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베개를 베다 (윤성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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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6.4.21

페이지

276쪽

상세 정보

살아간다는 일이란 원래 이토록 삶에 대한 실감을 하지 못한 채 흘러가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삶 안에 있음에도 그로부터 소외되어, 삶의 의미와 느낌 같은 것들에 쉽게 무뎌진다. 그것이 지나친 피로감 때문이든 혹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든,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들로 우리는 삶의 실감을 잃어버린 채 주어진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어쩌면 윤성희의 소설을 읽는 일은 바로 이 삶의 실감을 되찾기 위함이 아닐까. 2012년에서 2015년 사이에 쓰여진 열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다섯번째 소설집 <베개를 베다>에는 시간의 결과 마디를 살아나게 하는 이야기들이 넘실댄다.

어느 봄에서 시작하여 다시 어느 봄으로 끝나는 이 소설집을 읽으며 우리는 "(유행하는 말로 해보자면) 윤성희 소설을 한 편도 안 읽은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단 한 편만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전혀 유행 따라 그저 해본 말이 아님을, 또한 "낮술을 마시고 길을 걸을 때처럼 무엇이나 환하고 선명하게 보이게 한다"(문학평론가 백지은)는 말이 그저 비유에 그칠 뿐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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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님의 프로필 이미지

이현주

@yihyunjual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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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실린 작품해설 속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그대로 있어서
아ㅡ 책을 헛읽지는 않았구나ㅋ

적당히 아프고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따스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
단편소설들이 왠지 모르게 비슷하고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건,
소재의 한계일까 밋밋한 구성 때문일까.

절정과 대단원이랄게 없어서
따스하지만 평이했고
그래서 계속 이어지는 단편속에서 흥미를 좀 잃음.

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19년 1월 21일
0
지새는달님의 프로필 이미지

지새는달

@3tekyncpwyid

심심할 듯 싶지만 감칠맛 돌고
소박해 보이지만 깊은 맛이 났던 책

짧은 호흡으로 부드럽게 이어져 술술 읽히는데
동시에 엄청나게 다양한 것들이 느껴졌음
기쁨 슬픔, 나에 대한 고민 삶에 대한 고뇌...

특히 짧은 글 속에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관계,
특별한 서사를 능숙히 담아내는 것 같다고도 생각

여러모로 읽는 내내 즐거웠음





“어머니의 말처럼 세상에 이런 게 있을까 싶은 것들을 상상하며 늙어갔으면 좋겠다.”

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18년 12월 26일
0
사는게버거운정도님의 프로필 이미지

사는게버거운정도

@s071bqhxwhsn

아무렇지도 않은듯인지,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아닌지,
평온해서인지, 그저 눈물이 나는건지,
제목이 예쁘니 봐주는거라는거.

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었어요
2017년 2월 6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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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살아간다는 일이란 원래 이토록 삶에 대한 실감을 하지 못한 채 흘러가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삶 안에 있음에도 그로부터 소외되어, 삶의 의미와 느낌 같은 것들에 쉽게 무뎌진다. 그것이 지나친 피로감 때문이든 혹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든,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들로 우리는 삶의 실감을 잃어버린 채 주어진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어쩌면 윤성희의 소설을 읽는 일은 바로 이 삶의 실감을 되찾기 위함이 아닐까. 2012년에서 2015년 사이에 쓰여진 열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다섯번째 소설집 <베개를 베다>에는 시간의 결과 마디를 살아나게 하는 이야기들이 넘실댄다.

어느 봄에서 시작하여 다시 어느 봄으로 끝나는 이 소설집을 읽으며 우리는 "(유행하는 말로 해보자면) 윤성희 소설을 한 편도 안 읽은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단 한 편만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전혀 유행 따라 그저 해본 말이 아님을, 또한 "낮술을 마시고 길을 걸을 때처럼 무엇이나 환하고 선명하게 보이게 한다"(문학평론가 백지은)는 말이 그저 비유에 그칠 뿐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출판사 책 소개

제14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이틀」 수록!

