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우리 아이 어떻게 키울까요?

박진경 지음 | 도서출CUP(씨유피) 펴냄

하나님 우리 아이 어떻게 키울까요? (기독교세계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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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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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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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의 바이블이라고 할까... 여러 책을 읽어봤지만, 이 책은 손꼽을만하다. 내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 최고의 양육법임을 깨닫게 해준다.




서문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여 다 훌륭한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근원은 오늘날 교육을 비롯한 사회의 전 분야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인본주의라는 사상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자녀 양육, 어떻게 할까?

자녀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즉 복된 선물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부모의 사랑을 줄 수 있는 최고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본능뿐 아니라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인간은 피동적으로 사랑을 받을 때보다도 사랑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을 때 삶의 의미를 느낀다. 사랑하는 대상이 있을 때 사람은 행복감에 젖을뿐 아니라 삶이 풍요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아이가 독립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자라도록 하기보다 엄마의 치마폭에 언제까지나 보호하고 싶어하고 자기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고 자녀가 사랑스러운 나머지 어렵고 힘든 일뿐 아니라 해야 할 일까지도 대신해 주는 부모들이 문제다.

이 시대는 참으로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때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의 영혼과 삶을 악한 자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양육해야 할 때이다.

이 세대는 존경심과 권위를 상실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겉치레의 존경심과 억압적인 권위는 배격되어야 할 것이지만 마땅히 가져야 할 존경심과 올바른 권위를 인정하는 태도는 교육을 능가하게 하는 내적인 영향력을 지닌 힘이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 특기교육이나 지능개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이에게 어떤 습관을 길러주고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게 해 주며 어떤 가치관을 가르치느냐 하는 것이다. 부모로서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인생의 참된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자녀에게서 바람직하지 못한 면을 발견하고 크게 낙담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일수록 염려에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자녀의 잘못을 고쳐주고 바르게 인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동시에 소망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속적 인본주의에 근거한 인본주의 교육의 문제는 바로 이처럼 인간이 가진 능력을 최대로 계발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할 뿐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여러 가지 측면 중에서 지적 능력 발달과 아이가 느끼는 감정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지는 못한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행동이라면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부모의 가치관을 자녀에게 강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앙을 비롯한 일체의 가치를 자녀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인본주의란 본래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한 것인데 사회와 인간의 사고가 세속화되면서 하나님을 배격하고 모든 일을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상이 되었다.

종래의 교육이 억압과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율과 자유만을 강조하는 것은 그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위험한 일이다. 인간은 이끌어줌이 없이 자율에만 맡기어도 될 만큼 선하지 않으며, 자율 없이 이끌고 지시하는 것에만 의존하는 기계적이고 피동적인 존재가 되어서도 안된다.





2/ 그리스도인의 자녀 교육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에 대해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자녀의 생명과 생애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뜻, 즉 자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며 그들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양육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또한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관리하는 자이므로 주인의 소유에 대하여 함부로 취급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함부로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자기의 목적을 위하여 자녀를 이용해서도 안되고 부당한 짐을 지워서도 안된다.

유대인들은 세계적으로 교육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교육에 있어서 도덕, 즉 하나님의 뜻대로 선을 행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이 어린 자녀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첫 번째 목적은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한다.

흔히 가정교육은 어머니의 책임이고 지식 교육은 학교의 책임이며 신앙교육은 교회가 담당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발달해 가는 학문 세계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학교나 책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하더라도 신앙은 삶 자체이기 때문에 자녀들과 삶을 같이 하는 부모를 통해 이루어질 때 가장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자녀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모 자신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

자녀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잠언 1장 7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며 이를 멸시하는 자를 가리켜 미련하다고 한다. 다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를 지키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은 경외해야 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명령과 법도를 지키도록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세 번째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함을 가르쳐야 한다.





3/ 사랑을 느끼게 하라

에베소서 6장 4절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의 삶의 모범과 인내하고 관용하는 사랑이라고 요약될 것이다.

자녀들에게 부모의 마음과 삶을 읽을 수 있는 이성과 감성이 있으므로 그것을 굳이 말로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가끔 “엄마는 너를 사랑해.”라고 속삭여 주거나 “아빠에게 가장 귀중한 보물은 바로 너희들이다.”라고 말해준다면 자녀들이 더없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녀들의 행복감이 물질에서부터 출발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자녀들이 느끼는 진정한 행복감은 욕구 만족으로 인해 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느낌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희생적인 사랑이란 자녀의 복되고 보람 있는 사람을 위해서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지 부모의 야심이나 욕구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이 부모 자신의 일로 지나치게 바쁠 때 그들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비록 자기들과 충분한 시간을 같이 있어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모가 자기들의 교육과 가정을 위해 애쓰는 것을 아는 자녀들은 결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의 부족으로 인한 공허감을 느끼지 않는다.

