 이끌어 나간다. 앞 권에서 그토록 열망하던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만찬에 참석해 포부르생제르맹 귀족 사회와 맞닥뜨렸던 마르셀은 게르망트 공작 부인을 기다리다가 샤를뤼스 씨와 젊은 재봉사 쥐피앵의 묘한 만남을 목격한다.
그 후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깨달은 그는 게르망트 대공 부인이 베푸는 연회에 다시 참석해 죽음의 빛이 완연한 스완과 대화를 나눈다. 이후 퓌스뷔스 부인의 시녀를 통해 성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발베크에 돌아간 그에게 죽은 할머니의 추억이 불현듯 엄습하고, 그는 사교계에 홀려 할머니를 돌보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알베르틴과 자동차로 발베크 근교를 산책하다가 베르뒤랭 부인의 만찬에 가기 위해 지방 열차를 타게 된 그는 베르뒤랭 부인의 패거리와 조우해 샤를뤼스와 모렐의 관계까지 알게 된 데 이어 알베르틴의 고모라적 성향을 알고 깊은 충격을 받는다. 알베르틴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힌 그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 알베르틴과 꼭 결혼하고 말겠다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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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ole
@dym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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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소설의 혁명",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이라고 일컬어지는 걸작,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편 '스완네 집 쪽으로',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3편 '게르망트 쪽'에 이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편 '소돔과 고모라'가 7, 8권으로 출간되었다.
'소돔과 고모라'는 성경에 언급된 성적으로 타락한 두 도시에서 가져온 이름으로, 이 작품에서 화자 마르셀은 다양한 계기와 상황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주제를 이끌어 나간다. 앞 권에서 그토록 열망하던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만찬에 참석해 포부르생제르맹 귀족 사회와 맞닥뜨렸던 마르셀은 게르망트 공작 부인을 기다리다가 샤를뤼스 씨와 젊은 재봉사 쥐피앵의 묘한 만남을 목격한다.
그 후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깨달은 그는 게르망트 대공 부인이 베푸는 연회에 다시 참석해 죽음의 빛이 완연한 스완과 대화를 나눈다. 이후 퓌스뷔스 부인의 시녀를 통해 성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발베크에 돌아간 그에게 죽은 할머니의 추억이 불현듯 엄습하고, 그는 사교계에 홀려 할머니를 돌보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알베르틴과 자동차로 발베크 근교를 산책하다가 베르뒤랭 부인의 만찬에 가기 위해 지방 열차를 타게 된 그는 베르뒤랭 부인의 패거리와 조우해 샤를뤼스와 모렐의 관계까지 알게 된 데 이어 알베르틴의 고모라적 성향을 알고 깊은 충격을 받는다. 알베르틴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힌 그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 알베르틴과 꼭 결혼하고 말겠다고 선언한다.
출판사 책 소개
《타임스》, 《르 몽드》 선정 20세기 최고의 책
프루스트 이후 모든 소설의 출발점
4편「소돔과 고모라」 출간
“20세기 소설의 혁명”,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이라고 일컬어지는 걸작.
기존 소설의 틀을 벗어던지고, 의식의 흐름을 좇는 독특한 서술 방식을 통해
집요할 정도로 정밀하게 인간 내면과 시대상을 담아낸 기념비적인 작품.
현대 문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20세기 최고, 최대의 소설.
