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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인 책
출간일
2021.10.29
페이지
282쪽
상세 정보
전남 진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설을 쓰는 정성숙 작가의 첫 소설집. 그동안 한국문학이 ‘까맣게 잊고 있던’ 농촌 현실을 아주 본격적이면서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더군다나 여성 농부의 관점으로 해남 지역의 입말과 정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 농촌과 농촌에 사는 농민이 처한 현실을 박진감 있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첨단의 디지털 기술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농촌과 농민의 언어가 무슨 의미와 가치를 갖는 일일까. 작가가 그린 농촌 현실에서도 이런 현실은 적나라하게 반영돼 있다.
여성인 미애의 실존 상황은 피폐한 농촌의 현실에다 가부장적 폭력이 더해진 것인데, 작가는 이 가부장적 폭력도 농촌의 현실이라는, 오래된 사실이지만 여태껏 변함이 없는 사실을 생동감 있게 드러낸다. 이제는 아예 소멸을 말하는 농촌 현실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리지 않고 힘들게 하지만, 여성 농민은 이중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 스스로가 여성으로서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아울러 도시와 도시의 문화가 농촌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농민은 그저 예능 프로그램의 우스갯거리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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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전남 진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설을 쓰는 정성숙 작가의 첫 소설집. 그동안 한국문학이 ‘까맣게 잊고 있던’ 농촌 현실을 아주 본격적이면서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더군다나 여성 농부의 관점으로 해남 지역의 입말과 정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 농촌과 농촌에 사는 농민이 처한 현실을 박진감 있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첨단의 디지털 기술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농촌과 농민의 언어가 무슨 의미와 가치를 갖는 일일까. 작가가 그린 농촌 현실에서도 이런 현실은 적나라하게 반영돼 있다.
여성인 미애의 실존 상황은 피폐한 농촌의 현실에다 가부장적 폭력이 더해진 것인데, 작가는 이 가부장적 폭력도 농촌의 현실이라는, 오래된 사실이지만 여태껏 변함이 없는 사실을 생동감 있게 드러낸다. 이제는 아예 소멸을 말하는 농촌 현실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리지 않고 힘들게 하지만, 여성 농민은 이중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 스스로가 여성으로서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아울러 도시와 도시의 문화가 농촌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농민은 그저 예능 프로그램의 우스갯거리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출판사 책 소개
말은 맛있고 이야기들은 징하다. 요새 이런 소설을 쓰는 건 저항일까, 몽니일까? 이의 있다는 소린가? 그런 소리 말자. 농촌이 없어진 동네도 아니고 거기도 엄연히 삶이 있는 곳이다. 예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뒤도 없는 세상인 건 매한가지이고 보면 시세 따져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 대파밭에서 고추밭에서 배추밭에서 재래시장통에서 갑갑한 인생들이 견디고 사는 건 제 삶에 주인이 되고자 하는 몸부림이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 덕목들이 빤하다고? 그럴까? 소설은 한 치도 거들먹거리는 바 없이 생짜여서 전형적인 이야기들이 없다. 우리가 왜 숨막히는 삶을 부린 자리에서 언어의 생명력을 건져서 한숨 돌리는지, 왜 그게 문학의 소임이기도 하는지. 이 탁월하고 정직한 작가는 짱짱한 소설들로 보여준다. 여덟 편이 하나같이 진짜배기다.(전성태·소설가)
농민이며, 여성이 사는 삶
전남 진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설을 쓰는 정성숙 작가의 첫 소설집이 나왔다. 정성숙 작가의 이 소설집은 그동안 한국문학이 ‘까맣게 잊고 있던’ 농촌 현실을 아주 본격적이면서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더군다나 여성 농부의 관점으로 해남 지역의 입말과 정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 농촌과 농촌에 사는 농민이 처한 현실을 박진감 있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첨단의 디지털 기술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농촌과 농민의 언어가 무슨 의미와 가치를 갖는 일일까. 작가가 그린 농촌 현실에서도 이런 현실은 적나라하게 반영돼 있다.
비 오는 날에 심심풀이로 컴퓨터에서 화투 놀이를 하면서부터 미애는 변하기 시작했다. 컴퓨터에 나타난 전화선 너머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농사 외의 다른 세계를 봤다고 했다.
(…)
미애는 없는 틈을 만들어서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 농사짓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를 탐험했다. 영락없이 남편 모르게 연정을 키우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창선의 눈에 걸려들어 여지없이 주먹질을 당했고 그 일이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 되어 미애는 집을 나가버렸다.
―「기다리는 사람들」 중
작중 미애는 고단한 농사를 피해 ‘랜선’으로 농촌 바깥의 사람들을 만나다가 남편인 창선에게 폭행을 당하고 집을 나가버린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미애더러 “콤피터랑 연애”했다고 수군거리지만 미애의 친구인 “나”는 미애가 집을 나간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 “콤피터랑 연애” 자체가 미애가 감당해야 하는 농촌 현실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가꿔놓은 농사와 함께 밟히기만 했던 지난날은 놔두더라도 빚더미에 눌려 숨이 막힐 것 같”고, “금방이라도 뒷덜미를 잡혀서 내동댕이쳐질 것같이 조마조마하기만 한 일상에서” 미애는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심리에 도시에 사는 사람들, 특히 타자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아는 척’을 하는 전문가들이 불을 질렀다.