“쓸쓸한 생을 위로하는 따뜻한 웃음과
짧은 하루도, 지루한 사흘도 아닌,
‘이틀’이 주는 균형의 미학을 즐길 수 있다.” _심사평에서

시간의 결과 마디를 살아나게 하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타고 흐르는 삶의 의미와 감정들


살아간다는 일이란 원래 이토록 삶에 대한 실감을 하지 못한 채 흘러가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삶 안에 있음에도 그로부터 소외되어, 삶의 의미와 느낌 같은 것들에 쉽게 무뎌진다. 그것이 지나친 피로감 때문이든 혹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든,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들로 우리는 삶의 실감을 잃어버린 채 주어진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어쩌면 윤성희의 소설을 읽는 일은 바로 이 삶의 실감을 되찾기 위함이 아닐까. 2012년에서 2015년 사이에 쓰여진 열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다섯번째 소설집 『베개를 베다』에는 시간의 결과 마디를 살아나게 하는 이야기들이 넘실댄다.

소설집의 전반부는 「가볍게 하는 말」 「못생겼다고 말해줘」 「날씨 이야기」 등과 같이 어린 손자와 단둘이 사는 고모, 딸 하나를 잃은 어머니, 어쩐지 정신이 조금 없어 보이는 언니 등 연장자 인 여성을 관찰하는 여성 화자의 목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 화자의 시선에는 죄책감이나 미안함, 연민 같은 확실하고 분명한 감정이 드러나는 대신, 과거를 조밀하게 기억하고 현재의 생활을 촘촘하게 이어나가는 삶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이야기들을 지나면, 「휴가」 「베개를 베다」 「이틀」 등과 같이 어딘지 모르게 조금 모자라다 할 법한 남자들의 사연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다 큰 성인임에도 어린 시절 어머니가 차갑게 내뱉은 말에 매달려 자꾸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남자, 느닷없이 엑스트라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도 헤어진 남자, 또한 은퇴를 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결근하는 일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되짚어보면, 우리 안에도 역시 그 연약함이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함께.

윤성희의 소설은, 작은 이야기들이 저마다의 무늬로 굽이치며 흐르고 있기에 무척 촘촘하다고 느껴지지만, 사실 이 빽빽함 안에는 굳이 언급하기를 생략하여 생겨난 아주 환한 여백들이 있다. 이를테면, 어린 손자와 함께 사는 고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가볍게 하는 말」. 아마도 고모의 아들인 ‘태우 오빠’는 죽은 듯한데, 윤성희는 이에 대해 어떤 설명도 꺼내지 않는다. ‘나’가 기억하는 아홉 살 적의 태우 오빠―이른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일어난 그가 잠에서 깨어난 ‘나’에게 더 자라고 속삭이며 이불을 덮어주던 기억―의 부지런함과 다정함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말해주면서 말이다. 이처럼 누군가의 부재가 왜 발생한 것인지 함구하는가 하면, 「베개를 베다」의 ‘나’가 갑자기 엑스트라 연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누군가의 결심이 어째서 비롯된 것인지 또한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세밀하게 이야기되는 것들이 둘러싸고 있는 텅 빈 여백. 그 풍경이 바로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삶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왜 모르지 않을 것인가.

어느 봄에서 시작하여 다시 어느 봄으로 끝나는 이 소설집을 읽으며 우리는 “(유행하는 말로 해보자면) 윤성희 소설을 한 편도 안 읽은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단 한 편만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전혀 유행 따라 그저 해본 말이 아님을, 또한 “낮술을 마시고 길을 걸을 때처럼 무엇이나 환하고 선명하게 보이게 한다”(문학평론가 백지은)는 말이 그저 비유에 그칠 뿐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가볍게 하는 말 _어느 봄, 고모의 손자로부터 걸려온 전화. 할머니가 입원했으니 문병을 와달라고. 그러면서 아이는 덧붙이길, 할머니는 음료수보다 꽃을 더 좋아한다고. 나는 큰어머니, 어머니, 작은어머니와 함께 병문안을 간다. 그런데 고모는 지난해 아버지의 칠순 잔칫날, “이만하면 우리 집안도 성공한 거 아니겠냐”며 부둥켜안고 우는 세 사람(큰아버지, 아버지, 작은아버지)을 향해 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와 같은 말을 해버린 것일까? 나는 고모 대신 고모의 손자의 체육대회에 갔다가 이런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언젠가 고모는 친구의 장례식장에 가서 그의 아들을 위로하며 “기운내라. 산 사람은 살아야지” 같은 말을 해주었다고, 하지만 뒤늦게야 “그건 부끄러운 말”이고 “예의가 없는 말”임을 깨달았다는.

