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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
출간일
2014.1.13
페이지
156쪽
상세 정보
'문학과지성 시인선' 442권. 1989년 등단 이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 간명하고 절제된 형식으로 생명이 깃든 삶의 표정과 감각의 깊이에 집중해온 나희덕 시인이 <야생사과> 이후 5년 만에 펴낸 일곱번째 시집.
무한 허공을 향해 마른 가지를 뻗는 나무에서 저 무(無)의 바다 앞에 선 여인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이번 시집에는 죽음의 절망과 이별의 상처를 통과한 직후 물기가 마르고 담담해진 내면에 깃들기 시작하는 목소리와, 자신이 속한 세계 전체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인의 조용하고도 결연한 행보가 가득하다.
"떼어낸 만큼 온전해지는, 덜어낸 만큼 무거워지는 이상한 저울, 삶"을 온몸으로 부딪쳐온 시인은 이제,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어쩌면 존재의 시원인 깊고 푸른 바다에서 시인이 만나는 무수한 말들과 그가 내보낸 한 마리 말, 이들의 상호순환적인 움직임은 해변에 이르러 부서지는 흰 포말처럼, 무의 허공으로 사라지는, 자신의 전 존재를 건 도약으로 볼 수 있다.
그 도약은 "무언가, 아직 오지 않는 것"처럼 어느 날 찾아드는 목소리일 사랑에의 희구, 궁극적으로 시인이 쓰고자 하는 한 편의 시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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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yikyungwoo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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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문학과지성 시인선' 442권. 1989년 등단 이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 간명하고 절제된 형식으로 생명이 깃든 삶의 표정과 감각의 깊이에 집중해온 나희덕 시인이 <야생사과> 이후 5년 만에 펴낸 일곱번째 시집.
무한 허공을 향해 마른 가지를 뻗는 나무에서 저 무(無)의 바다 앞에 선 여인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이번 시집에는 죽음의 절망과 이별의 상처를 통과한 직후 물기가 마르고 담담해진 내면에 깃들기 시작하는 목소리와, 자신이 속한 세계 전체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인의 조용하고도 결연한 행보가 가득하다.
"떼어낸 만큼 온전해지는, 덜어낸 만큼 무거워지는 이상한 저울, 삶"을 온몸으로 부딪쳐온 시인은 이제,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어쩌면 존재의 시원인 깊고 푸른 바다에서 시인이 만나는 무수한 말들과 그가 내보낸 한 마리 말, 이들의 상호순환적인 움직임은 해변에 이르러 부서지는 흰 포말처럼, 무의 허공으로 사라지는, 자신의 전 존재를 건 도약으로 볼 수 있다.
그 도약은 "무언가, 아직 오지 않는 것"처럼 어느 날 찾아드는 목소리일 사랑에의 희구, 궁극적으로 시인이 쓰고자 하는 한 편의 시를 향한다.
출판사 책 소개
상실과 부재의 아픔을 껴안는 사랑의 힘,
열정과 수난의 반복 속에 회복하는 언어
1989년 등단 이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 간명하고 절제된 형식으로 생명이 깃든 삶의 표정과 감각의 깊이에 집중해온 나희덕 시인이 『야생사과』(창비, 2009) 이후 5년 만에 일곱번째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 2014)을 펴냈다. 무한 허공을 향해 마른 가지를 뻗는 나무에서 저 무(無)의 바다 앞에 선 여인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이번 시집에는 죽음의 절망과 이별의 상처를 통과한 직후 물기가 마르고 담담해진 내면에 깃들기 시작하는 목소리와, 자신이 속한 세계 전체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인의 조용하고도 결연한 행보가 가득하다. “떼어낸 만큼 온전해지는, 덜어낸 만큼 무거워지는 이상한 저울, 삶”(뒤표지 시인의 산문)을 온몸으로 부딪쳐온 시인은 이제,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어쩌면 존재의 시원인 깊고 푸른 바다에서 시인이 만나는 무수한 말들과 그가 내보낸 한 마리 말, 이들의 상호순환적인 움직임은 해변에 이르러 부서지는 흰 포말처럼, 무의 허공으로 사라지는, 자신의 전 존재를 건 도약으로 볼 수 있다.(남진우, 시인/문학평론가) 그 도약은 “무언가, 아직 오지 않는 것”(「무언가 부족한 저녁」)처럼 어느 날 찾아드는 목소리일 사랑에의 희구, 궁극적으로 시인이 쓰고자 하는 한 편의 시를 향한다.
삶을 봉인한 피부의 깊이, 뿌리로부터 당신에게로 가는 길
첫 시집 『뿌리에게』(창비, 1991)를 필두로 등단 초기에 자기희생과 소멸까지 감내하며 묵묵히 포용하는 대지와 초목의 은밀한 교감 그리고 그 생성의 궤적에 주목했던 시인은 이번 시집의 첫 장에 한 그루의 나무로 자신을 설정하고 마를 대로 마른 가지의 이미지에 스스로를 투영한다. “나부끼는 황홀 대신/스스로의 棺이 되도록” 허락해달라는(「어떤 나무의 말」) 간절한 호소는 언뜻 내적 세계에 봉인된 시적화자의 소멸과 쇠락을 향한 죽음충동으로 읽힐 수 있다. 실제로 혈육이나 타인의 죽음이 초래한 슬픔과 애도로 가득하거나(「그날 아침」 「피부의 깊이」 「불투명한 유리벽」 「다시, 다시는」 「식물적인 죽음」 「취한 새들」 「그들이 읽은 것은」), 최근 정치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온 사건들에 대한 감회를 담는 등(「아홉번째 파도」) 주로 2부와 3부에 안타까운 죽음과 상실의 시간들(“피에서 솟구친 노래, 모래언덕을 잃어버린 파도”-「들리지 않는 노래」)이 산재해 있다.
