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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인 책
출간일
2013.3.13
페이지
344쪽
이럴 때 추천!
떠나고 싶을 때 , 답답할 때 , 인생이 재미 없을 때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 힐링이 필요할 때 읽으면 좋아요.
상세 정보
삶의 방향을 정하고 싶은 이들에게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정치인에서 자유인으로 돌아와 내놓은 유시민의 첫 번째 책. 정치인 유시민에 가려져 있었던 자연인 유시민의 사람과 자연, 사회와 역사에 대한 생각을 온전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쓰는 작업은 그에게 자신의 미래를 새롭게 고민하고 설계하는 과정이었으며, 그는 책의 결론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렸다. 바로 자기다운 삶,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기로 한 것이다.
유시민은 이 책에서 자신이 살아온 지난 시기의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경험과 그에 대한 생각을 단편적으로 드러냈다.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의 일부터 대학 시절 야학 교사 활동을 거쳐 소위 ‘통합진보당 사태’와 18대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어떤 감정과 생각이 자신의 삶을 지배했는지 이야기한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그만두기로 한 이유,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고민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유인이 되어 어떤 삶을 살려고 하는지 솔직하고 소박하게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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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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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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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에서 자유인으로 돌아와 내놓은 유시민의 첫 번째 책. 정치인 유시민에 가려져 있었던 자연인 유시민의 사람과 자연, 사회와 역사에 대한 생각을 온전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쓰는 작업은 그에게 자신의 미래를 새롭게 고민하고 설계하는 과정이었으며, 그는 책의 결론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렸다. 바로 자기다운 삶,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기로 한 것이다.
유시민은 이 책에서 자신이 살아온 지난 시기의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경험과 그에 대한 생각을 단편적으로 드러냈다.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의 일부터 대학 시절 야학 교사 활동을 거쳐 소위 ‘통합진보당 사태’와 18대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어떤 감정과 생각이 자신의 삶을 지배했는지 이야기한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그만두기로 한 이유,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고민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유인이 되어 어떤 삶을 살려고 하는지 솔직하고 소박하게 토로한다.
출판사 책 소개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멘붕 사회에 해독제로 쓰일 책!
정치인에서 자유인으로 돌아와 내놓은 첫 번째 책!
1. 어느 때보다 절박해진 고민,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은가? 의미 있는 삶, 성공하는 인생의 비결은 무엇인가? 품격 있는 인생, 행복한 삶에는 어떤 것이 필요한가? 이것은 독립한 인격체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이미 예감한 중년들도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 내가 나름대로 찾은 대답을 이야기했다. 삶의 기쁨, 존재의 의미, 인생의 품격을 찾으려고 고민하는 모든 분들의 건투를 빈다. 그 무엇도 의미 있는 삶을 찾으려고 분투하는 그대들을 막아서지 못할 것이다.(p.11)
세상의 변화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하면서 한 걸음 앞서 시대와 삶의 과제를 고민해 왔던 유시민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신간을 들고 정치시장을 떠나 지식시장으로 복귀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느 시대 어떤 사람도 비껴가지 않는 것이지만, 이른바 ‘힐링 열풍’이 대세를 형성할 만큼 상처받은 사람이 많은 ‘멘붕의 시대’에 자기다운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 고민이라고 그는 믿는다.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p.56)
‘왜 자살하지 않는가?’ 카뮈의 질문에 나는 대답한다. 가슴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너무 좋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어오를 것 같은 일이 있다.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미안한 사람들이 있다. 설렘과 황홀, 그리움, 사랑의 느낌…. 이런 것들이 살아있음을 기쁘게 만든다. 나는 더 즐겁게 일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더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미래의 어느 날이나 피안(彼岸)의 세상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 떠나는 것이야 서두를 필요가 없다. 더 일할 수도 더 놀 수도 누군가를 더 사랑할 수도 타인과 손잡을 수도 없게 되었을 때, 그때 조금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면 된다.”(p.56)
이 책에서 유시민은 도덕을 설교하거나 당위를 주장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로세우기 위한 사상이나 이론을 설파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드러내 놓고 비판하거나 위로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자기 자신의 삶을 냉정하게 성찰하면서 인생의 기쁨과 아픔,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삶과 죽음, 개인과 사회, 자유와 공동선, 진보와 보수, 신념과 관용, 욕망과 품격, 사랑과 책임, 열정과 재능 등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물질적 정신적 요소들을 나름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여러 관념들을 깊게 들여다보면서 인간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찬찬히 되짚어 본다.
2. 정치인에서 자유인으로 돌아와 내놓은 첫 번째 책!