못생겼다고 말해줘 _진딧물이 끼지 않도록 맥주로 화초를 닦는 어머니를 위해 퇴근길에 맥주를 한 캔씩 사가는 나. 형부와 유학을 간 쌍둥이 언니의 음성을 흉내내어 언니인 척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거는 나. 그리고 다섯 개의 전신줄을 볼 때마다 <학교종> 악보를 상상하는 어머니를 위해 새들이 앉은 전신줄을 찾아 사진을 찍어 ‘새 악보’를 완성하는 나…… 마흔다섯의 미혼모인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쌍둥이 자매는 서로에게 “넌 너무 못생겼어”라고 말하며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언니. 나는 그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어머니와 나름의 삶을 꾸려가지만, 어쩌면 어머니 또한 그 부재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날씨 이야기 _“큰누나한테 좀 가봐. 새벽마다 전화를 해서는 무슨 말인지 모를 말들만 해.” 남동생의 전화를 받고 나는 언니에게 간다.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들의 학비를 벌고, 결혼자금을 모아주었던 언니. 초인종 자리가 동그랗게 뚫려 있고 현관엔 신발이 한 켤레도 없는 언니의 집. 그런 집에서 언니와 보내는 하루―언니가 만든 김치찌개로 밥을 먹고 한숨 자기. 언니가 늘 바라보았을 창밖의 풍경을 따라서 보기. “널 평생 미워하겠다”고 적힌, 잘못 온 엽서에 관한 이야기 듣기. 그리고 이른 아침, 함께 졸업한 고등학교로 산책을 나가 아이들이 지각하는 모습을 구경하기. 헤어져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전, 나는 욕실 거울에 금이 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유리가게에 찾아가서 “얼굴이 예뻐 보이는 거울”을 주문한다. 그리고 언니에게 말한다. “반드시 세수를 마치고 거울을 보면서 볼을 두 번 두드릴 것.” 그리고 “음. 괜찮군” 꼭 그렇게 말하라고.

휴가 _열다섯 살에 만나 이십여 년을 함께 뭉쳐 다닌 세 친구 ‘박장대소’. 대수는 죽고, 나 ‘장’은 파혼을 했다. 그래서일까, ‘박’은 아내와 함께 나를 은근히 챙기는 듯하다. 여름휴가 첫날, 예고 없이 나의 집으로 찾아온 박은 자신의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나자 한다. 막국숫집에서 점심을 먹고, 밀리는 도로 위의 차 안에서 끝말잇기를 하고, 펜션에 도착해서는 수영을 하고, 저녁에는 바비큐 파티를 연다. 둘째 날엔 빗속에서 아이들과 신나게 물썰매를 탄 후 미술관에 들른다. 그곳에서 문득 떠오른, 자신을 속였던 한 여자에 대한 기억…… 아이들과 뛰어노는 박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셋 중 한 명이라도 실패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베개를 베다 _“헤어진 남편에게 집을 봐달라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지.” 나는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된 아내의 집을 봐주러, 예전에 함께 살던 집에 간다. 장모의 칠순 잔치를 무사히 끝내고 난 뒤 느닷없이 아내에게 “난 엑스트라가 되어야겠어. 거기 가서 나보다 늙은 사람이 될래” 말하곤 떠나온 집. 나는 그후 엑스트라가 되어 백 부작 대하 사극에서 “태어나기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가서 죽는” 일을 반복한다. 텅 빈 집, 베개를 베고 누워 낮잠을 자던 나는 아내와 통화하는 꿈을 꾼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짱구는 못 말려>에서 “현재를 잃어버리고 과거로 돌아가려 할 때마다” “서둘러 신발을 벗고 발냄새”를 맡는 장면을 보며 웃다 슬픔을 느낀다. 문득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진다.

