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는 이름보다 김창수라는 이름에 더 정이 갔다.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던 김창수, 그리고 김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겪었던 김창수라는 사람이 매력적이었다. 10대에 동학농민 운동에 뛰어들면서부터 주목을 받았다고 하는데, 어떤 매력이 있었을까? 아버지가 늘 싸우고 다녔다. 하지만 깡패라기 보다는 배트맨에 가까운 그런 모습에 본인도 감화 되었으리라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런 기질이 곳곳에서 드러났기에 다른 이들로부터 어린 나이부터 인정 받을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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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그만두고 관상서를 읽던 김구는 이 부분을 읽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가 그런 주목 받는 삶을 살아왔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것을 일생을 통해 확인 받음으로써 (타인의 인정으로) 그렇게 김구라는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마음이 사실이었다면, 정말 어떻게 살다 보니까, 독립을 위해, 의리를 지키기 위해, 국권을 지키기 위해 그것이 당연한 삶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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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삶에서 만난 귀인을 통해 여러 영향을 받기도 한다. 고능선 선생의 수학으로 의리 있고, 인내심 있지만,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성격까지 만들 수 있게 된다. 청년시절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었던 인물이라 생각된다. 올바름을 알 수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상이 그에게 일생의 기반이 되어 거기서 기틀을 쌓아나간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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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에서 햇빛을 보고 온, 진짜를 보고 온 이가 아직도 그림자를 보고 있는 자를 억지로 끌고 나가려고 하면 비웃음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 김구는 어떤 진실을 알리고 싶었던 걸까? 그 당시 일반 사람들에게는 일본과의 합병이든 망국이든 지금 당장 살 길이 막혀 죽을 맛인데 더 헤치고 나갈 수 있었을까? 국권의 회복을 생각할 겨를이 있었을까? 일제시대의 삶이 살기는 어려웠으나, 그렇다고 조선에서의 삶도 그다지 핑크빛은 아니었다. 혹자는 그저 수탈자만 바뀌었다고 이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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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는 어떻게 그들을 설득했을까? 왜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 했을까? 결과만을 놓고 보는 우리 입장에서 그의 판단과 이야기는 타당하다. 그 당시 그의 생각은 잘 전달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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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옥에서 고초를 겪으면서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위인은 위인이구나. 뜨끔했다. 지금 나는 당장 내 삶만 잘 살면 되는데 그것도 제대로 잘 하고 있는가? 나는 무언가를 위해 저토록 밤새워 일하거나 몰두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를 핍박하기 위해 그렇게나 노력했던 저들이 하는 반만의 노력으로 내 삶을 잘 살아보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가? 김구 선생은 그 힘든 와중에도 저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감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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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원]은 대단하구나. 읽으면서 감탄에 감탄. 김구 선생이 우리 민족에게 하고 싶은 말의 개요를 적은 것으로, 반드시 기초되어야 하는 철학이라고 하셨다. 이것이 없으면 국민의 사상이 통일되지 못하여 더러는 이 나라의 철학에 쏠리고 더러는 저 민족의 철학에 끌리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사상과 정신의 독립을 유지하지 못한 채 남을 의뢰하고 저희끼리는 추태를 나타내게 되는(4) 무시무시한 결과를 아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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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로 많은 독재가 있었고, 민주주의에 대한 항쟁이 있었고, 참담한 일들을 겪어내고 있다. 문득 김구 선생 말대로 우리에게 그런 기초가 될 사상이 없어서가 아닐까? 우리와 함께 잘 살아보겠다는, 우리만의 문화와 철학을 가지고 잘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 우리는 여러 번 고초를 겪고 있는 건 아닐까? 현재 우리에게 우리만의 사상이나 철학이 있는가? 나만의 생각을 하고 있는가? 우리를 위한 길을 왜 항상 밖에서 찾으려고만 하는가? 우리 민족의 일은 우리 민족 입장에서 우리만이 가장 잘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김구 선생의 말대로 참고할 수는 있으나, 밖에서만 정답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의 결과가 현재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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