요즘에는 생일이라고 하여 비싼 선물을 받는 날로 오해하며 자라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보다는 아이의 생일을 온 가족이 함께 축하해 주고 그 아이가 태어난 것이 부모나 다른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축복이 되었는지를 말해준다면 자녀들은 가족의 사랑을 느끼며 행복해할 것이다.

자녀를 양육하다 보면 책망하고 훈계를 해야 할 때가 있다. 때로 벌을 주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도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사랑하기 때문에 책망하고 훈계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인정해 주고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고 격려해 주는 것은 아이가 자신의 삶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힘을 길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심어주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조건 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흠뻑 느끼게 하는 일이다.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을 통해 자신이 귀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혹 아이가 칭찬받을 만한 어떤 능력이나 소질을 타고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인생을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자녀들에게 그들이 귀중한 존재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각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이며 부모에게 있어서는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가정의 분위기는 자녀들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행복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체로 밝고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다. 가정은 자라나는 자녀들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부모다.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있어 기본이 되는 것은 첫째 부모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다. 부모의 불평 소리는 자녀에게 불평하는 습관을 만들어 준다. 다음으로 부부 사이의 관계다. 부부 사이의 관계가 원만하면 자녀들은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자라게 된다. 셋째로는 형제애이다. 형제애를 해치는데 으뜸이 되는 것이 바로 부모의 편애이다. 넷째로 가족들이 서로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이다.





4/ 격노케 하지 말라

부모에게 분노하는 자녀들은 그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다. 비뚤게 자라거나 반항하는 이이들 뒤에는 반드시 그들을 분노하게 한 부모가 있다.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잔소리와 꾸중을 많이 들을 때 낙심한다. 자녀들은 소리 지르는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다. 적당한 시기에 한 가지만 지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지적할 때 주의할 점은 잘못한 행동 그 자체를 두고 나무라도록 해야지 인격까지 송두리째 비난하면 안 된다. 비난과 징계, 잔소리와 훈계는 구분되어야 한다. 잘못을 지적하거나 꾸중할 때는 간단하면서도 엄하게 말하고 아이가 알아들었다고 생각되면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이들은 부모가 간섭하거나 의심할 때보다 자기를 신뢰해 줄 때 오히려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으며 동시에 자기를 신뢰해 주는 부모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아이들은 편애를 하거나 남과 불리하게 비교할 때 분노한다. 상처와 낙심만이 남을 뿐이다.

아이들 싸움에 끼어들었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둘 사이에 잘잘못을 가리기 위한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아이에게 똑같이 벌을 주도록 해야 한다. 누구의 잘못으로 싸움이 일어났든지 간에 서로의 인격을 모독하는 언어를 사용하거나 폭력을 사용한 싸움 자체는 잘못이기 때문에 벌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벌을 준 후 “왜 벌섰는지 이유를 아니?”라는 질문으로 아이의 반성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너희들 왜 싸웠니?”하는 질문 등으로 다시 싸움을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보통 어린아이들은 자기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급한 부모들은 자녀가 하리라고 예상되는 말을 대신해 준다. 설혹 그 말이 자녀의 마음을 꼭 그대로 나타내주는 말이라 하더라도 아이들은 자신이 스스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저지당했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사 표현이 서투르더라도 자기가 표현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경청해 주는 부모에게서 사랑을 느낀다.

평소에 부모들이 자녀들의 말을 경청하며 자녀들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그들도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

자녀들을 훈계하고 다스리는 방법으로 벌을 주거나 매를 들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매를 대는 것은 극히 신중해야 한다. 성경에도 채찍은 아이에게 효과가 있다고 가르치는데 유대인 사회에서 만 13세에 성인식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적어도 만 13세 이후에는 아이들에게 매를 대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나이와 상관없이,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꾸지람하는 것보다 잘한 일이 있을 때 칭찬해 주는 방법을 통해서 자녀들의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효과적인 대화법은 두 가지 기본적인 원리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원리는 관심 있게 들어주는 태도이다. 둘째 원리는 화를 내지 않고 말하는 것이다.





5/ 마땅히 할 일을 가르치라

아이에게 지나치게 좋고 화려한 옷을 해 주는 것은 부모의 절제되지 못한 소비 성향 때문이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자녀들이 원하는 것이 곧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하고 아이가 그 말을 들은 척 만 척해도 그대로 두는 것을 본다. “XX야, 그런 짓을 하면 못쓴다.” 하고 말하고는 실제로는 아이를 그대로 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는 옳지 않은 일을 해도 문제 될 것이 없으니 그대로 해도 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아이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계속하는 것은 아이의 책임이 아니라 부모의 책임이다.

