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허버트 스펜서 지음 | 유아이북스 펴냄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처음 읽는 허버트 스펜서의 교육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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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6.6.20

페이지

264쪽

상세 정보

영국의 대표적인 사상가 허버트 스펜서의 교육 사상을 다룬 저서. 허버트 스펜서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서 19세기의 교육과정을 비판한다. 19세기의 교육과정은 현재의 교육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암기에 치중하고, 도덕에 무지하고, 체력을 경시했다. 즉, 당시부터 시행된 교육과정은 아이에게 불행의 씨앗이나 다름없었다.

왜 우리는 오래전 교육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까? 왜 우리는 아이가 행복해하지 않는 교육을 강요할까? 스펜서는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다방면에서 활약한 이력에 걸맞게 인간과 사회 모두 번영할 수 있는 교육의 길을 제시한다. 교육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발판이자, 해법이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교육을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제 교육을 다시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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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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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교육자로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가치를 논의하고 있기도 하지만, 사회인으로 어떻게 사회에 지식인으로서 참여할 것인가에 대한 자기 삶의 담론을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끄는 책이다. 18세기의 사회현상과 오늘날의 사회현상 문데가 닮은 점도 흥미롭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충분힌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는 책으로 소개하고 싶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허버트 스펜서 지음
유아이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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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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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영국의 대표적인 사상가 허버트 스펜서의 교육 사상을 다룬 저서. 허버트 스펜서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서 19세기의 교육과정을 비판한다. 19세기의 교육과정은 현재의 교육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암기에 치중하고, 도덕에 무지하고, 체력을 경시했다. 즉, 당시부터 시행된 교육과정은 아이에게 불행의 씨앗이나 다름없었다.

왜 우리는 오래전 교육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까? 왜 우리는 아이가 행복해하지 않는 교육을 강요할까? 스펜서는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다방면에서 활약한 이력에 걸맞게 인간과 사회 모두 번영할 수 있는 교육의 길을 제시한다. 교육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발판이자, 해법이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교육을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제 교육을 다시 생각해 볼 때다.

출판사 책 소개

과거의 교육이 현재의 교육에 답하다

영국의 대표적인 사상가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의 교육 사상을 다룬 저서. 허버트 스펜서는 찰스 다윈이 “나보다 몇 배는 나은 위대한 학자”라고 평가할 정도로 당대 명망 있는 학자였다. 그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서 19세기의 교육과정을 비판한다. 19세기의 교육과정은 현재의 교육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암기에 치중하고, 도덕에 무지하고, 체력을 경시했다. 즉, 당시부터 시행된 교육과정은 아이에게 불행의 씨앗이나 다름없었다.
왜 우리는 오래전 교육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까? 왜 우리는 아이가 행복해하지 않는 교육을 강요할까? 스펜서는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다방면에서 활약한 이력에 걸맞게 인간과 사회 모두 번영할 수 있는 교육의 길을 제시한다. 교육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발판이자, 해법이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교육을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제 교육을 다시 생각해 볼 때다.

출판사 리뷰

통찰의 눈으로 교육을 재해석하다
19세기 대표 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교육론’을 다룬 국내 첫 번역서

우리는 아이가 배움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런데 아이는 왜 배우면서도 행복해하지 않을까? 기억하고 있던 것도 금세 까먹고, 공부에 흥미를 느끼다가도 손을 놓아버릴까? 아무리 잘못을 일러줘도 그것을 고치지 않을까? 우리는 학교라는 틀에 갇혀 그 이상의 교육 문제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이 아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듯, 학교만의 문제 또한 아니다. 단순히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교육이 아니기에 우리는 배움 그 이상의 것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일까?
많은 학자들이 교육을 놓고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이 있다. 1800년대 후반 남다른 시각으로 미래의 교육 현실까지 꿰뚫어본,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이다. 영국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허버트 스펜서는 생전에 아리스토텔레스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학자로 손꼽혔던 인물이다. 과학부터 심리학, 사회학을 넘나들며 방대한 영역에서 활약했던 그는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는 방법을 논의했다. 그 논의가 이 책《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담겨 있다.

