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장으로 구성된 현직 경찰관의 직업 에세이 및 사회비판 에세이.
은유 작가의 책이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에 대한 추천으로 리스트 업을 해놓았는데, 새해 독서모임의 첫 책으로 읽게 되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의 책으로,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작가가 일기로 썼던 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경찰관이라는 정형화된 사람의 말과 글이 아니라 여성이면서 현직 경찰관으로, 경찰 공무원도 회사원이라는 문장들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의 직업관과 의식들을 보게 되었다.
1장 산 사람 2장 죽은 사람 3장 남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산 사람
양치기 소녀중에서
솔직히 나도 같은 마음이야, 언니. 어린 나이에 나쁜 것만 배우고 다니는데 제대로 된 인간이 되겠어? 그런데, 그래도, 인간이 안 돼도 괜찮으니까, 그런 식으로 죽지는 마라. 너에게 주어진 목숨 오래오래 술주정하면서 잘 유지해라. 주어진 명만큼 건강하게 살다 가라. 앞으로 허위 신고는 안 하면 좋겠고, 악의적으로 허위 신고를 지속할 경우 형사처벌도 할 거지만, 네가 언제 어디서 신고를 해도 나는 또다시 너를 발 벗고 찾아 나설 거다. 그러니까 부디 잘 살아라. 이를 꽉 물며 되뇌었지. 그리고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살길 바라면서.
; 어쩌면 허위 신고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시켜놓은 칼국수가 다 불어 터져서 먹지 못한 일화로 연결된 이 에피소드는 ‘그런데, 그래도,’라는 접속사 다음의 문장들에서 저자의 직업윤리와 인간적 갈등이 함께 드러나는 지점이다. 혹여나 사건이나 시체로 발견될까 두려워서 미치도록 최선을 다해 수색했지만, 끝내 허탕으로 끝나고 배달된 칼국수를 먹지 못했다는 전언으로 끝난다. 나라면 어땠을까 견주어 보면 저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까. 허탕은 싫지만 신고자가 최악의 상태에 치닫는 상황은 아니었으면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
말로 중에서
법은 문지방을 넘을 수 없다는 말로 ‘그래도 가족이잖아’ 따위의 말로, 가정 안에서 일어난 명백한 범죄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는 게 더 이상 허용돼선 안돼. 우리는 그런 말을 그만두고 가정폭력 피해자, 특히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해결해 주어야만 해. 그것이 아이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덥썩 미래를 맡겨버린 어른들이 해야 할 책임이니까.
; 어른들의 가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인 대부분 부모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현장에서 본 제일 약자고 소외된 아이들의 모습에 주목한다. 선택한 삶이 아닌데 폭력의 삶으로 던져진 아이들의 어떻게 제대로 성장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고 말이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덤덤한 듯하지만 놓치지 않는 시선을 통해서 함께 생각해 본다. 연대라는 것, 공동체가 어떻게 굴러가야 하는지, 또한 시스템의 오류 속에서도 타인에 대한 현장에서의 관점과 태도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당신이라는 존재 중에서
언니, 그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정말 아내로, 한 명의 사람으로 대했다면 한국말부터 배우도록 돕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살게 됐으면 말을 할 줄 알아야 아프면 병원에 가고, 배가 고프면 식당에 가고, 급하면 택시도 타고 할 거 아니야. 사랑하는 사람이 평생 캄캄하게 글자 하나 읽지 못하도록 살게 내버려 두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건 어느 형태로 봐서도 사랑이 아닌데. 결코 사랑이 될 수 없는데.
“나 ... 노력했어... 남편...”이라고 하시더라. 내가 올해 들은 말 중에 가장 슬픈 세 단어였어.
