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새는 다른 공작새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 공작새는 다른 공작새의 꼬리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모든 공작새는 자기 꼬리가 가장 훌륭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작새는 평화로운 새이다.
쇼펜하우어는 그의 저서인 '행복론'에서 인간의 운명을 3가지로 분류했다. 첫번째 인간을 이루는 것은 인격으로 건강, 힘, 아름다움, 기질, 도덕성, 예지와 예지의 함양을 들었고, 두번째는 인간이 지니는 것을 소유라 했고, 세번째로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보이는 것은 인상으로 명예, 지위, 명성이라 했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이러한 기질들을 갖추어야 얻을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이란 단어는 좋은 운수란 뜻이있고 이는 '행운'이란 단어와 동일한 의미이다. 반면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한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정복'은 다루기어렵거나 힘든 대상 따위를 뜻대로 다룰수 있게된다는 단어와 맑고도 조촐한 행복이란 단어가 동음이의어의 관계에 있다.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행복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불행에 대해 러셀이 기술한 부분 살펴보자. "전형적으로 불행한 사람은 청소년 시절에 정상적인 만족을 박탈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그 한가지 만족을 과대평가하게되어 자신의 생활을 오직 그 만족을 얻는 방향으로만 이끌게 되고, 자연히 거기에 방해가 되고, 성격이 다른 성취들에 대해서는 아주 부당한 평가를 내리게 된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과 축복 속에서 태어나고, 호기심으로 그의 주변을 학습해나간다. 어느순간부터 아이에 대한 부모의 애정이 성공에 대한 기대감으로 변해가고, 학교라는 곳은 사회에 필요한 인재상과 기준에 이르도록 아이를 가르친다. 그러한 과정을 순조롭게 거쳐 기준을 충족시킬만한 지위를 사회에서 인정받으면 '성공한 사람'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율적이든 타율적이든 행복의 기준이 외부적 요소인 소유와 인상이 내부적 요소인 인격보다 더 강조되고 인정받는다는 것에 있다. 그러한 두 가지 기준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또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불행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인간을 이루는 것, 즉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외부로부터 필요한 것이 더 적어지고, 다른 사람이 덜필요한 사람이다.
문제는 인간은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함으로 인해 소유와 인상에 더 가중치를 두거나 ,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자기자신을 지나치게 높게 인식하는 데 있다.
'아르고스'는 100개의 눈을 가진 괴물로서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몸에 붙어있는 눈들은 번갈아 휴식을 취하며.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이오'를 감시하며 항상 깨어있는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제우스의 명을 받은 헤르메스에게 살해당하게되고. 이후 헤라는 그의 눈들을 공작의 깃털에 붙여 장식했다고 한다.
러셀은 공작은 자신의 꼬리를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화로운 새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공작은 왜 자신의 꼬리를 훌륭하다고 생각했을까?
아르고스의 눈들이 타인의 시선이라면, 공작의 그러한 연결관계는 단절이라기보다 결합이며, 꼬릿털은 공작을 다른 새보다 구별되고 아름다운 새로 만들어준다. 공작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인식하면서도 다른 공작들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래서 공작은 평화로운 새이다.
우리는 스스로 고립되지 않는한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평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한 기준은 우리가 인식하기 전부터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 적합한 것이 아니거나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아르고스라는 괴물에게 감시당하는 수인일 뿐이다. 그러한 감시를 견딜 수 없을 때. 정신은 불안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신체는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준은 고정되는 것이 아니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사회에 규정된 부분적인 지위에 불과할 뿐 온전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어느 정도까지는 고려할 필요는 있다. 그래야 자신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과 여유를 확보할 수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러셀은 "행복한 사람은 객관적으로 사람이자 자유로운 사랑과 폭넓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며, 이러한 사랑과 관심을 통해, 그리고 다음에는 그의 사랑과 관심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확보하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했다.
나에게 행복이란, 받아들인 것 받아들이고, 인정할 것을 인정함으로써 깨닫게 되는 상태이며, '행복의 정복'은 그러한 상황을 뜻대로 다루면서 얻게되는 맑고도 조촐한 행복을 말한다.
" '우리는 자신이 갖지 않은 것을 보면 곧잘, 이게 내것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아쉬워한다. 하지만 그 대신에 가끔 ' 이게 내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라고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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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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