허버트 스펜서는 당시의 교육 문제가 겉모습에만 치중했다고 지적한다. 즉,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교육이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스펜서는 교육이 품위가 없고 무지몽매하다는 증거로 다양한 지식의 상대적 가치가 논의된 적이 없다는 점을 든다. 그는 관습이나 선호 혹은 선입견이라는 울타리 안에 교육이 갇혀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정작 배워야 할 지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기에 우리는 상대적으로 중요한 지식을 공부해야 한다. 스펜서는 모든 지식의 궁극적인 척도는 인간의 복리(福利)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교육의 지향점을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문제로 규정하였다. 이를 기준으로 스펜서는 삶에서 비중이 큰 것부터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개인의 안전에 관한 것이 우선이며, 여가에 관한 것이 가장 나중에 적용된다. 또한 자녀보다는 자기를 위한 교육, 국가보다는 가정을 위한 교육을 중요시했다.

이처럼 생활에 이로운 교육을 중시했던 스펜서에게 당시의 교육과정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는 생존을 위한 교육으로서 ‘생리학’을, 삶에 보탬이 되는 교육으로서 ‘과학’을 강조한다. 물리학, 수학 등 과학 분야야말로 합리적인 지식의 토대가 되며 생계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한편, 모든 교육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가 걸음마를 떼고 스스로 말을 배워 가듯이 교육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배워 가야 한다.

그러나 교육은 여전히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이가 무언가에 호기심을 갖고 관찰하는 과정은 그 어떤 교육법보다 효과적이지만, 어른들은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음식을 떠먹이듯 지식을 전달한다. 심지어 그러한 지식은 어렵고 복잡하다. 마치 그림을 그리기 전에 점과 선의 정의를 가르치는 격이다. 아이는 당장이라도 어딘가에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어른은 지식을 전달하느라 아이의 의사를 가로막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는 재미가 없으니 배움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흥미를 잃어버리니 알던 것도 잊어버리고,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어른들이 아이의 무지를 아이 탓으로 돌리지만, 실제로 아이의 무지는 어른의 무지 때문에 일어난다.

어른의 무지 중 다른 하나는 아이를 훈육하기에 앞서 자신 먼저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어른들이 잘못된 훈육법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잘못했다고 해서 윽박을 지르거나 짜증을 내는 부모나 교사는 과연 아이의 훈육을 위해서 그리했을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정작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단정하는 어른은 마치 나라를 다스리는 왕처럼 군림하며 아이를 자신이 지배해야 할 백성으로만 보는 격이다.
스펜서는 무엇보다 도덕교육은 자연적 ‘벌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가 개입하지 않고, 잘못의 결과를 통해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잘못을 하면 잔소리를 하거나 그것을 해결해 주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간에 효과적일 뿐 부모의 관심이 사라지면 아이는 잘못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매일 늑장을 부려 친구들을 기다리게 하는 아이라면, 얼른 나갈 준비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지 말고 그것의 자연적 결과, 즉 약속에 늦어 친구들과 놀지 못하는 것으로 벌칙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적 벌칙을 통해 아이는 스스로 잘못을 줄이게 되고, 부모와의 관계 또한 손상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장난감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는 식으로 어른이 대신 벌칙을 받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는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머릿속에 지식을 넣느라 바빠 체력을 단련하지 못하는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이다. 특히 스펜서는 숙녀다운 여성을 강요하며 여학생에게 체육을 금지하던 당시 교육 관행을 지적한다. 그는 무엇보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훌륭한 정신을 갖출 수 있음을 알았다. 또한 당시부터 실시되었던 10시간이 넘어가는 수업시간을 경고한다. 스펜서는 공부를 강요하며 운동을 막는 수업과정을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체조 같이 온 몸을 쓰지도 않을뿐더러 재미도 없는 수업을 도입한 교육의 모순을 지적한다.
한편 스펜서는 잘못된 식단을 경계한다. 당시에는 고기를 지양하는 채식주의가 유행하였는데, 스펜서는 그것이 오히려 아이의 몸을 부실하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지나치게 절제된 식단이 오히려 과식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소식으로 아이에게 먹을 것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아이는 무방비한 상태에서 입에 계속 무언가를 집어넣고 말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식단 위주로 구성하는 것이 아이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교육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19세기 교육과정의 병폐를 안고 살아간다. 아이는 여전히 불행하고, 부모는 여전히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교육은 유행하는 사상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 또한, 인간의 일생을 좌우하기에 좁은 시각으로 살펴서도 안 된다.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막막한가? 그렇다면 이제 스펜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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