“정신과의사라는 사람이,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런 말을 했닥하냐. 가만히 생각해보믄 진짜 맞는 말 같드라.”
“창선이 그놈이 또 너한테 주먹질하든?”
―「기다리는 사람들」 중
여성인 미애의 실존 상황은 피폐한 농촌의 현실에다 가부장적 폭력이 더해진 것인데, 작가는 이 가부장적 폭력도 농촌의 현실이라는, 오래된 사실이지만 여태껏 변함이 없는 사실을 생동감 있게 드러낸다. 이제는 아예 소멸을 말하는 농촌 현실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리지 않고 힘들게 하지만, 여성 농민은 이중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 스스로가 여성으로서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아울러 도시와 도시의 문화가 농촌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농민은 그저 예능 프로그램의 우스갯거리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버스가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촌놈들이라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는데 버스에서 내려 공항에 들어서자 딴 세상이 펼쳐졌다. 똥지게 지고 장에 가면 이런 기분이 들까 싶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동자는 커지는 것 같고 촌놈들의 몸뚱이는 자꾸만 졸아들고 있었다. 그나마 스물두 명이 무리 지어 있을 때는 덜한데 혼자서 화장실에라도 다녀올라치면 숫제 죄인처럼 오금이 저리기까지 했다.
―「복숭아나무 심을 자리」 중
베트남 여성과 국제결혼(?)을 하기 위해 도착한 인천공항에서 농촌의 늙은 총각들이 처한 상황을 묘파한 이 장면에서 우리는 슬픈 희극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 농촌과 농민의 삶은 ‘찬란한’ 도시 문화의 웃음 제공자로 추락하기까지 한 것이다.
농토에서 부동산으로!
한국 사회의 부동산 문제는 그 기원과 역사가 복잡한 사안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농업의 궤멸 현상과도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제 도시뿐만이 아니라 농촌의 논밭도 부동산으로 추락 중이다. 농사의 지속, 대물림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에게 물려받은 논밭을 팔거나(「호미」), 농사를 작파하고 중간상인을 하는 쪽(「백조의 호수」)이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의 방식이다. 차라리 이런 삶이 합리적이며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방향이다.
―어머니는 산 너머 쪽으로 도로 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 들으셨소?
“시방 질을 맹근 지도 맻 년 안 되고 을마나 넓고 존데 새 질을 맹글어야?”
―그 길이 위험하게 내져서 이번에 새로 길을 낸다요.
“…?”
―그쪽 땅값이 날마다 오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셨단 말이요?
“그랑께에, 시방, 니, 말은, 산 너머 밭을….”
―어차피 내 앞으로 된 땅이고 하니까 내가 정말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야지 농사도 잘 안되는 땅을 옆구리에 끼고만 있으면 심이 언제 필 것이요!
―「호미」 중
한센병에 걸린 큰아들 효준이 죽기 전에 함께 일군 “산 너머 밭”을 둘째 아들이 자기 몫이라며 팔자는 이야기에 “영산댁”은 가슴앓이를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리랑을 부르는 일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 영산댁이 밭을 매며 부르는 아리랑은 영산댁이 처한 상황을 독자들의 가슴속으로 흘러 들어오게 한다. 영산댁이 마음을 의탁하는 존재는 미운 ‘이웃들’이지 도시인이 된 자식들이 아닌데, 이제 그 이웃들마저 품팔이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산 너머 밭”에서 쓰러졌다 간신히 살아 돌아온 영산댁의 눈에 보이는 것은 양파 작업을 떠나는 “봉고차뿐”이었다.
정성숙 작가는 이 소설들을 써야만 했던 어쩔 수 없는 배경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십수 년 전에 쓴 소설들입니다. 변화무쌍한 요즘과는 시대성이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출판을 포기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농민들의 삶의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드론이나 자율주행트랙터가 등장했지만 호미로 풀을 뽑아야 하는 원시적인 고달픔은 여전합니다. 천한 일은 호미를 쥔 자들의 몫입니다.
농촌에 품앗이가 없어지면서 공동체의식은 거의 무너졌고 추가 비용으로 외국인 인력이 그 자리를 메우는 정도가 달라졌습니다.
―「작가의 말」 중
“천한 일은 호미를 쥔 자들의 몫”이라는 작가의 한마디가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첨단 문명이 제아무리 날뛰는 시대라 할지라도 “천한 일”은 사라지지 않고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존재들은 변함이 없을 것인데, 그 존재들은 바로 여성이다. 그런데 농촌에서도 도시에서도 이 현상은 한결같다. 하지만 반대로 그 천한 일을 하는 “호미를 쥔 자들”이 없다면 이 세계도 없을 것이라고 고쳐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문학은 이제 이 최전선의 삶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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