대중적 글쓰기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유시민이 스스로 가장 자기답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정치인 유시민에 가려져 있었던 자연인 유시민 지식인 유시민의 사람과 자연, 사회와 역사에 대한 생각을 온전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쓰는 작업은 그에게 자신의 미래를 새롭게 고민하고 설계하는 과정이었으며, 그는 책의 결론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렸다. 자기다운 삶,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기로 한 것이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오래 덮어두었던 내 자신의 내면을 직시할 기회를 가졌고 그것을 드러낼 용기를 냈다.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감추거나 꾸미는 습관과 결별했다. 내 자신의 욕망을 더 긍정적으로 대하게 되었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삶을 얽어맸던 관념의 속박을 풀어버렸다. 원래의 나, 내가 되고 싶었던 나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렇게 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기로 마음먹었다.(p.10)
이 책에서 유시민은 자신이 살아온 지난 시기의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경험과 그에 대한 생각을 단편적으로 드러냈다.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의 일부터 대학 시절 야학 교사 활동을 거쳐 소위 ‘통합진보당 사태’와 18대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어떤 감정과 생각이 자신의 삶을 지배했는지 이야기한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그만두기로 한 이유,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고민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유인이 되어 어떤 삶을 살려고 하는지 솔직하고 소박하게 토로한다.
이젠 정치적 자기 검열 없이 정직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정치의 일상이 요구하는 비루함을 참고 견디는 삶에서 벗어나 일상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 야수의 탐욕과 싸우면서 황폐해진 내면을 추스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아니라 내면이 의미와 기쁨으로 충만한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정치적 욕망의 화신이라는 세상의 비난에 맞서 내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싸움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지 의심한다. 정치를 하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시간은 언제나 부족했다. 세상의 모든 비극과 불의에 대해서 내 몫의 책임이 없는지 살펴야 하는 게 괴로웠다. 왕의 심기를 살피는 신민(臣民)처럼, 변덕스러운 여론을 언제나 최고의 진리로 받들어야 하는 정치인의 직업윤리가 너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위선으로 보인다.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 삶의 존엄을 해치는 것이 정말 훌륭한 일인지 모르겠다.(p.195)
원래 정치 그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어 정치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던가. 세상을 더 좋게 바꾸려면 정치가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 ‘아래’와 정치 ‘너머’의 변화가 없다면 정치도 더는 바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직업정치를 떠나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기쁘게 연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눈앞을 가리고 있던 두터운 먹구름이 걷혔다. 해방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p.195)
이 책은 진심으로 ‘나다운 인생’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또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이며 격려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저자 유시민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3.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저자 유시민은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핵심적인 네 가지 요소를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로 정리했다. 개인적 욕망을 충족하면서 즐기며 사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은 더 좋은 사회제도와 생활환경이 삶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만큼이나 온전치 못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일과 놀이와 사랑만으로는 인생을 다 채우지 못한다. 그것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온전하게 느끼지 못하며, 그것만으로는 누릴 가치가 있는 행복을 다 누릴 수 없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어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사용해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인생이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인생이다.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나는 ‘연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가 이루어내는 아름답고 유쾌한 변화를 ‘진보’라고 이해한다.
<…> 진보의 낡은 고정관념을 버릴 때가 왔다. <…> 진보주의는 만인의 것이다. 누구든 유전적으로 무관한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을 기꺼이 내놓은 자발성을 발휘한다면 그 사람이 진보주의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p.249)
일, 놀이, 사랑은 ‘삶의 위대한 세 영역’이다. 흔히들 그것만으로 훌륭한 삶,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과 놀이, 사랑만큼이나 본질적인 삶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연대(solidarity)이다. 타인과의 연대 또는 사회적 연대는 단순한 도덕적 당위가 아니다. 타인과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연대에 대한 욕망은 일, 놀이, 사랑에 대한 욕망과 마찬가지로 자연이 인간에게 준 본성이라고 유시민은 주장한다. 이기심과 이타심은 단순히 대립하는 감정이 아니다. 우리는 둘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 유시민은 ‘연대’와 ‘진보주의’를 독특한 방식으로 정의(定議)한다.
