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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인 책
출간일
2011.2.21
페이지
240쪽
상세 정보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의 책으로, 우리가 '고기를 먹으면 왜 안 되는지'가 아니라 '고기를 왜 먹는지'를 이야기한다. 쇠고기, 돼지고기를 먹을 때 우리는 살아 있는 소와 돼지를 떠올리지 않는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의 인식 과정에는 사라진 연결고리가 있다. 저자는 그 단절의 미스터리에서 일련의 질문을 이끌어 낸다.
수만 종의 동물 가운데 혐오감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어째서 극소수일까? 그들을 먹는 일에 우리는 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걸까?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육식이 태곳적부터 행해온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영아살해와 살인, 강간, 식인 풍습 역시 자연스러운 걸까?
인간이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식탁에 오르는 수백억 마리의 동물들은 왜 우리 눈에 거의 띄지 않는가? 이런 의문들을 풀어내는 키워드로 저자는 '육식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시공을 넘나드는 사례와 연구 결과들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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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24
@flower24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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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yart
@thyart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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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나라
@namjjoknara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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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의 책으로, 우리가 '고기를 먹으면 왜 안 되는지'가 아니라 '고기를 왜 먹는지'를 이야기한다. 쇠고기, 돼지고기를 먹을 때 우리는 살아 있는 소와 돼지를 떠올리지 않는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의 인식 과정에는 사라진 연결고리가 있다. 저자는 그 단절의 미스터리에서 일련의 질문을 이끌어 낸다.
수만 종의 동물 가운데 혐오감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어째서 극소수일까? 그들을 먹는 일에 우리는 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걸까?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육식이 태곳적부터 행해온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영아살해와 살인, 강간, 식인 풍습 역시 자연스러운 걸까?
인간이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식탁에 오르는 수백억 마리의 동물들은 왜 우리 눈에 거의 띄지 않는가? 이런 의문들을 풀어내는 키워드로 저자는 '육식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시공을 넘나드는 사례와 연구 결과들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출판사 책 소개
이 책은 우리가 ‘고기를 먹으면 왜 안 되는지’가 아니라 ‘고기를 왜 먹는지’를 이야기한다.
쇠고기, 돼지고기를 먹을 때 우리는 살아 있는 소와 돼지를 떠올리지 않는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의 인식 과정에는 사라진 연결고리가 있다. 저자는 그 단절의 미스터리에서 일련의 질문을 이끌어 낸다. 수만 종의 동물 가운데 혐오감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어째서 극소수일까? 그들을 먹는 일에 우리는 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걸까?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육식이 태곳적부터 행해온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영아살해와 살인, 강간, 식인 풍습 역시 자연스러운 걸까? 인간이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식탁에 오르는 수백억 마리의 동물들은 왜 우리 눈에 거의 띄지 않는가? 이런 의문들을 풀어내는 키워드로 저자는 ‘육식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시공을 넘나드는 사례와 연구 결과들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 개와 돼지에 대하여
실험을 하나 해보자. 개를 상상할 때 떠오르는 모든 단어를 그대로 적어 보라. 다음엔 돼지를 상상하며 똑같이 하라. 그러고는 두 목록을 비교해 보자. 개를 생각할 때 ‘귀엽다’, ‘충성스럽다’, ‘다정하다’, ‘영리하다’, ‘재미있다’, ‘애정 깊다’, ‘나를 보호해 준다’는 식의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돼지를 상상했을 때는 ‘진창’ 또는 ‘땀’, ‘더럽다’, ‘멍청하다’, ‘게으르다’, ‘뚱뚱하다’, 그리고 ‘못생겼다’ 같은 말을 떠올리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다수에 속한다.
대학에서 심리학과 사회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매 학기에 하루를 이 실험에 할애한다. 몇 천 명의 학생이 거쳐 갔지만 이때 오가는 대화는 거의 같다. 대부분 학생이 개는 좋아하거나 사랑하며 돼지는 역겹다고 느낀다. 자신과의 관계를 묘사해 보라고 하면 개는 ‘당연히’ 친구이자 가족의 일원으로, 돼지는 식품으로 요약된다. 그때 저자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에 따라 설명을 덧붙인다.
● 돼지는 왜 멍청한 거지? “그냥 원래 그런 걸요.” 그런데 실제론 돼지가 개보다도 더 영리하다고 해. 왜 돼지보고 더럽다 하지? “진창에서 뒹구니까요.” 왜 진창에서 뒹굴지? “진흙 같은 더러운 걸 좋아하니까요. 돼지는 더러워요.” 실은 더울 때 몸을 식히느라 진창에서 뒹구는 거야. 땀샘이 없기 때문이지.
● 돼지도 감정이 있다고 생각해? “물론이죠.” 돼지도 개와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하나? “글쎄요. 그런 것 같은데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몰라서 그렇지, 돼지가 얼마나 예민한가 하면 가둬놓았을 때 자해 같은 신경증적인 행동을 하기도 해.
● 우리는 왜 돼지는 먹고 개는 먹지 않는 걸까? “베이컨은 맛있으니까요.” “개에게는 각기 개성이 있으니까요. 개성 있는 존재를 먹을 수는 없잖아요. 이름도 있고,” 돼지에게도 그런 개성이 있다고 생각해? 그들도 개처럼 개체라 할 수 있나? “네, 돼지도 알고 보면 그럴 것 같은데요.”
