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묻힌 거인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 시공사 펴냄

파묻힌 거인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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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5.9.15

페이지

4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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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가 10년 만에 출간한 일곱 번째 장편소설. 이시구로는 등단 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섯 편의 장편과 한 편의 단편집만을 발표할 만큼 매 작품마다 완벽을 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 결과 모든 작품이 굵직한 문학상을 수상하고 부커상에만 네 번이나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역시 10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일곱 번째 장편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평단과 대중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고, 2015년 3월 <파묻힌 거인>은 발표되자마자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주요 언론들은 "올해 이보다 더 중요한 소설은 출간되지 않을 것", "걸작", "놀라움 그 자체", "이전작과 전혀 다르면서도 가장 이시구로다운 작품", "올해의 문학적 사건" 같은 말로 격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에 부응하듯 작품은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위력을 과시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 때 영국으로 이주해 영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시구로는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더 타임스」 선정)에 들 만큼 현대 영미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독보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명성보다는 동양과 서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이시구로만의 낯설고 깊은 상실의 정서다.

이번 작품에서 역시 망각의 안개가 내린 고대 잉글랜드의 평원을 무대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름답고 가슴 아프게 펼쳐진다. 또한 발표하는 작품마다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차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작가답게 이번 작품은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는 판타지 모험담의 틀을 빌려 그 놀라움과 흥미진진함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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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네버

@yhkles

가즈오 이시구로의 첫 책은 <나를 보내지 마>였다. 꽤 오래 전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어릴 적 읽던 SF 이후, 책으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장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푹 빠져 읽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로 접한 작품이 <클라라와 태양>이다. 나이를 먹은 만큼 비슷한 SF여도 너무나 크게 인간성이 다가왔다. 그러니 이제 이 작가의 작품은 무조건 읽는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파주 출판 단지에서 하루를 묵고 다른 서점을 기웃거리다 한 중고 서점에서 발견한 <파묻힌 거인>은 내게 지금까지 읽었던 SF를 빙자한 인간성과 상실에 대한 아픔이 주제겠지~했던 예측을 완전히 깨부쉈다. SF는 커녕 용과 도깨비가 등장하고 아서 왕의 시대를(살짝 뒤이긴 하지만)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영웅 소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노부부 한 쌍이기 때문이다.



브리튼 족 마을에서 안개에 싸인 듯 희미한 기억만으로 서로에게 의지한 채 살아가던 노부부는, 마을을 지나가는 한 여성에게 어떤 말을 들은 이후 자신들의 아들을 방문하기 위해 긴 여정길에 오른다. 하지만 이들은 기억하는 것이 거의 없다. 어딘가에 있을 아들을 향해 그저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그런 와중에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색슨족 마을에서의 사건, 다른 길에서 들은 이야기들 등을 통해 자신들의 기억을 흐리는 원인이 이 근방의 용 케리그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그 용을 죽여야만 기억을 되찾으므로 용을 죽이기 위한 여정으로 바뀌는 듯 하면서 다양한 인물들이 얽히며 마치 영웅 소설인 듯 흘러간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석연치 않은 느낌이 거세지고 결국 작가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망각"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두 사람만의 망각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색슨족과 브리튼족의 싸움에서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 그 사실을 잊게 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한때 위대한 협상가였던 엑슬과 그 부인이 기억하고 기억하지 못함으로써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독자는 천천히 알아가며 과연 "망각"이 나쁘기만 한 것인가! 하는 물음을 제기한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는 대부분 좋은 추억들이다. 물론 가슴에 비수가 꽂히듯 잊혀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곱씹고 곱씹는 타입이 아니어서 거의 잊히듯 한쪽에 숨겨져 있다. 현재에 충실하다 보니 많은 것들을 잊고 지내기도 한다. 때로는 망각이 우리를 나아가게 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들춰서 세세히 따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더 행복한 어느 날을 위해 때로는 잊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잘못한 입장에선 좀 다르다. 그들은 잊지 않고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러니, 다시 생각 해도 역시 가즈오 이시구로는 뛰어난 작가다!

파묻힌 거인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시공사 펴냄

6시간 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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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EGOOL

@gaegool

마치 세계관 속 인물처럼 용의 입김처럼 안개 속을 헤매다 안개가 걷히며 의미를 깨닫게 되는 글.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인간의 삶 속에서 망각의 의미를 헤집는다.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망각으로 인한 전쟁과 사랑이다. 망각으로 인해 증오를 지우고 살아가는 삶이 옳은 것인가, 과거를 상기하여 증오의 연쇄를 지속시킬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질문은 이야기 속에 자연스레 젖어들어 독자들이 서서히 의미를 깨닫고 고민하게끔 만든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를 기억해줘. 네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느꼈던 이 우정과 우리를 기억해줘.”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선사하던 파묻힌 거인이 깨어나고, 늙은 남자는 '연대'의 한 마디를 건넨다. 증오의 연쇄를 희미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것 마냥...
망각의 평화와 증오를 저울질할 새도 없이 뱃사공이 등장하여 사랑의 무게를 잰다. 안개가 걷히더라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가, 모든 행복과 불행을 끌어안은 채 사랑할 수 있는가에 늙은 남자는 뒤돌아보지 않고 물가를 떠난다. 마치 자신이 부인에게 했던 말처럼 망각으로 인해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가 담고자했던 의미가 이야기 전개에 따라 잔잔히 깔려있다, 후반부에 가서야 눈 앞에 선명해지기 시작하면서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책을 놓는 순간 사색에 잠기게 되는 시간도 즐거웠다. 읽으면서 인간의 망각으로 인한 행복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연상케하였다.
독자를 몇 번이고 사색에 잠기게 하는 책은 최고로 즐겁다!