자라기도 전에 날개가 꺾여버린
하늘의 익사체들,
새들에게 치사량의 알코올은 얼마쯤 될까
취한 새들은 곤두박질쳐서
벽에, 유리창에, 전선에, 다른 새들의 몸에 부딪쳤을 것이다
찢어진 북소리처럼 날갯소리 들렸을 것이다 ―「취한 새들」 부분
교도소는 장례식장과 청과물시장 사이에 있었다
썩어가는 것과 시들어가는 것 사이에
두 개의 초소와 세 개의 철문
호송버스와 승용차
열리는 문과 열리지 않는 문
푸른 수의와 검은 재킷
[…]
불가능한 대화와 불충분한 대화
비에 젖은 창문과 빗물조차 들어올 수 없는 복도
우산을 든 손과 들지 않은 손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인과 시인은 함께 읽었다 ―「그들이 읽은 것은」 부분
타나토스의 세계에서 에로스의 기쁨을 탈환하기 위한 존재의 분투
그렇게 한동안 감정의 격랑을 치러낸 시인은 육체와 감정의 부피가 줄어들 대로 줄어든 불모의 상황(“희박해진다는 것/언제라도 흩날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뿌리로부터」)을 거치면서 자기 파괴의 우울의 시간(“독백도 대화도 될 수 없는 것/비명이나 신음, 또는 주문이나 기도에 가까운 것//혀와 입술 대신/눈이 젖은 맞을 흘려보내는 밤/손이 마른 말을 만지며 부스럭거리는 밤”-「상처 입은 혀」)을 벗고 조금씩 회복의 시간을 꿈꾼다. “손 달린 말”(김진수/문학평론가)이라 불리기도 했던 나희덕의 예리한 감각의 촉수가 전작에서 삶의 편린과 욕망을 직조해냈다면(『사라진 손바닥』, 문학과지성사, 2004), 이번 시집에서는 강한 에로스적 친화와 생명력 넘치는 세계에 대한 탐색의 역할을 맡고 있다.
손보다는 섬모가 좋다
인간다움이 제거된 부드러운 털이 좋다
둥글고 잘 휘어지는 등이 좋다
구불구불 헤엄치는 무정형의 등이 좋다
휩쓸고 지나가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온순한 맨발이 좋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매순간 새롭게 생겨나는 위족이 좋다
[…]
그는 사랑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찾아온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 끌어안았던 태고,
그 저녁의 온기를 기억해낸 것뿐이다
섬모와 섬모가 닿았던 감촉을 다시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흰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 부분
흙과 물기가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풀의 신경계는 뻗어간다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풀은 풀과 흔들리고 풀은 물을 넘어 달리고 매달리고
풀은 물결기계처럼 돌아가기 시작한다
더 이상 흔들릴 수 없을 때까지
풀의 신경섬유는 자주 뒤엉키지만
서로를 삼키지는 않는다
다른 몸도 자기 몸이었다는 듯 휘거나 휘감아들인다
가느다란 혀끝으로 다른 혀를 찾고 있다 - 「풀의 신경계」 부분
“어둠이 등뼈에 불을 붙이고/등줄기가 타들어가는 소리를 듣고”(「추분 지나고」) 있을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지난한 고통의 시간을 지나온 시인이다. 일 년 남짓 이국의 낯선 도시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동안 어떤 ‘잉여의 시간’을 살아낸 몸 어딘가에 새로운 창 하나가 열린 듯도 하다(“가슴에 손을 얹고 몇 시간째 서 있으면/어떤 움직임이 문득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동작의 발견」). 서늘해진 대신 단단해지고, 무겁지 않되 활달해진 마음의 눈, 부재와 공존한 채로 타자와 바깥을 향해 뻗어나기 시작한 시적 상상력은 “어둠이 아직 어둠으로 남아 있다는 것”(「어둠이 아직」)을 다행으로 여기며, “점화와 암전, 환영과 환멸 사이에서”(「방과 씨방 사이에서」) 다시 쐐기풀을 짤 준비를 서두른다.
무에서 무로,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
크나큰 홍수가 지나고 난 자리에 앙금 같은 토사로 남은 시인은 이제 “몸의 힘을 빼고 천천히 걸어들어”간다. “돌연한 흰 벽의 시선에/중심을 잃고 기우뚱거리”면서(「벽 속으로」) 한번 열려 닫히지 않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눈동자를 주시한다.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
마음의 지평선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
누군가 까마득히 멀어지는 풍경,
그 쓸쓸한 소실점을 끝까지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 부분
내 안의 울림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갇힌 주체에서 타자를 향해 자신을 여는 순간, 삶은 태고의 신비가 드러나는 그 많은 기적의 순간을, 존재의 연쇄가 우연히 빚어내는 생명의 질서까지 우리에게 허락한다. “낡은 거푸집을 헤치고 날아오르느라/날개가 부러진 흔적”과 “찢긴 지느러미”(「들리지 않는 노래」)를 지닌 시인(‘새-여자’ ‘물고기-여자’), 그는 이제 새로운 말[馬]이자 동시에 말-언어에 좀더 가까워지고 있다.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히히히힝, 내 안에서 말 한 마리 풀려나온다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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