■ 국내 최고의 프루스트 번역서, 후속편 출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 네 번째 이야기, 「소돔과 고모라」
1편 「스완네 집 쪽으로」,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3편 「게르망트 쪽」에 이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편 「소돔과 고모라」가 7, 8권으로 출간되었다. 「소돔과 고모라」는 성경에 언급된 성적으로 타락한 두 도시에서 가져온 이름으로, 이 작품에서 화자 마르셀은 다양한 계기와 상황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주제를 이끌어 나간다. 앞 권에서 그토록 열망하던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만찬에 참석해 포부르생제르맹 귀족 사회와 맞닥뜨렸던 마르셀은 게르망트 공작 부인을 기다리다가 샤를뤼스 씨와 젊은 재봉사 쥐피앵의 묘한 만남을 목격한다. 그 후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깨달은 그는 게르망트 대공 부인이 베푸는 연회에 다시 참석해 죽음의 빛이 완연한 스완과 대화를 나눈다. 이후 퓌스뷔스 부인의 시녀를 통해 성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발베크에 돌아간 그에게 죽은 할머니의 추억이 불현듯 엄습하고, 그는 사교계에 홀려 할머니를 돌보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알베르틴과 자동차로 발베크 근교를 산책하다가 베르뒤랭 부인의 만찬에 가기 위해 지방 열차를 타게 된 그는 베르뒤랭 부인의 패거리와 조우해 샤를뤼스와 모렐의 관계까지 알게 된 데 이어 알베르틴의 고모라적 성향을 알고 깊은 충격을 받는다. 알베르틴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힌 그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 알베르틴과 꼭 결혼하고 말겠다고 선언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모두 7편에 이르는 연작 소설로서, 그 분량을 합하면 몇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이다. 2013년, 「스완네 집 쪽으로」 출간 100주년을 맞아 첫 편을 내기 시작한 민음사는 2022년 프루스트 사후 100주년에 맞춰 전 권 완역 출간을 준비 중이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프루스트 전공자’인 김희영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가 “프루스트 전공자로서 사명감과 용기를 가”지고 번역에 모든 정열과 노력을 쏟고 있다.
1985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된 판본(1954년 판)과는 달리, 1987년 프랑스 플레이아드 전집 판으로 새롭게 출간된 판본을 번역본으로 삼았으며,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프루스트 연구자들의 주석 작업, 그리고 중국과 일본 등 여러 국가 판본들을 비교, 참고해서 진행하는, 그야말로 프루스트의 ‘정본’이라고 할 만한 번역본이다.
역자 김희영 교수는 이번 번역 작업을 통해 “길고 난해한” 프루스트의 문장을 “최대한 존중”하여 “텍스트의 미세한 떨림”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으며, “독자의 이해와 작품의 올바른 수용을 위해 최대한 많은 주석 작업을 통해 문화적, 예술적 차이를 극복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절반의 고개를 넘은 4편의 출간은 민음사 판본과 함께 프루스트 독해를 시작한 이들에게뿐만 아니라 앞으로 시작할 이들에 이르기까지, 프루스트를 이해하기 위한 든든한 기둥이 되어 줄 것이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핵심 주제를 다루는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편 「소돔과 고모라」는 작품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다루는 그 주제란 동성애인데, 화자가 동성애자인 샤를뤼스의 성적 정체성 발견에 대해 ‘혁명’, ‘계시’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나, 마치 진실의 문인 ‘소돔과 고모라’ 앞에 선 듯 새로운 삶을 예고하는 것 등을 고려하면, 프루스트가 이 주제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4편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에 대한 이론적 성찰과 등장인물들의 갖가지 사례, 그리고 화자 마르셀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인 알베르틴의 동성애적 성향에 대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동성애 보고서처럼 진행된다.
동성애에 대한 주제는 유럽 사회에서 19세기 말까지 드물게 다루어졌다. 사교계나 예술계에서는 비교적 흔하게 알려져 있었지만, 보수적인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금기시되거나 범죄로 취급받았다. 프랑스 문단의 경우를 보자면 앙드레 지드가 『코리동』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공연히 선언한 데 반해 프루스트는 보다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동성애를 극화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동성애자는 ‘나’가 아닌 샤를뤼스나 생루, 알베르틴 같은 상상적인 자아들로서, 이런 수많은 가상의 출현을 통한 자아의 증식과 분산은 자서전 소설에 돌파구를 마련한 새로운 유형의 글쓰기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프루스트는 19세기 말 지식인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히르슈펠트의 이론을 이 작품에 끌어와 동성애 담론을 펼친다. 히르슈펠트는 완전히 남자도 완전히 여자도 아닌 제삼의 성인 간성(間性), 즉 ‘남자-여자’의 존재를 확인했으며, 그리하여 성이 문화적, 사회적 요인에 의해 후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필연임을 역설한다. (따라서 삭제) 이런 ‘남자-여자’를 도덕적 관점에서 금기시하는 것은 낡은 편견이며, 따라서 그는 간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한다. 프루스트는 동성애를 표현하기 위해 ‘소돔과 고모라’라는 단어를 활용한다. 이는 “여인은 고모라를 가지고 남자는 소돔을 가지리니.”라는 알프레드 드 비니의 시구에서 가져온 것으로서, 프루스트는 죄로 가득한 도시의 이미지를 통해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문학적 입장을 확립한다.
