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태도가 된다

전영관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슬픔도 태도가 된다 (전영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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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0.6.29

페이지

144쪽

상세 정보

문학동네시인선 141권.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전영관 시인의 세번째 시집이다.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이후 4년 만이다. 2015년 뇌졸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시인은, ‘차가움과 뜨거움을 통증으로 착각하는 왼손’을 주무르며 한 손으로 시를 써내려갔다. ‘회진’ ‘처방전’ ‘후유증’ ‘섬망’ ‘요양’에서부터 ‘구름 감별사’ ‘허밍’ ‘와온’까지, 60편의 시 제목들에서부터 그의 실제와 꿈, 현실과 지향점이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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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태도가 된다

전영관 지음
문학동네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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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문학동네시인선 141권.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전영관 시인의 세번째 시집이다.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이후 4년 만이다. 2015년 뇌졸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시인은, ‘차가움과 뜨거움을 통증으로 착각하는 왼손’을 주무르며 한 손으로 시를 써내려갔다. ‘회진’ ‘처방전’ ‘후유증’ ‘섬망’ ‘요양’에서부터 ‘구름 감별사’ ‘허밍’ ‘와온’까지, 60편의 시 제목들에서부터 그의 실제와 꿈, 현실과 지향점이 짐작된다.

출판사 책 소개

“내 안의 꽃이 다 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꽃이 보인다
잔바람에 떨어져 낡아가는 꽃잎들이 먼저 보인다”
―질병이라는 재난이 가져다준 깨달음, ‘슬픔도 태도가 된다’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전영관 시인의 세번째 시집을 선보인다.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이후 4년 만이다. 2015년 뇌졸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시인은, ‘차가움과 뜨거움을 통증으로 착각하는 왼손’을 주무르며 한 손으로 시를 써내려갔다. ‘회진’ ‘처방전’ ‘후유증’ ‘섬망’ ‘요양’에서부터 ‘구름 감별사’ ‘허밍’ ‘와온’까지, 60편의 시 제목들에서부터 그의 실제와 꿈, 현실과 지향점이 짐작된다.

그가 오면 아침이 새뜻해진다
막연하게 자신감 생기는 것이다

능숙한 의사같이
쭈그러진 어깨를 펴주고
무릎을 칼날로 세워준다
굴종의 자세로 늘어지는 삼겹살
환멸의 증거로 널브러진 토사물
타협의 지분으로 뒤섞인 찌개 냄새들을
벤젠이라는 항생제로 치료한다
새물내 나는 옷을 곧바로 입는 것보다
어제 입었던 셔츠가 편한 까닭은
나만 편들어주는 체온이 남아서겠지
눈치가 태도로 남아서겠지

환절기에는 병원마다 감기 환자로 줄을 선다

세탁소가 벗어놓은 옷으로 그득한 것은
삶의 자세를 바꾸면 아프다는 뜻이다
품은 맞는데 기장이 짧은 미흡처럼
일상은 무언가의 트집을 무릅쓰는 일이다

물러서는 파도를 따라 잔걸음질치다가
되돌아서는 일이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보낼 때 확인했는데 배달되면 주머니마다 손 넣어본다
누구에게나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는 악동이 있는 것처럼
실망에 실망하지 말아야지