팔 길이만큼의 세계 _같은 이름의 전학생 때문에 번호로 불리게 된 도훈. 15 그리고 59, 금세 친해진 두 사람은 함께 <행복마트> 평상에 두 팔을 펴고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는 게 마냥 좋다. 그러나 59번이 전학을 가는 바람에 도로 이름으로 남은 도훈. 다른 친구들을 사귀기도 하지만 이전처럼 ‘완벽한 함께’는 다시 오지 않는다. 어머니의 식당을 자주 찾는 삼촌은 도훈이 낯선 감정을 겪을 때마다 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건네준다. 대학생이 된 도훈은 하숙집 옆방 친구와 가까워지지만 그의 연인을 짝사랑하는 바람에 싸우고 만다. 그후 서른둘의 결혼과 서른아홉의 이혼. 도훈은 삼촌의 칠순 잔치에서 “지금처럼 매일매일 밥 먹으러 와주세요”라고 말한다. “이제 그만 어머니에게 같이 살자고 말해보세요” 말하고 싶은 심정으로.

낮술 _엄마와 미희 이모는 낮술을 마시며 서로 가까워진 사이다. 이모가 좋아하던 건 닭똥집과 청하. 엄마가 좋아하던 건 건배. 둘은 서로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며―그러니까 엄마는 닭똥집과 청하를, 이모는 수차례의 건배를―꾸준히 낮술을 마신다. 변기 만드는 회사에서 만난 아빠와 결혼한 엄마. 나가 두 번이나 정학을 맞자 속이 상한 엄마는 미희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고 싶지만 이모는 해외에 있다. 결국 혼자 중국집에서 이과두주를 마시는 엄마, 그날 하늘에 걸려 있던 아주 커다란 무지개. 크리스마스이브에 치킨 배달을 나갔던 아빠는 교통사고로 죽고 나는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 집에서 혼자 캔맥주를 마신다. 시간이 흘러 대학에 입학하게 된 나는, 집을 떠나기 전 엄마와 막걸리를 마신다. 언젠가 선물 받은 와인잔에 담아, 쨍, 하니 건배를 하며.

모서리 _큰외삼촌의 팔순 잔치에 간 나. 엄마와 새아버지와의 결혼을 반대했던 외삼촌들은 차마 엄마의 안부는 제대로 묻지 못하고 그저 내게 좋아 보인다는 말들만 건넬 뿐이다. 집에 돌아오니 친구 ‘조’가 침대에 누워 있다. ‘조’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다시 바래다주러 가는 길, ‘조’는 자신과 같은 이름의 문패가 달린 집을 보기 위해 부러 골목을 돌아 나의 집에 온다는 이야길 들려준다. 군복을 입고 만나 술을 마시기로 한 두 사람. 나는 왼쪽 가슴주머니에 젊어서 죽은 사촌형의 흑백사진을 넣고 나온다. 술을 마시다 나오니 거리엔 눈이 내리고 있다. ‘조’에게 흑백사진을 보여주니 그는 사촌형처럼 포즈를 취하고, 나는 그 사진에 찍힌 누군가의 손가락처럼, 내 손가락도 나오게 사진을 찍는다. ‘조’는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골목길을 돌아 ‘조’와 같은 이름이 적힌 문패를 보러 간다.