파묻힌 거인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시공사 펴냄

2020년 7월 29일
0
1시15분전님의 프로필 이미지

1시15분전

@aypalsjbmakx

p.120) 당신이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면, 액슬, 그대로 놔둬요. 이 안개가 우리를 뒤덮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기억이든 소중한 것이고 우리는 기억을 꼭 붙들어둬야 해요.

p.235) 액슬과 전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이었더라도 함께 기억할 거예요. 그건 우리에게 소중한 거니까요.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브리튼족 부부이다. 부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과거는 안개에 가려졌다. 가까운 과거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어느날 문득 부부는 아들의 존재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안개때문에 아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만나면 반드시 알아보리라 믿고 둘은 토끼굴을 떠난다. 아들을 찾아 떠난 길에 색슨족들이 사는 마을에 들리게 된다. 한 색슨족에게 지혜로운 수도사에 대해 전해듣고 아들에게 가기 전, 그 수도사를 찾아가기로 한다. 그 마을에서 두 부부는 전사 위스턴과 소년 에드윈을 만나 마을을 함께 떠난다. 지혜로운 수도사 조너스는 기억을 가리는 안개가 암용 케리그의 입김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케리그를 죽여야 안개도 사라진다. 케리그와 안개, 그리고 종족과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5명의 인물들에 의해 펼쳐진다.

책의 중간부분까지 나는 도깨비와 용에 대해 믿지않았다. 그저 그들의 상상속에서 두려움을 만들어 낸 것같았다. 그렇지만 이 책은 판타지가 맞았다. 처음에는 비어트리스처럼 현명한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액슬과 비어트리스의 사랑이 부러웠다. 아들에 대해 알게 되고 나서 얼마 남지 않은 뒷페이지들을 너무 설렁설렁 읽어내린 것같다. 그만큼 허무한 느낌도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의 잔잔한 분위기가 나의 취향을 저격했다. 어디선가 영화로 제작한다면 바로 영화관으로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파묻힌 거인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시공사 펴냄

2019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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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가즈오 이시구로가 10년 만에 출간한 일곱 번째 장편소설. 이시구로는 등단 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섯 편의 장편과 한 편의 단편집만을 발표할 만큼 매 작품마다 완벽을 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 결과 모든 작품이 굵직한 문학상을 수상하고 부커상에만 네 번이나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역시 10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일곱 번째 장편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평단과 대중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고, 2015년 3월 <파묻힌 거인>은 발표되자마자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주요 언론들은 "올해 이보다 더 중요한 소설은 출간되지 않을 것", "걸작", "놀라움 그 자체", "이전작과 전혀 다르면서도 가장 이시구로다운 작품", "올해의 문학적 사건" 같은 말로 격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에 부응하듯 작품은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위력을 과시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 때 영국으로 이주해 영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시구로는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더 타임스」 선정)에 들 만큼 현대 영미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독보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명성보다는 동양과 서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이시구로만의 낯설고 깊은 상실의 정서다.

이번 작품에서 역시 망각의 안개가 내린 고대 잉글랜드의 평원을 무대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름답고 가슴 아프게 펼쳐진다. 또한 발표하는 작품마다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차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작가답게 이번 작품은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는 판타지 모험담의 틀을 빌려 그 놀라움과 흥미진진함을 더하고 있다.

출판사 책 소개

2017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시오 이시구로

“위대한 정서적 힘을 가진 소설들을 통해,
세계와 닿아있다는 우리의 환상 밑의 심연을 드러냈다”
-스웨덴 한림원 노벨문학상 심사평-

망각의 안개가 내린 황량한 평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과거와 기억, 사랑에 관한 잊히지 않을 이야기

“《파묻힌 거인》은 간단하게 범주화할 수 없는 작품이다”
2017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최신작