나와 유전적으로 무관한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력, 그들의 복지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자기의 사적 자원을 기꺼이 내놓으려는 자발성, 이 모두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재능이며 본능이다. 이런 이타적 본성, 공감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나는 연대라고 부른다. 연대는 일, 놀이, 사랑과 더불어 삶을 의미 있고 존엄하고 품격 있게 만드는 제4원소이다.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연대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지금 이곳의 행복이 그들의 것이리라!”(p.263~264)
왜 연대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논리 이전에 마음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불편한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비용이 들고 고생이 되는데도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하고 당당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은 문명과 교육의 산물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발현이다.(p.263)
4. 진보적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철학
유시민은 지식인으로서도 정치인으로서도 매우 논쟁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진보자유주의자’임을 자처하는 보기 드문 지식인이다. 공병호, 복거일 등 공개적으로 자유주의를 주창하는 유명한 지식인들은 대체로 보수적이며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에 속한다. 홍세화, 박노자 등 진보적 ‘파워라이터’들은 자유주의와 진보주의를 화합하기 어려운 이질적 철학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도 유시민은 자유주의와 진보주의가 결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용어를 쓰자면 그는 ‘다윈주의 좌파’라고 할 수도 있다. 그는 인간과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역사학, 철학, 경제학, 사회학과 같은 인문사회과학과 함께 생물학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를 평가하는 데서까지 생물학 용어를 사용한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진보의 거듭되는 패배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것은 선의 패배나 악의 승리가 아니다. 진화적으로 익숙한 것이 새로운 것을 이긴 수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그는 전두환처럼 할 수 없었다. 1992년 보수진영으로 투항한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그는 전임자보다 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치를 했다. 2007년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를 개인적 ‘수익 모델’로 만들었지만 민주주의 정치체제 그 자체까지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2012년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그의 정책 공약은 5년 전 낙선했던 진보진영 대통령 후보의 공약보다 더 진보적이었다. 진보 세력은 선거에 졌을 뿐 역사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옳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니 문재인 대통령을 보고 싶었던 시민들이 ‘멘붕’에는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p.258~259)
이 책에서도 유시민은 자유주의자답게 모든 문제에 대해서 개인을 사유와 행위의 주체로 놓고 생각한다. 모든 형태의 집단주의적 강제를 배격한다. 국가든 사회든 관습이든 종교든 이념이든, 인간이 그 무엇인가에 예속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철학적 사유의 기초로 삼는 그는 스스로 원하는 삶을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고 탄압하려는 모든 종류의 전체주의 사상과 비타협적으로 싸운다. 공산주의자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 루주와 종교개혁가 장 칼뱅의 전체주의 독재를 날카롭게 비판한 대목들은 매우 전투적인 자유주의자인 저자 유시민의 사상적 면모를 새삼 확인해 준다.
무시무시한 폭력을 동원해 공포정치를 조직화한 지성적 금욕주의자 칼뱅의 동기는 고상했다. 그가 모든 ‘죄인’에 대해 냉혹했던 것은 악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는 도덕적 품성을 길러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계속되는 형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포정치를 밀고나가는 것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부여한 의무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신학적 정치적 견해에는 오류가 없다고 확신했다. 장 칼뱅은 현란한 신학 이론으로 무장한 광신자였다. 타인의 고통에 감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채 수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죽였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정신과 심리학자들은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장 자크 루소가 나타나 칼뱅의 공포정치를 완전히 끝내는 사상의 혁명을 이룰 때까지 제네바 시민들은 무려 2백 년 동안 자유와 개성과 다양성이 사라진 무덤 속에서 삶의 의미와 환희를 빼앗긴 채 살아야 했다.(p.275)
폴 포트는 그리 길지 않았던 집권 기간 동안 당시 7백만 명 정도였던 캄보디아 국민 가운데 최소한 150만 명을 죽음의 심연으로 몰아넣었다. 정확한 통계가 없으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치일 뿐이다. ‘킬링필드’라는 이름이 붙은 크메르 루즈 정권의 대학살은 단순히 많은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이상 또는 강철 같은 신념을 폭력적 방법과 결합함으로써 일어난 국가범죄였다. 1975년 미국의 지원을 받던 군부정권을 전복하고 정권을 장악한 크메르 루주는 완전히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인간을 ‘개조’하려 했다. 이를 위해 사유 재산과 가족, 자본주의적 기업, 자본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형태의 문화 양식을 철저히 파괴했다. ‘인간 개조’를 방해한다고 판단하면 누구든 다 죽였다. 일차적인 숙청 대상은 예전 정권의 권력기구에 종사했던 관료, 공무원, 경찰,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관련된 기업인과 기술자들, 그리고 의사와 교사 등 중산층 지식인들이었다. 안경을 쓰거나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총살당한 사람도 숱하게 많았다. 폴 포트는 도시를 자본주의적 착취와 타락의 심장이라고 판단했다. 크메르 루주 정권은 1백만이 넘던 수도 프놈펜 주민들을 모두 농촌 집단 농장으로 이주시켰다. 환자와 노인, 어린이와 임산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농촌에는 생활 기반시설이 없었다. 아무 준비 없는 대규모 강제 이주는 질병과 굶주림으로 인한 떼죽음으로 이어졌다. 도시는 텅 비어 폐허가 되었고 농촌은 ‘킬링필드’로 변했다.(p.26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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