다정한 핀잔 _“열두 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친구가 돼요?” “그러니까 같이 술을 마실 수 있는 사이가 되면 나이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얘기지.” 병원 대기실, 미애씨와 그녀의 아들 형욱, 그리고 나는 미희 언니가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나오길 기다리는 중이다. 미희 언니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햄버거가게의 부점장이었다. 청소검사를 하도 깐깐하게 해서 그만두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나온 뒤로도 언니와 만났다. 미희 언니의 동생 미애씨와 대화를 하다보니 두 사람 모두 미희 언니의 이십대만큼은 잘 모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수술은 길어지고, 나와 미애씨는 서로가 알고 있는 미희 언니의 이야기에 귀를 내준다. 어느새, 대기실 문이 열리고 미희 언니의 보호자를 찾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가만히 서서, 형욱에게 기댄 채 수술실 앞에 선 의사를 향해 걸어가는 미애씨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틀 _감기로 회사에 나가지 않기로 한 날. 김비서는 나의 전화에 몹시 놀란 눈치다. 작년 가을, 삼십 년 넘게 함께 일한 사장이 갑자기 죽은 이후 아침 일곱시에 출근하기를 그만두었지만, 누구나 이 나이가 되면 숱한 죽음을 겪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다. 하지만 오늘 나의 눈에 보이는 풍경은 어쩐지 새롭다. 이 자리에 원래 이렇게 큰 목련나무가 있었던가,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 나의 눈에 띈 나무 한 그루. 다음날 눈을 뜨니 이미 낮 한시가 넘어 있다. 이틀째 결근한 나는 밥을 먹고 돌아오다 백발의 할머니를 만난다. 그녀를 따라 밭을 갈고 이랑과 고랑 만드는 일을 돕는 나. 할머니는 나에게 “내일은 출근해. 땡땡이는 딱 하루면 좋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은 이틀째 결근이며 내일도 회사에 가기 싫을까봐 두려운 나. 할머니와 헤어진 나는 어쩐지 어제보다 덜 아픈 기분이고, 그럼에도 아프다고 엄살을 맘껏 부릴 수 있을 만큼 편안해진 기분이다.



윤성희의 소설을 계속 읽다보면 어쩐지 진짜 삶의 의미와 재미를 좀더 알 것 같다는 기분에까지 이르게 된다. 맞다. 지난 십여 년간 이 기분 때문에 윤성희 소설을 읽었다. (유행하는 말로 해보자면) 윤성희 소설을 한 편도 안 읽은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단 한 편만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윤성희의 다른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번 책을 안 읽을 수는 없다. (……) 윤성희의 이야기들이 환기하는 (삶의) 의미의 리듬 혹은 리듬의 의미는, 그 자체로 소소하게 흥미롭고 수수하게 아름답지만, 그 삶의 에너지랄까, 파워랄까, 그것까지 소소하고 수수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일상을 의례화하는 그 세계는 마치 낮술을 마시고 길을 걸을 때처럼 무엇이나 환하고 선명하게 보이게 한다. _백지은(문학평론가)



“어떻게 하냐. 그래도 기운내라. 산 사람은 살아야지.” 고모가 손자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는 걸 그때는 이 할미가 몰랐단다. 그건 부끄러운 말이란다. 그건 예의가 없는 말이란다.”(29쪽)

“우리 할머니는 어떤 분이었어요?” 나는 수연에게 고모는 세상에서 목련꽃 풍선을 가장 잘 불던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29쪽)

우리는 가만히 서서 눈을 맞았다. 조, 눈은 쌓이는 걸까 포개지는 걸까 겹쳐지는 걸까. 조가 손을 하늘로 뻗었다.(199쪽)

새벽은 하루의 시작일까 하루의 끝일까? 나는 조에게 물었다. 해가 지고 해가 뜨는 사이. 그건 어디에 속하느냐고. 조가 팔짱을 끼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뭐긴 뭐야. 어제와 오늘이 겹쳐지는 시간이지. 그래서 그 시간에 술이 가장 맛있는 거야.(201쪽)

“이렇게 큰 나무가 있다니 놀라워요.” 할머니가 목련을 올려다보았다. “난 작은 나무들이 좋아. 그건 해마다 자라는 게 눈에 보이거든.” 목련나무 아래에서 할머니와 나는 묵례를 하고 헤어졌다.(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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