특히 이 작품에서 프루스트는 라신의 종교극 「에스테르」와 「아탈리」를 참고한 상호텍스트적 글쓰기를 통해 동성애자를 유대인의 일화에 접근시킨다. 다시 말해 동성애자를 뜻하는 소도미스트(sodomiste)와 신의 저주를 받은 유대인 시오니스트(sioniste)의 음성학적, 의미론적 유사성을 드러내면서 ‘저주받은 종족’, ‘감추어지고 위장된 이들’이라는 둘 사이의 공통점을 확대시킨다. 이는 프루스트가 평생 감추고 싶어했던 진실, 즉 어머니가 유대인이며 자신은 동성애자라는 자전적 기원과도 관계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 샤를뤼스: ‘소돔’과 ‘난초꽃’를 통한 남성 동성애의 탐구
마르셀은 게르망트 대공 부인으로부터 받은 초대장이 진짜인지 물어보기 위해 게르망트 공작 부인을 기다리다가 샤를뤼스가 저택 마당에 들어서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샤를뤼스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서도 혼란을 겪는다.
샤를뤼스 씨가 커다란 뒝벌처럼 윙윙거리며 문을 지나가는 순간, 이번에는 진짜 뒝벌 한 마리가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 난초꽃이 그토록 오래 기다려 왔으며, 또 그렇게 희귀한 꽃가루를, 그것 없이는 난초꽃이 숫처녀로 남아 있을 그런 꽃가루를 가져온 벌이 아니라고 누가 알겠는가?(7권 23쪽)
프루스트는 동성애자인 샤를뤼스와 쥐피앵의 만남을 꽃과 벌의 은유를 통해 드러낸다. 거대한 식물원으로 탈바꿈한 게르망트 저택의 마당에서 꽃향기에 유인되어 날아온 벌 한 마리와 그 앞에서 부동의 자세를 취하는 난초꽃의 묘사는 동성애의 자연적이고 생물학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문단에서 샤를뤼스는 다시 벌이 아닌 꽃으로 묘사되면서 벌-남성, 꽃-여성이라는 일반적인 도식에 균열을 야기한다.
난초꽃을 뜻하는 프랑스어 오르키데(Orchid?e)의 어원은 testicule 즉 남성의 성기로 남성성을 의미하면서도, 꽃잎의 모양은 여성의 성기처럼 열렸다 닫히며 여성성을 환기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오르키데로 표현되는 자아는 바로 양성을 의미하는데, 자기보다 남성적인 남성을 만나면 여성으로, 자기보다 여성적인 남성을 만나면 남성으로 변할 수 있는 갖가지 종류의 결합 형태를 내포한다. 양성에 대한 식물성을 통한 환유는 양성성이 사회적인 기준에서 보면 유죄일 수 있지만, 식물의 기준에서 보면 무죄라는 것을 드러낸다.
식물성으로의 환유 외에도 프루스트는 동성애의 또 다른 특징을 언급한다. 그것은 바로 항상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항상 다른 언어에 기대어 표현되는, 즉 감추어진 비밀로 설명되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임신한’ 여자에 대해 ‘배부른’ 여자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대화 장면을 통해 그려진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몸짓과 웃음, 표정 등 수많은 몸의 언어와 관용어의 사용, 노르망디 지명의 어원에 대한 긴 담론과 트럼프 놀이 등 다양한 장면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감추어진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데, 이러한 감추어진 존재와 세계에 대한 프루스트의 관심은 그의 글쓰기 전체를 통과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 알베르틴: ‘고모라’와 ‘젖가슴’을 통한 여성 동성애의 탐구
전통적으로 레즈비언의 시원이 되는 사포와 레스보스 섬에 의해 상징되는 아름다움 및 시와 그리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여성 동성애는 문학과 예술세계에서 찬미의 대상이 되어 왔다. 프루스트는 “여인은 고모라를 가지고……”라고 언급하며 여성 동성애에 대해 죄의식적 의미를 부여한 알프레드 드 비니와, “검은 신비”라며 여성 동성애를 찬미한 샤를 보들레르라는 두 문학적 입장 사이에 위치한 것처럼 보인다. 프루스트는 특히 여성 동성애에 대해, 그것이 남성의 입장에서 불가해하며 불투명하다는 것에 주목한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여성 동성애는 화자 마르셀이 사랑하는 알베르틴의 일화를 통해 드러난다. 라 라스플리에르의 별정으로 가던 중, 기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앵카르빌에 내린 마르셀은 의사 코타르와 함께 카지노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알베르틴이 앙드레와 춤추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때 (의사 삭제) 코타르는 여성들은 젖가슴을 통해 쾌락을 맛본다고 설명한다.