가즈오 이시구로가 10년 만에 일곱 번째 장편 《파묻힌 거인》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1989년 서른다섯 살 때 발표한 소설 《남아 있는 나날》로 영미권 최고의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일찍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시구로는 등단 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섯 편의 장편과 한 편의 단편집만을 발표할 만큼 매 작품마다 완벽을 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 결과 모든 작품이 굵직한 문학상을 수상하고 부커상에만 네 번이나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역시 10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일곱 번째 장편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평단과 대중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고, 2015년 3월 《파묻힌 거인》은 발표되자마자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주요 언론들은 “올해 이보다 더 중요한 소설은 출간되지 않을 것”(더 타임스), “걸작”(뉴욕 타임스), “놀라움 그 자체”(파이낸셜 타임스), “이전작과 전혀 다르면서도 가장 이시구로다운 작품”(워싱턴 포스트), “올해의 문학적 사건”(NPR) 같은 말로 격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에 부응하듯 작품은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위력을 과시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 때 영국으로 이주해 영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시구로는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더 타임스》 선정)에 들 만큼 현대 영미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독보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명성보다는 동양과 서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이시구로만의 낯설고 깊은 상실의 정서다. 이번 신작에서 역시 망각의 안개가 내린 고대 잉글랜드의 평원을 무대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름답고 가슴 아프게 펼쳐진다. 또한 발표하는 작품마다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차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작가답게 이번 신작은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는 판타지 모험담의 틀을 빌려 그 놀라움과 흥미진진함을 더하고 있다. “피터 잭슨이 영화로 만든다면 더없이 멋질 것”(더 타임스)이라는 바람대로 이 매혹적인 이야기는 할리우드의 실력파 제작자 스콧 루딘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우리 시대 상실을 가장 유려하게 그려내는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그의 가장 이례적인 작품이자 가장 이시구로다운 작품

부커상 수상작가의 판타지 모험담이라는 의외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여전히 이시구로만의 색채를 그대로 간직한 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뒤흔들어놓는다. 역사와 전설이 뒤섞인 시기, 브리튼족과 색슨족이 피비린내 나는 정복 전쟁을 벌인 이후 어디서 기원했는지 알 수 없는 망각의 안개가 평원을 뒤덮어 사람들은 서로의 잔혹했던 과거를 잊은 채 함께 살아가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브리튼족 노부부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서로를 깊이 사랑하지만 이 사랑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혼란스러워한다. 두 사람 모두 망각의 안개를 통해서만 서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함께해온 삶을 전부 잊었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힘들어하며, 과거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자신들이 느끼는 깊은 사랑에도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 여자는 이 땅에 망각의 안개가 덮여 저주가 내렸다는 이야기를 계속했고, 그건 우리 두 사람도 종종 말하던 거였잖아요. 그때 그 여자가 내게 물었어요. ‘함께 나눈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당신과 당신 남편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어떻게 증명해 보일 거예요?’ 그 후로 나는 줄곧 그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 생각을 할 때면 너무 겁이 나요.” _70쪽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잃어버린 기억과 사랑의 증거를 찾기 위해 여행길을 떠나고, 그 여정에서 색슨족 전사 위스턴과 신비로운 소년 에드윈, 아서 왕의 늙은 기사 가웨인 경을 만나 모험을 더해간다. 다정하고 친절한 노부부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둘이 함께하는 것뿐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여행을 통해 과거를 기억해내야 하지만, 예기치 못한 모험들을 통해 문득문득 기억이 돌아올 때마다 이들은 두려움 역시 점점 커지는 것을 깨닫는다.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과연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 것일가? 그리고 마침내 안개가 걷히고 땅에 묻힌 거대한 거인이 깨어날 때, 그들은 지금처럼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기억하려는 자와 잊으려는 자
진정한 사랑과 용서는 어떻게 가능한가

개인의(또한 인류의) 기억과 망각에 대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파묻힌 거인》은 잃어버린 기억과 사랑, 복수와 전쟁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판타지라는 환상적인 무대 위에서 더욱 과감하게 파고들어간다. 액슬과 비어트리스의 베일에 싸인 사랑 이야기와 함께, 망각의 입김을 내뿜는 용을 두고 벌어지는 전사 위스턴과 기사 가웨인 경의 갈등은 기억하려는 자와 잊으려는 자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서로의 원한과 상처를 망각의 안개로 인해 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소설은 “어떤 기억이든 소중한 것이고 우리는 기억을 꼭 붙들어둬야” 한다고 말하는 한편 차라리 “알지 못하게 감춰져 있는 편이 더 좋은 것도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잘못된 일이 그저 잊히기를 바라는 신은 어떤 신”이냐고 강하게 반문하는가 하면 “안개 덕분에 오래된 상처가 아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시구로는 NPR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작품이 유고슬라비아 해체나 르완다 대학살 같은 현대의 역사적 사건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파묻힌 거인》은 그 제목이 품고 있는 거대한 비유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랑의 여러 모습에 대해 탐구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국가와 민족이 전쟁과 상처에 대처하고 회복하는 방식에 관한, 나아가 전후 갈등 해소에 관한 우화로도 읽힐 수 있는 풍성한 작품이다. 용과 요정과 도깨비, 전사와 기사가 등장하는 전형적인 판타지의 틀 속에서 이토록 애틋하고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는, 또한 첨예한 현실의 문제까지 읽어내게 만드는 것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대가의 솜씨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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