● 돼지와도 개처럼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이 땀투성이도 아니고 게으르지도 탐욕스럽지도 않은 영리하고 예민한 개체라고 생각했다면 그들을 먹는 데 대해 어떻게 느꼈을까? “돼지를 먹는 걸 이상하게 느꼈을 거예요. 아마 죄책감 같은 걸 느꼈겠지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돼지는 먹고 개는 먹지 않을까? “돼지는 먹기 위해 키우니까요.” 왜 먹기 위해 돼지를 키우는 거지? “몰라요.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어요. 원래 그런 것 아닌가요?”
■ 원래 그런 게 아니다
‘원래 그런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종은 도축장으로 보내고 다른 종에게는 사랑과 친절을 베푼다? 동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행동에 이처럼 일관성이 없고, 그 사실을 한 번도 반성하지 않았다면, 그건 우리가 부조리한 논리에 휘둘려 왔기 때문일 테다. 이 문제에 관한 한 거의 모든 사회 구성원이 사고의 기능을 유보하고 사는 것은 물론, 자기들이 그런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 알고 보면 답은 아주 간단하다. 바로 육식주의 때문이다.
■ 채식주의와 육식주의
우리는 고기 먹는 것과 채식주의를 각기 다른 관점에서 본다. 채식주의에 대해서는, 동물과 세상에 대한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육식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행위,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으로 본다. 그래서 아무런 자의식 없이, 왜 그러는지 생각지 않으면서 고기를 먹는다. 그 행위의 근저에 놓인 보이지 않는 신념체계에 저자는 처음으로 이름을 붙였다. 바로 ‘육식주의(carnism)’다.
■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육식주의자, 즉 고기를 먹는 사람은 육식동물과 다르다. 육식동물은 생존하기 위해 고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육식주의자는 또 잡식동물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육식동물’과 마찬가지로 ‘잡식동물’이라는 용어는 개체의 생물학적 특징만을 기술하지 철학적 선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육식주의자는 필요가 아니라 선택에 따라 고기를 먹는다. 그런데도 선택이 아닌 듯 보이는 것은 육식주의의 비가시성(非可視性) 때문이다. 육식주의는 왜 눈에 드러나지 않는가? 왜 지금까지 그것에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거기엔 훌륭한 이유가 있다. 육식주의가 특정한 유형의 신념체계, 바로 ‘이데올로기’이며, 그것도 정밀한 검토를 쉽사리 허용치 않는 ‘지배적이고 폭력적인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 먹을 수 있다, 먹을 수 없다
육류와 관련해서 우리가 동물에게 적용하는 두 개의 주된 범주는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이분법 안에는 또 다른 범주 쌍들이 있다. 예컨대 우리는 야생동물보다는 가축을 먹고, 육식동물이나 잡식동물보다는 초식동물을 먹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돌고래처럼) 지적이라고 생각하는 동물은 먹지 않지만, (소나 닭처럼) 그다지 영리하지 않아 보이는 동물은 일상적으로 먹는다. 많은 미국인들은 그들이 귀엽다고 여기는 (토끼 같은) 동물은 먹지 않고 (칠면조처럼)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동물을 먹는다. 이 같은 구분이 실제로 정확한가는 문제가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정확하다는 ‘믿음’이다. 이분법의 목적은 단지 고기를 먹는 데 대한 불편감에서 놓여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개를 안고 쓰다듬으며 스테이크를 먹으면서도 그 행위가 함축하는 바를 전혀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육식은 정당화된다.
■ 정당화의 온갖 기제들
육식을 정당화하는 방대한 신화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정당화의 3N’이라는 것과 연관된다. 육류를 먹는 일은 ‘정상이며(normal), 자연스럽고(natural), 필요하다(necessary)’는 것이다. 우리는 고기를 먹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으며 오히려 육식이 우리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도 신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3N이 동물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행동에 내재하는 모순을 감추고 우리가 어쩌다 그걸 알아채게 되면 그럴싸하게 해명하고 넘어가는 정신적, 정서적 눈가리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곧 고기로 바뀔 돼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올 경우, 우리는 그 돼지를 쾌락과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생명체, 뚜렷한 개성과 선호를 지닌 존재로 보지 않는다.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그 ‘돼지다움(더러움, 게으름 등)’과 ‘먹을 수 있다는 점’뿐이다. 이런 방식으로 동물을 보는 데는 ‘인식의 트리오’라는 세 가지 방어기제(대상화, 몰개성화, 이분화)가 개입한다.
■ 공감의 회복을 위하여
육식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동물과 인간이 어떤 처지에 놓이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역사를 넘나드는 각종 사례와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별도 박스로 짜 넣어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입맛의 후천성, 공감 능력의 선천성, 다른 문화 다른 시대의 정신적 마비, 전장에서 총을 쏘지 않는 병사들, 축산업계의 비밀주의, 권력과의 결탁, 언어 조작, 동물들의 고통 감각 능력, 한국의 개고기 시장, 권위에 대한 복종 경향, 단백질 신화, 숫자와 감각마비, 불의를 혐오하는 인간 본능, 톨스토이 신드롬 등, 곁들이는 이야기들은 말 그대로 종횡무진이다. 그 모든 것이 저자의 논리를 살찌움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유도한다. 그래서 이 책은 공감 능력의 회복을 위한 안내서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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