“저 아이들은 틀림없이 쾌락의 절정에 있을 걸세. 여자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젖가슴을 통해 쾌락을 맛본다는 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네. 저 아이들의 젖가슴이 완전히 붙어 있는 것을 보게나.”(7권 345쪽)
마치 타인의 성적 유희를 보면서 쾌락을 느끼는 관음증 환자처럼, 여성 동성애자처럼 그들은 서로의 몸을 응시하고 각자의 시선에 비친 타자를 음미한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처럼 구체적인 신체적 접촉과 그 한계에 달린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육체가 보여 주는 의미를 탐색하며, 그리고 이런 육체에 반응하는 자신의 육체를 응시하면서 끝없이 희열을 느낀다는 점 때문에 여성 동성애는 시각적이고 자족적이라 할 수 있다. 화자는 그 쾌락의 신비를 캐려고 몸부림치지만 결코 밝히지 못한다. 알베르틴으로 대표되는 여성 동성애자들의 “은밀하고도 관능적인 전율”, 즉 확실한 쾌락을 남성인 화자는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그는 남성이 느끼는 쾌락의 한계를 의식하며 분노하게 된다.
남성 동성애자인 샤를뤼스에 대한 고찰이 비교적 객관적 감정을 가진 화자의 거리 두기에 의해 어느 정도 인식 가능한 서술체로 드러난다면, 알베르틴에 대한 묘사는 질투에 사로잡힌 남자, 욕망하는 주체의 시선에 의한 지극히 혼란스러운 담론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처럼 프루스트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샤를뤼스와 알베르틴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동성애라는 주제를 무대 전면에 올리고 있다. 그러나 샤를뤼스의 남성 동성애 담론이 비의지적 기억에 대한 과거의 포착이나 모호한 인상과 거짓 표면 뒤에 숨겨진 진리의 발견이라는 전통적 성장 소설의 목적론에 부응한다면, 알베르틴의 이야기는 여성의 성적 취향에 대한 끝없는 의혹과 탐색으로 이어지는 ‘변신’의 드라마에 가깝다. 그리고 그 울림은 5, 6편이자 ‘알베르틴 소설’로 유명한 「갇힌 여인」과 「사라진 알베르틴」을 통해 보다 구체화된다.
■ 20세기 최고, 최대의 소설
― 프루스트를 읽지 않고 소설을 읽었다 말할 수 없다
프루스트 이전 소설들의 종착지이자, 프루스트 이후 소설들의 출발점이 될 만큼 문학사에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타임스》, 《르 몽드》 등 세계 유력 일간지에서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꼽히며, 엘리엇, 모루아, 발레리, 베케트, 보부아르 같은 거장들뿐만 아니라 들뢰즈, 리비에르, 벤야민 등의 비평가, 철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소설이다. 17∼18세기 소설들이 인간 내면보다는 인간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모습과 거대한 자연의 힘을 담아내려고 했다면, 프루스트는 오로지 ‘인간’ 그리고 그 인간 ‘의식의 흐름’ 그 자체에 생각과 펜을 맡긴 채 유례없이 장대하고 유려한 대작을 완성해 냈다. 코르크로 문틈을 막고 천식과 싸우며 14년에 걸쳐 써낸 이 작품은 모두 7편, 몇천 쪽에 달하는 이 “20세기 최대의 문학적 사건”은 ‘나’라는 화자의 성장과 시선에 따라 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온갖 사유를 담아낸다. 그 속에 유년기의 기억, 사랑과 정념, 질투와 욕망, 상실과 죽음, 예술, 사회, 문화, 정치, 역사 등 그야말로 ‘인간 삶’의 총체적인 모습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며 독자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가장 큰 체험”(버지니아 울프)을 하게 해 준다.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밝혀진 삶,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체험하는 유일한 삶은 바로 문학이다.”라는 프루스트의 말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우리가 ‘소설’을 통해 얻고 바라고 체험하고 희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그 누구도 프루스트를 읽지 않고는 소설을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 유년, 사랑, 정념, 예술, 그리고 죽음까지