; 결혼이주로 한국에 온 여성이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신고 현장에서 본 상황을 쓴 글이다. 농촌으로 결혼을 통해 온 동남아 여성들의 삶이라는 것이 학대와 폭력, 매매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다큐나 시골을 배경으로 한 결혼 이민여성과 남성의 예능을 방송을 통해서 볼 때도, 결혼 이주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인식이 화면 밖으로도 전해졌다. 작가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이 사회에서 적응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말을 배우지 못한 채, 글을 익히지 못한 채 타국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 건지. 매매혼이라고 느낀 건 그래서 그렇다. 돈을 주고 사 온 노동력과 성욕을 해소하는 물건 같은 존재. 그런 인식이 나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확인된다는 점 또한 씁쓸한 일이다.
가장 슬픈 세 단어라는 마지막 문장이 그래서 더 슬픈 왜곡된 결혼이주 여성의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천원짜리 인생 중에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죄를 짓지 않으며 자신이 쓸 수 있는 능력으로 버는 돈의 가치는 ‘천한 직업’ 정도의 천한 말로 폄하할 수 없음을, 삶의 현장 한 가운데에 놓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거야.
좋은 차를 타고 다녀도 그 차에서 나오는 매연만큼의 더러움을 선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 위를 전전해도 고고한 양심과 태도까지 길 위에 두고 다니진 않았던 사람이 있었어.
;택시 기사와의 일화를 통해서 귀천에 대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좋은 책을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아닌 듯, 일에 있어서 천하고 귀함의 기준이나 구별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누군가에게 천원짜리 인생이라고 단언하듯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강늡때기 중에서
교육이 주는 힘은 알 수 없어도, 교육이 왜 존재하는지 알 것 같던 밤이었어. 적어도 세상을 깜깜하게만 살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할 수 있는 말이 많아지고 볼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자신의 발걸음을 옮길 곳이 넓어지도록 하기 위한 원동력. 결국 민들레 홀씨를 날려주는 것처럼 나라는 존재를 멀리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뒤에서 받쳐주는 바람과 같은 역할. 그게 교육의 중요성이며 존재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
언니, 언니라도 알아줬으면 해. 아는 것을 넘어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얼굴이 네모난 편인, ‘강늡때기’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의 존재를 말이야.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다. 이른바 무적자 출생자라는 할머니의 삶을 알게 되면서 교육에 대한 작가의 견해에 대해서 이런 상황에서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발화하는 자세가 현재의 여성들의 삶의 태도의 경지를 보았다고나 할까. 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교육에 대한 인식이 슬픈 현실에서, 타인의 슬픔을 연민으로만 끝나지 않는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진폭이 보인다. 지식이, 앎이, 교육이 결코 자랑하거나 젠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지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어쩌면 너무 진부한, 그러나 진부하지만은 않는 교육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2장 죽은 사람
나는 사냥개나 미친개가 아니다 중에서
잊혔고, 잊히고 있는 수많은 현장 영웅들과 지금 이 시각에도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경찰관들. 하늘의 별을 다 헤아린대도 현장 영웅들의 숫자는 결코 헤아릴 수 없을 텐데, 그 사람들 모두 미친개였으며 몽둥이로 다스려야만 하는 존재였던 걸까, 언니. 경찰청 인터넷 사이트의 ‘순직경찰관추모’웹페이지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수많은 순직 경찰관은 무얼 위해서 죽었던 걸까.
나는, 우리는, 사냥개나 미친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찰관일 뿐이야. 그리고 나는 나와 내 동료, 선배, 후배들의 최종 목적지가 죽음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 업무 중 죽음을 맞이했는데, 순직이 인정되지 않아서 유가족이 직접 증명해야 하는 시스템인 곳에서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잘 수행해 낼 수 있을까? 경찰관의 공권력이 공권력으로서의 정당한 수행이나 수용이 되지 않을 때, 그 조직의 조직원을 어떤 마음이 들까? 작가는 경찰관으로서 느낀 현장의 불합리나 허점을 말하지만, 꼭 경찰관이 아닐지라도 이런 시스템의 허점과 불합리는 꽤 자주 마주치지 않는가. 경찰 공무원이라는 기대와 요구만 있을 뿐, 그들의 수행능력과 현실에서의 오는 갭과 허점은 보지 못했던 게 더 많다. 비난은 쉽지만, 잘못된 것에 대한 지적뿐만 아니라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수행되는지를 지켜보고 확인해 보아야 하지 않은가. 잘못된 관행이나 절차도 시정되어 안착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뿐더러 작가는 경찰관 역시 회사원이라는 말로 경찰관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경찰 공무원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과 봉사를 당연한 것으로 사회적 인식이 있다는 걸 지적한다.