벌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올바르고 선한 습관을 가지도록 하기 위하여 훈련하는 것이다. 훈련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이 자녀들의 삶을 위하여 선하게 작용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녀들이 분명히 규칙을 어기거나 부모의 말을 거역했는데도 무심코 지나쳐 버린다면 그들은 규칙이나 부모의 말,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게 된다. 부모의 단호한 태도는 아이를 그릇된 길에서 구하는 최선의 예방책이 될 것이다.

훈계와 사랑은 상반되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병행되어야 할 동반자적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임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예부터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집의 자녀를 후레자식이라고 했는데, 이는 아버지의 엄한 권위 밑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배운 데 없이 제멋대로 자라서 버릇이 없는 아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의 가정교육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 부재의 교육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흔히 아버지가 직장 일로 인해 밖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가정에서 자녀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적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된다. 자녀들 앞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면 비록 아버지가 자녀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더라도 아버지 부재의 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 아버지의 권위는 결국 부모의 권위를 말한다. 부부는 자녀들 앞에서 서로 상대방의 권위를 세워 줌으로써 자녀를 바로 교육할 수 있다.

왜 아버지의 권위가 그렇게 중요할까?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 혹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는 자녀들 곁에서 자녀들을 바로잡아 주고 인도하는 역할을 해야지 자녀로 하여금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겨 접근하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매를 사용하는 중요한 원칙은 부모와 아이가 다 매를 귀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매를 통해서 자녀의 올바른 삶을 귀중히 여기는 부모의 마음이 전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징계는 반드시 사랑을 전제로 한 것이어야 한다.

아이의 장점을 인정해 주고 칭찬거리가 있으면 자주 칭찬해 주고 아이의 소질을 무시한 것이 없는지 살펴서 격려해 주어야 한다. 아이가 남의 물건을 가져왔을 때는 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돌려주고 오너라.”라고 말한 다음 돌려주고 온 것을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아이를 다그치는 것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이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훈계나 훈시가 아니다. 아이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느낌으로써 부모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게 되면 부모가 싫어하는 행동은 차차 없어질 것이다.

예로부터 삼 대 부자가 없다는 말은 결국 자녀에게 돈을 관리하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매일 용돈을 주는 방법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적절한 계기에 일주일 혹은 한 달 단위의 용돈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아직 어린아이에게 한 달 단위의 용돈을 줄 때는 군것질 혹은 작은 장난감들을 살 수 있는 돈과 간단한 학용품을 사야 할 돈을 구분 지어 주는 것이 좋다. 힘들더라도 용돈 사용은 반드시 훈련해야 할 부분이다.





6/ 대답할 것을 예비하라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있는가?’, 나는 자녀에게 가르치는 바를 스스로도 모범적으로 행하고 있는가?’ 혹은 ‘나의 삶은 나의 신앙고백과 일치하는가?’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며 예비하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스스로의 삶이 성숙될 뿐 아니라 사려 깊은 부모가 될 수 있다.

성교육에 대해서 더 중요시해야 할 부분은 성의 도덕성 문제와 책임감에 대한 문제이다.

지능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자신의 욕심을 고집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아이에게 주신 은사를 발견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공부는 왜 해야 하나요?" 하고 질문하는 아이에게는 성적을 올리기 위해, 남보다 잘 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지성을 사용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세상을 잘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좋은 재능을 주시고, 그 재능을 잘 개발해서 이웃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훌륭하게 사는 사람이 되길 기대하고 계시는데 네가 어린 시절에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않고 그저 시간만 보내고 있으면 될까?" 하는 내용을 담은 대답을 해 주면 좋을 것이다.





7/ 자녀 양육의 모범

우리에게는 요게벳과 같은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귀중히 여기도록 가르치는 어머니와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결코 믿음의 반열에서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맺음말

앞서 말한 모든 원리들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신의 삶의 모범이다. 자녀 양육에 관하여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진 부모라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할 만한 신앙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그 지식은 무용지물인 셈이다.

항상 말씀에 비추어 부모로서의 자신을 돌아보며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게 자라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은혜로 우리 자녀들을 자라나게 하실 것이다.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부모들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의 부족함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완벽한 부모를 기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그분의 세심한 은혜를 구하는 부모가 되기를 원하실 것이다.

하나님 우리 아이 어떻게 키울까요?

박진경 지음
도서출CUP(씨유피) 펴냄

2021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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