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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얇은 책
출간일
2022.6.10
페이지
152쪽
상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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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 소개
왜 인간은 나와 타인을 나누려 하는가? 흑인여성으로는 지금껏 유일무이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토니 모리슨. 그가 2019년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출간된 《타인의 기원》은 슬림한 책의 외형과는 달리 ‘타자화’라는 묵직한 질문과 대답을 담고 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도 강력한 난제인 인종차별이라는 정체성 갈등이, 다름 아닌 인간을 ‘나’와 ‘타인’으로 구별하고자 하는 지독한 타자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동일한 인간을 타자화함으로써 비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하거나, 노예제도라는 모순적 행위에 문학이나 다양한 사회문화적 코드를 사용하여 낭만성을 부여하면서 그 행위를 정당화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모리슨은 여러 문헌과 자신의 소설, 윌리엄 포크너 등 유명작가의 작품을 레퍼런스로 활용하여 그 확연한 증거들을 독자 앞에 보여준다. 실제 역사와 문학작품 속에 존재하는 의도된 타자화의 장면을 짚어감으로써, 자신의 진단이 갈등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어도, 어디에서부터 그 매듭을 풀 수 있을지를 조용히 던지고 있다.
모든 차별은 상대를 타자화함으로써 시작된다
인종차별이라는 오래된 갈등을 바라볼 때, 흔히 이것을 지나간 역사 속 주종관계, 그리고 강자와 약자의 관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만 설정하여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 2012년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흑인 소년의 죽음 이후 촉발된 ‘Black lives matter’ 운동 이후, 미국의 정치계와 선거 이슈 등에서도 가장 윗줄의 주제이기도 했지만 일시적 구호만으로 그치고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 흑인여성 최초이자 유일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토니 모리슨은 자신의 수많은 소설에서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흑인 차별의 부조리를, 이번에는 《타인의 기원(The origin of others)》이라는 사유적 제목의 산문으로 다시 한 번 펼쳐 보인다.
군더더기 없는 토니 모리슨의 글은 슬림한 책의 물성과는 달리, 그 속에 담고 있는 사유와 증거들은 독자들의 머릿속에 묵직하게 각인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확신을 정의 내리듯 던지고 있다. “세상 모든 차별은 상대방을 나와 타인으로 구분하려는, 즉 상대를 ‘타자화’함으로써 생겨난다”는 것이다. 역사 속 미국의 백인들이 아프리카계 흑인들을 대함에 있어 종이나 천민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그들을 자신들과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명확히 구별하려 시도하였는데, 이 시도를 타자화로 본 것이다. 토니 모리슨은 19세기 당시의 여러 문헌과 개인적 기록물, 무엇보다 소설가들이 작품 속에서 타자화를 시도하고 있는 뚜렷한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노예를 굳이 전혀 다른 종으로 취급해야 하는 필요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자기 자아가 지극히 정상임을 확인하려는 그들의 절박한 시도가 아닐까 싶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집단은 권력이 있든 없든, 타자를 구축함으로써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비슷한 방식으로 타 집단을 통렬히 비난해왔다. - 본문 중에서
자신의, 혹은 자기 집단의 신념과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상대를, 혹은 상대집단을 전혀 다른 별개의 인간(혹은 비인간화도 서슴지 않으며)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신념이 자리를 잡아 세대를 거스르며 내려왔다. ‘타자화’라는 개념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독자라도 19세기 미국의 백인 노예주였던 토마스 티슬우드의 개인 일기장을 들여다보면 타자화의 정체를 대번에 이해하게 될 것이다.
상인이었던 그는 일기장에 그날의 영업 상황, 손해 여부, 거래한 인물 등을 사무적으로 기록해 놓았는데, 일기장의 같은 지면에 여성 노예를 강간한 사실도 마치 메모하듯 무심하게 적어놓았다. “콩고인 플로라와 함께, 사탕수수밭 땅바닥에서”와 같은 표현은 일기장 곳곳에 수도 없이 등장한다. 이 같은 비인간적 행동을 모리슨은 지독한 타자화의 결과라고 본다. 신이 인간과 노예를 애초에 구분해 놓았다는, 그래서 저들을 인간이 아닌 타자로 보아도 된다는 의식 말이다.
책에서는 ‘백인에 의한 흑인의 타자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인종에 국한되어 거론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세상 곳곳에, 나라와 나라 간에, 개인과 개인 간에, 집단과 집단 간에 야기되는 갈등과 분란은 ‘타자화’가 지닌 냉혹한 구별 행위와 결코 상관없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토니 모리슨은 풀릴 길 없는 인종차별의 절벽을 피할 수 없어도, 타자화의 정체를 들여다보며 그 매듭을 조금이나마 풀어보길 기대하고 있다.
백인들의 안식처가 되었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
- 문학을 이용한 ‘피부색 페티시’와 ‘노예제의 낭만화’
책의 전반부에는 백인에 의한 흑인 차별에 있어 타자화라는 근원이 숨어 있음을 일갈하며 백인 의학자인 새뮤얼 카트라이트 등이 작성한 실제 기록물들을 사례로 보여준다. 그러나 중반부터는 윌리엄 포크너나 해리엇 비처 스토 등 유명 문인들의 소설 속 텍스트들을 연신 소개하며, 행간에 숨어 있는 수많은 타자화, 혹은 노골적 인종주의의 일면을 고발한다. 모리슨이 발견한 문학작품에 내포된 인종주의의 정체는 크게 두 가지이다. ‘피부색에 대한 페티시적 집착’ 그리고 ‘노예제의 낭만화 시도’가 그것이다.