세탁물 들고 회진중인 그가 돌아서는 순간
풍기는 벤젠 냄새에서
휘발(揮發)이라는 망각을 생각했다
―「회진」 전문

서시로 자리잡은 시 「회진」에서 시인은 세탁물을 들고 동네를 도는 이를 보며 병실에서 마주한 회진 시간을 떠올린다. 그는 일상의 숱한 냄새를 지우는 벤젠을 ‘항생제’로 대입해보는 사람, 환절기가 오면 감기 환자로 북적이던 병원 풍경을 떠올리는 사람이다. 기억이 환기하는 지울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을 그러나 시인은 시에 욱여넣지 않고, 일상의 숭고함에 대한 성찰과 자기 격려의 언어들로 채우려 한다. “삶의 자세를 바꾸면 아프다는 뜻”이고, “실망에 실망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삶이라고 말이다.
인간이 얼마나 휘청이기 쉬운 존재인지 질병만큼 또렷이 보여주는 것이 없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시련, 철저하고 완벽하게 나만의 것인 고통. 그와 동시에 비틀리고 훼손되고서야 보이는 진정한 나 자신의 존재성과 내 삶을 이루던 구체성이 있나니, 절망과 희망, 보잘것없음과 숭고함, 파열과 축복이 자신의 삶과 세계를 어떻게 해체하고 재구성했는지 시인은 정제된 언어로 곡진하게 새겼다.
“보잘것없는 것들이나 차지하려고 악력을 키웠”(「정선 몰운대」)던 지난날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건강할 때는 사소하다 흘려버렸던/ 사소한 것들의 목록을 되찾고 싶”(「수면유도제」)다는 바람과 “사소한 것들도 화려했던 날은 있는 것”임을 묵묵히 써내려가는 동안 시인이 마주한 풍경은 어두웠을까, 무거웠을까, 말갛게 개어왔을까.

병실에서 법고가 운다
북채의 타격음이 아니라 채로 길게 문지르는 소리
평생 독경으로 무두질했을 견고한 소리
간병인이 물수건으로 몸을 닦을 때
아프다고 터져나오는 소리
절에서 왔다는 혜운 스님이 운다
병들지 않았다면 음성도 우렁우렁할 스님
차가움과 뜨거움을 통증으로 착각하는 내 왼손처럼
물수건 닿는 자리마다 낯선 감각일 테지
거죽을 벗기는 듯 쓰라리고 화끈거리겠지
울음소리가 새벽의 바닥을 기어간다
통증은 언어 바깥의 것이다 알아듣지 못할 대화를
간병인과 나눈다 통증에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나 싶으면
엄마……
엄마……
불경 필사를 했어도 절반은 마쳤을 노승께서
아미타불 대신에 엄마, 엄마를 부른다
부처는 넓고 크고 엄마는 깊고 질기다고 되뇌며
젖은 베개를 베고 돌아눕는다
아득한 소리를 따라 부른다
―「섬망」 전문

평생을 수행에 바친 노승마저도 고통에 몸부림치며 “아미타불 대신에 엄마, 엄마를 부”른다. 시인은 “물수건 닿는 자리마다 낯선 감각일” 터란 것을 짐작하고, “차가움과 뜨거움을 통증으로 착각하는 내 왼손”의 감각으로 상상한다. 끝내 공유할 수 없는 고통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섣불리 ‘나도 안다’ 말하는 대신 시인으로서 묵묵히 노승의 아픔을 받아적는 길을 택한다. 그 자신 “완치는 없다 한다”는 판정을 받은 몸. “완치는 없고/ 근처까지는 도달한다는 뜻으로 근치(近治)” 판정을 받았기에, “망가진 육신에 슬픔이 도착하면서 모두 비슷해진다”는 것을 알기에(「가까이」) 가능한 일이리라.

‘근치’는 인간 존재의 숙명이자 삶의 속성이며, 사랑의 조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치의 인간은 자주 삐걱거리고 침몰하는 심신의 균열을 통해 타자와 만날 가능성을 획득한다. 불완전한 건강 상태인 ‘근치’는 오히려 ‘삶’과 ‘사랑’을 추동하는 역설적인 추진력이 되는 것이다. 전영관은 말한다. 고통과 두려움에 수시로 습격당하는 투병을 통해 “폐허를 경유한 사람”만이 아는 “수긍의 기술”을 배웠노라고.(「한파주의보」) “결국, 사랑은 자기와 다른 것들을 다루는 솜씨”임을 터득했노라고.(「독바위역」)
―김수이, 해설 「부서져 열린 자의 삶과 사랑」에서

통증, 질병, 근치와 완치, 인간, 관계, 가족, 눈물, 사랑… 이전과는 전혀 다른 ‘두번째 삶’을 살며 시인이 자기만의 사전에 새로이 정의 내렸을 시어들을 마주하며 우리는 우리의 사전을 돌아보게 되리라. 더 나은 삶, 더 그럴듯한 삶이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할지. 몸과 마음의 건강은 무엇으로 가능할지. 살아지는 대로 살고 있진 않은지. 놓지 말아야 할, 진정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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