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넘은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먹고사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이 벌고 많이 쓰는 방법이 하나고,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방법이 다른 하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드라는 수많은 문제가 더 많이 욕망하는 삶을 추구해서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후자의 삶을 택했다. (p.63)
삶의 가치로서는 너무 멋진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한 것이 소위 “장사꾼”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많이 팔려는 컨셉”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장사꾼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적게 벌고 적게 쓰겠다? 나 역시 “사장님이 미쳤어요” 마케팅에 콧방귀도 안 뀌는 사람인지라 『공씨 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를 읽기 전이였다면 인용한 문장까지 비웃었을지도 모르겠다.
『공씨 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는 수오서재에서 가치를 가진 브랜드를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공씨 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는 『매뉴팩트 커피, 커피 하는 마음』과 함께 작고 단단한 마음”이라는 시리즈명 아래 태어난 책으로 살짝 작은 판형, 감각적인 컬러를 지녔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낸 이들의 이야기지만, 돈을 많이 버는 노하우를 공개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돈을 덜 벌어도 브랜드와 스스로를 하나의 선상에 둔 사람들, 삶의 가치를 일에 연결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편이 적합하겠다.
『공씨 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를 읽다 보니 그는 “연지곤지 사과”의 아버지(?)였다.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과채류에 이런저런 이름을 붙여 파는 사람들이 별로라 생각하기에 (못난이라고 이름 붙였을 뿐, 오히려 싸지 않은 곳이 꽤 많다) 그도 그저 그런 장사꾼이라 생각하려는데, “아무리 긍정적인 워딩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특별하게 보는 시선 자체가 이미 차별이었음을 뒤늦게 자각했다. (p.25)”라는 문장을 읽으며 사람이 매 순간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이상적이듯, 브랜드도 이렇게 생각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과오를 해결할 방식을 고민하는 브랜드임을 깨닫고 나자, 『공씨 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의 이야기들이 더욱 진솔하게 느껴지고, 어쩌면 브랜드도 사람의 사는 것과 비슷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했다.
더불어 『공씨 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를 읽으며, 내가 어쭙잖게 고민했던 것들에 대한 답을 얻기도 했다. 사실 나는 소문난 과일과 채소 마니아. (쌀보다 많은 양을 소비하는 편이다) 원래 우리 집은 토마토가 1년 내내 있는 집이었는데,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 너무 “단” 토마토가 세상을 지배했기 때문. (그에 앞서 우리는 캠벨을 잃었다) 조금 더 잘 팔린다면 우후죽순 같은 품종만을 재배하고, 그 방식이 건강하지 않더라도 쫓는 이들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먹거리를 잃어간다. 또한 “제철”의 개념이 점점 무너지며, 경쟁에서 져버린 몇몇은 만나기조차 어려워졌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소비자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고 유통업자가 한다니. 놀라움에 버무려진 몇몇 궁금증들이 답을 찾았고, 우리의 농가, 아니 나아가 사회가 처한 현실들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점점 세상은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자극적인 맛에 집중한다. 그래서 점점 자연 그대로의 것, 원래대로의 맛을 만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 세상에서 『공씨 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는 어떤 의미에서는 브레이크일지도 모른다. 제한 없는 다량판매를 막고, 과도한 방식으로 하는 마케팅에 딴지를 거는. 그러나 그 브레이크 덕분에 우리는 농민과 소비자, 노동자와 자연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지킬 수 있지 않나.
『공씨 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를 읽으며, 또 한 번, “결국 세상은 소신이 있는 이들이 지킨다”라는 생각에 확인 도장을 받은 기분이다.
공씨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
공석진 지음
수오서재 펴냄
1
📘25#7 내가 그를 죽였다
2025.02.22~03.04
⏩️내내 알약 이야기를 했는데, 알약은 핵심이 아님
✅줄거리
유명 각본가 호다카 마코토는 자신의 입지와 세력을 늘리려고 떠오르고 있는 여류 시인 간바야시 미와코와 결혼을 약속한다. 그런데 결혼식 날 호다카는 신랑 행진을 출발하려다 죽고 만다. 독약을 먹은 것인데, 용의자는 신부와 부적절한 관계에 있었던 신부의 오빠, 호다카의 노예나 다름없는 매니저, 그리고 호다카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는 신부의 담당 편집자로 추려진다. 실제 그들은 호다카에 대한 악의를 가지고 살인을 하고자 마음을 품었다.
✅느낀점
<유성의 인연>시리즈를 먼저 읽었던 나로서는... 이런 불쾌한 세팅에 흠칫 놀랐다. 안하무인에 무책임하고 사람을 이용하기만 하는 호다카, 심지어 근친상간이라니...
그래서인지 좀... 각자가 살인의 동기가 있다보니 그의 죽음이 약간은 가벼이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앞선 시리즈와 달리 화자가 계속 달라지며 그 사람의 시선에서 소설이 전개되고, 일본 이름이 길고 익숙치 않다보니 처음에는 따라가는 게 어려워 책장을 앞으로 넘겼다 뒤로 넘겼다 하면서 보았다.ㅋㅋㅋㅋ
그리고 결국 또 범인이 누군지 파악하지 못했다. 급기야 나는 혹시 미와코?ㅋㅋㅋㅋㅋ 이러고 있었다. +'전처의 지문이 뭐 어떻다는 거야🤯!!'
결국 호다카는 결혼준비를 위해 살림 처분과 같은 개인적인 잡무도 스루가에게 다 맡겨버렸기 때문에 스루가는 커플 필케이스 하나를 통째로 바꿔버린 것이었다.
아휴 어렵다! 이런 작고 사소한 떡밥을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들지 모르겠다. 앞으로 남은 후속 시리즈가 많은데 어쩜 이렇게 다작을 할 수 있을까! 새삼 대단하고, 또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아 감사하다ㅋㅋㅋㅋ
*운신: 몸을 움직임 / 어떤 일이나 행동을 편한 마음으로 자유롭게 함
*회람판: 일본의 문화 중 하나로 맨션 지자체의 중요한 결정이나 청소와 같은 연례행사를 모집하는데 참가할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도장을 찍거나 사인을 하는 명부. 시골 지역으로 갈수록 이 문화가 더 심해진다고 한다.
*해치: 실내의 벽면과 칸막이로 만들어진 개구부
*경대: 거울을 버티어 세워 그 아래 화장품 따위를 넣는 서랍을 갖춰 만든 가구
*모닝코트: 남자가 낮 동안 입는 서양식 예복. (남성 정장인 프록코트 대용)
*경시청: 일본 도쿄도를 관할하는 경찰 본부 (서울경찰청과 대응됨)
*초로: 노년에 접어드는 나이
*독경: 불경을 소리 내어 읽어나 욈 (장례)
*근영: 근래에 찍은 인물사진
*습골: 시신을 화장한 후 뼈를 모으는 일
*봉의: 봉황(수컷) / 어수룩해서 이용해 먹기 좋은 사람을 이르는 말
*자기현시욕: 자신만 특별히 주목받고자 자신만 내세우는 욕망
*네글리제: 속이 비치면서 긴 드레스 가운 (거의 잠옷으로 입음)
*횡액: 뜻밖에 닥쳐오는 불행
*초칠일: 매달 초하룻날부터 헤아려 일곱째 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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