소설에서 인물을 드러내거나 서사를 만들어가기 위해 피부색을 이용하는 방식은 꽤나 흥미롭다.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인 인물에 대해 공포 가득한 느낌으로 풀어나가는 방식, 과도한 성적매력으로 포장해버리는 유색인종 캐릭터, 흰 피부색이 갖는 태생적 우월성 등 영미권 문학 속 피부색 페티시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윌리엄 포크너의 명작인 《압살롬 압살롬》에서는 근친 간의 결혼보다 인종 간의 결혼을 더욱 대역죄처럼 묘사하고 있다. 노예를 강간하는 일보다, 다른 인종끼리의 정신적 사랑을 더욱 역겨운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4년 뒤에 헨리는 두 사람이 결혼을 하지 못하게 본을 죽여야 했어…… 다녀본 곳이 많은 헨리의 아버지는 그렇다고 쳐도, 세상 물정 모르는 헨리에게도, 흑인 피가 8분의 1 섞인 흑인 정부와 16분의 1 섞인 흑인 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아무리 귀천상혼이라고 해도…… 그럴 만했지.”
그리고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노예제도라는 부조리의 현실에 낭만성을 부여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노예제의 낭만화 시도는 노예제를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이게 하고, 심지어 이를 소중한 가치처럼 여기게 만들어 이를 선호할 만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백인에 의한 흑인 통제는 매우 무해한 것이며, 그렇기에 탐욕스러운 통제도 전혀 필요치 않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당시의 백인이라면 흑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에 무장하지 않은 채 지나갈 수 있을까?’
이런 불안감을 불식시켜야 한다는 듯, 스토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흑인 노예가족의 집 주변을 무척이나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묘사한다. 바닥에 던진 음식을 즐겁게 주워 먹는 흑인 노예자식들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백인 주인의 어린 아들이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 안심하고 놀러갈 수 있는 장치를 공을 들여 설정해놓는 것이 소설가의 카드였다. 토니 모리슨은 겁먹은 백인 독자들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로, 다시 말해 이런 낭만화된 장면이 가득한 백인들을 위한 소설이라 지정하고 있다. ‘스토는 노예제도의 성과 낭만을 무균 상태로 만들었으며, 게다가 그것에 향수를 뿌리기도 했다’고 말이다.
타자화를 체념하지 않으려는 또 한 사람의 목소리
- <블랙팬서> 스토리 작가 타네히시 코츠의 추천사
거장 토니 모리슨의 결기 가득한 이 책 속에 또 하나의 명 기사가 포함되어 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논픽션 작가이자 언론인인 타네히시 코츠(Ta-Nehisi Coates)가 쓴 ‘추천의 글’이다. 오리지널 <블랙팬서>의 스토리 작가로 잘 알려진 타네히시 코츠는 두터운 팬층을 가진 저널리스트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삶에 큰 관심을 갖고 저술을 펼치는 인물이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추천사이지만, 타네히시 코츠의 글은 한 편의 정치사회 비평문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도 난해한, 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서로 교차하며 더더욱 풀기 어려운 매듭이 되어버린 인종갈등의 문제를 현재의 미국 정치와 사회상을 짚어가며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을 다룬 책이라는 단순한 예상으로 책 읽기를 시작한 독자들이라면, 토니 모리슨의 글보다 먼저 등장하는 코츠의 배경 설명문에 두 귀를 바짝 세우게 될 것이다. 토니 모리슨이 《타인의 기원》을 집필하던 시기는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임기의 끝자락 시기였지만, 이 책이 출간되기 직전, 그러니까 코츠가 추천사를 쓴 시기는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가 결정된 직후였다. 이 오묘한 시간차 속에서 흑인 저널리스트인 코츠는 유권자들의 생각과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Black lives matter’의 함성 사이의 깊은 골짜기를 들여다본다.
트럼프의 승리에 대한 첫 반응은 이 승리가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2016년 대선은 새로운 경제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이 월스트리트를 상대로 벌인 일종의 민중봉기였다는 단순한 주장이 속속 등장하였으니 말이다. 클린턴이 ‘정체성 정치’에 집중하느라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였다. 이런 논리는 종종 자멸의 씨앗을 품게 되어 있다. 이 새로운 경제가 가장 많이 내팽개친 사람들, 즉 피부가 검거나 갈색인 노동자들이 왜 트럼프 연합에 들어가지 않았는지 아무도 설명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 ‘추천의 글’ 중에서
코츠는 ‘인종은 관념이지 실재가 아니다’라는 역사가 넬 페이터의 말을 인용하면서, 미국의 많은 백인들이 인종을 관념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경찰에 과잉 진압되어 사망한 흑인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거라 자신 있게 말한다. ‘인종차별’을 없애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종’이라는 관념적 구분을 현실 세계에서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인 것이다.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가계소득 중간값은 평균적인 미국 흑인 가정의 가계소득 중간값의 두 배라는 사실을 제시하며, 경제적 불안 때문에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는 분석을 비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백인들의 현실적 걱정들이, 흑인들 삶에 깊이 자리 잡은 낮은 생존율에 대한 체념과 무관심이라는 비극과 비교할 때, 그 결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인종은 관념일 뿐, 아무 의미 없는 구분이라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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