― 19세기를 관통해 20세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르는 인간 삶의 총체적 서술
프루스트는 오랜 시간에 걸쳐 대가들의 작품을 모작하거나 번역하며 이전 세대 모든 문학과 예술을 책이라는 공간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이런 그의 시도는 현대 소설의 선구자라는 명칭뿐만 아니라 현대 사유의 중심에 그를 자리하게 했다. 독일 문예 비평가 벤야민에 따르면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삶에서의 실제 ‘체험’이 아니라 그런 체험의 “기억을 짜는 일”이며 프루스트는 낮 동안 짰던 실을 밤이면 풀어헤치는 ‘텍스트’라는 개념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이해한 작가다. 텍스트의 어원인 ‘직물’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프루스트는 “끝없는 글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텍스트를 짜고 풀고 덧붙이며 한 권의 책 속에 우리 모든 삶을 담으려 했던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담론이다. 어린 ‘나’는 스완의 딸 질베르트를 짝사랑하고, 스완은 화류계 출신 여성 오데트를 욕망한다. 어린 소년의 풋사랑, 환상이라는 옷을 입고 아름답게 채색된 첫사랑, 엄마에 대한 소년의 집착, 질투로 얼룩진 욕망, 그리고 금기와 죄의식에 사로잡힌 동성애 등, 이 작품은 온갖 사랑의 형태에 따른 아름다운, 혹은 비극적인 서술로 가득하다. 프루스트는 사랑을 ‘그 사람을 소유하려는 고통스럽고도 미친 욕망’이라고 정의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곧 그에 대한 완전한 소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타자를 완전히 소유한다는 것은 이 세계의 법칙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런 소유에 대한 욕망은 주체를 광기와 혼미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며 그리하여 사랑의 대상은 쾌락의 대상이 아닌 탐색과 고통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주체를 사로잡는 이 강렬한 질투의 감정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 감정은 진실에 대한 열정을 되찾게 해 주며 비록 그 열정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관계되는 부분적인 왜곡된 것이라 할지라도 마비된 우리 영혼을 일깨워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삶의 진실에 보다 근접하게 해 준다. 프루스트의 소설은 이처럼 사랑 또는 정념에 내재하는 고통에 의해 주체가 그 불가능의 지평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화자는 예술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는다. 스완은 오데트를 사랑하지 않지만 그녀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화가 보티첼리의 그림에 나오는 여인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랑에 빠진다. 콩브레 시골 부엌 하녀는 지오토의 「우의상」에 나오는 처녀 ‘자비’와 흡사하다. 뿐만 아니라 모네와 마네, 터너, 그리고 베네치아 유파의 카르파초 등도 작품 속에 자리한다.
음악 역시 셸링과 쇼펜하우어 등 독일 낭만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뱅퇴유의 등장을 통해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하지만 프루스트의 유려한 문체로 말해지는) 세계를 탐색한다. 이처럼 생시몽, 라신, 발자크, 플로베르, 보들레르로 이어지는 문학가들, 지오토, 카르파초, 베르메르, 렘브란트, 휘슬러, 모네, 르누아르 등의 화가들, 그리고 바그너, 드뷔시, 생상스, 프랑크 같은 음악가들, 뿐만 아니라 성당과 채색 유리, 종탑, 장식 융단과 보석 세공, 의복, 화장, 사진, 요리에 이르기까지 문화와 예술 전반에 걸친 성찰과 섬세한 묘사는 “총체적 예술로서의 문학 이미지”를 구현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한 소년의 유년기를 거쳐 사랑을 알게 되고, 예술을 향유하며 한 시대를 살아 나가는, 그럼으로써 인간 내면과 삶의 총체적 모습을 담고 있는 기념비적인 대하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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