경찰이기 전에 사람이고, 사람이라는 인식 아래 경찰관으로서의 정체성이 함께 성립된다는 말로 이해된다.
3장 남은 사람
그들이라는 파편 중에서
민원이라는, 그들이 던진 말의 파편에 맞은 나는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지만 경찰이라는 이유로, 세금을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아프다는 소리를 낼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했어. 그들은 자신의 혀가 날카로운 칼인 줄도 모르고 나에게 휘둘렀고, 난 그 칼을 능숙하게 받아낼 실력도, 갖춰 입은 갑옷도 없어서 무척이나 많이 베였어. 언니, 누군가는 경찰 월급에 욕먹는 값이 포함되어 있다고들 해.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억대 연봉자가 아닐까? 어쩌면 웬만한 기업의 순이익만큼 벌지도 몰라.
;공무원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라고 할까.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으니까 이 정도는 해도 돼 라는 갑질의 행태들은 사람에 대한 생각, 존중이 배제된 채 대하는 태도나 말들이다. 가장 힘든 업무가 민원인 상대라는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 공무원인 친구도 가장 싫고 어려운 업무가 민원 업무라고 한다. 소위 진상 혹은 갑질 민원인은 서로의 입장이 바뀌는 순간이 오면 생각이 좀 달라질까?
내가 너에게 돈을 주니 이런 무례도 된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어느 직종에서도 다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욕바지로서의 연봉은 억대 연봉자가 되어야 한다는 문장에서 얼마나 많은 민원에 시달리는지가 짐작된다.
비겁함을 배운다 중에서
이런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겁함을 택한 나의 동료, 선배, 그리고 나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참 괴로워. 현장에서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 주춤하는 발걸음, 회피하게 되는 시선을 언제쯤 벗어던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
경찰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비겁함이야. 구조가 바뀌어야 해. 사회가, 법이 나서서 경찰관의 얼굴에 쓰인 비겁함이란 가면을 하나씩 벗겨줘야만 해. 부디 피해자의 얼굴에서 눈물을 거두고 미소를 선물해 줄 수 있는 경찰관이 되도록, 나의 후배 경찰관들은 비겁함이란 태도를 배울 일이 없도록 도와줘. 그게 비겁한 나의 비겁한 부탁이야.
; 혼자서는 바꿀 수 없는 조직 구조의 문제점을 피해자의 얼굴을 통해서 또렷이 깨닫는 작가는 비겁함이라 키워드를 내세워 꽤 통렬하게 전한다. 몸담고 있는 조직의 문제점에 쓴소리를 한다는 건 아직은 애정이 있기에,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을 소리 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맺는 글중에서
때때로 과거를 정리해 주어야 앞으로 채워나갈 현재도 더 많아진다는 걸.
;아직은 젊음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작가의 마음결과 생각들, 삶의 태도들이 우울하고 힘든 현실 속에서도 대단한 희망은 아닐지라도 타인에 대한 연민과 자신의 삶에 대한 성장을 놓지 않는 모습이 경찰관으로서의 직업적 딜레마와 인권을 인정받고 일하고 싶은 젊은 세대의 에세이로 의미있게 읽었다. 자신의 조직의 문제를 비난 혹은 비판 이후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의 구조의 문제를 개선되기 바라는 마음이 전해진다. 또한 앞으로를 나아가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맺는 글에서 낙관의 한 빛을 본다.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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