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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인 책
출간일
2015.7.31
페이지
368쪽
상세 정보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시리즈의 네 번째 책. 강준만 교수의 메시지의 한결같다. “자신의 확신을 의심하라!”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우리 인간이 똑똑함과는 거리가 먼 감정적·습관적 판단에 얼마나 취약하고 허약한가 하는 걸 잘 말해준다. 즉, 우리가 독선을 범해선 안 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닫자는 것이다.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이 마비되니, 정치 아닌 다른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한계와 모자람을 인정하자고 꼬드기는 것이다. 그런 우회적 설득 시도를 정치에 접목시킨다면,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될 것이다.
한국 정치의 개혁과 사회적 진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똑똑함과 확신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 세력을 쓰레기로 매도하면서 면책 심리를 키우고 반대 세력을 악마화하는 ‘증오 마케팅’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버릇을 버리는 게 왜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또 정치적 판단을 할 때 인간의 뇌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 영역이 작동한다는 걸 인정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소통과 타협과 화합의 길로 갈 수 있게끔 노력해보자는 것이다.
상세정보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시리즈의 네 번째 책. 강준만 교수의 메시지의 한결같다. “자신의 확신을 의심하라!”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우리 인간이 똑똑함과는 거리가 먼 감정적·습관적 판단에 얼마나 취약하고 허약한가 하는 걸 잘 말해준다. 즉, 우리가 독선을 범해선 안 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닫자는 것이다.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이 마비되니, 정치 아닌 다른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한계와 모자람을 인정하자고 꼬드기는 것이다. 그런 우회적 설득 시도를 정치에 접목시킨다면,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될 것이다.
한국 정치의 개혁과 사회적 진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똑똑함과 확신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 세력을 쓰레기로 매도하면서 면책 심리를 키우고 반대 세력을 악마화하는 ‘증오 마케팅’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버릇을 버리는 게 왜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또 정치적 판단을 할 때 인간의 뇌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 영역이 작동한다는 걸 인정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소통과 타협과 화합의 길로 갈 수 있게끔 노력해보자는 것이다.
출판사 책 소개
왜 ‘독선적인 사람’의 똑똑함은 독약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대체적으로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국민이 똑똑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똑똑해진다고 해서 나라가 반드시 잘되는 것일까? 혹시 ‘똑똑해진 사람들’이 자신의 똑똑함을 과신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견해나 생각은 무시하고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는 독선에 빠질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독선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아무리 똑똑해도 ‘싸가지 없는 인간’이라며 상종하길 꺼린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를 대할 땐 특정 당파 집단의 일원이 되거나 익명성을 얻는 순간 전혀 다른 인간으로 태어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어떤 이념이나 당파성의 옹호자가 되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경멸감이나 적대감을 드러낸다. 그런 토양에서 정치인이나 논객의 인기는 반대편을 조롱하거나 아프게 만드는 언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언론은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자세로 그런 증오의 언어를 미주알고주알 열심히 보도하는 ‘증오 상업주의’에 탐닉한다. 지지자들의 환호와 언론의 관심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논쟁이란 상처를 주고받는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젠가 고종석이 잘 지적했듯이, 그런 게임에선 아픔을 느끼는 능력이 가장 모자란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독선은 이성일까? 아니다. 감성이다. 독선적인 사람의 똑똑함은 독약이 될 수 있다. 소통과 타협과 화합을 원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성은 감성의 노예”라고 했는데, 이 말은 갈등이라는 밥을 먹고사는 정치에선 진리에 가깝다. 감성의 지배를 받는 이성의 용량을 아무리 키워봐야 나라가 똑똑해지는 데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한국은 ‘독선 사회’가 되었는가?
거시적으로 보자면, ‘독선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한국 특유의 사회문화적 동질성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게 나쁘기만 했던 건 아니라는 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한국 사회는 다양성을 박해하면서 획일성을 예찬해왔기 때문에 전 국민이 ‘전쟁 같은 삶’을 살면서 “잘 살아보세”라는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압축성장이 가능했다. 성공과 행복의 기준이 다양했다면, 우리가 그렇게 미친 듯이 일하고 공부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다름’의 불인정은 물질이 아닌 정신 영역에서는 재앙을 몰고 왔다. 우리는 각기 다른 생각과 소통하고 타협하면서 화합하는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
물론 독재자들의 독선만이 독야청청했던 독재정권 때문이다. 폭력적 독선에 대항하는 길은 신념적 독선 이외엔 없었다. “싸우면서 닮아간다”는 말은 사실상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독선을 강요당했다”는 걸 표현한 것이지만, 한 번 형성된 체질은 세상이 바뀌어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온갖 갈등과 분란과 이전투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후유증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세월이 해결해주겠지만, 그렇게 넋 놓고 기다리다간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니, 우리는 소통과 타협과 화합을 모색하기 위해 애를 써야만 한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아닌, 독선이다.
왜 ‘순수’와 ‘정치’의 만남은 문제가 되는가?
독선이 가장 문제가 되는 영역은 정치다. 왜 그런가? 순수주의자들은 가능성을 추구하는 정치를 이상을 추구하는 종교처럼 대하기 때문에 타협을 거부하는 극단적 강경파로 활약하기 마련이다. 어느 집단에서건 이런 강경파는 소수이지만 지배력을 행사한다. 그들의 강점은 뜨거운 정열과 헌신이기 때문이다. 순수는 독선과 동전의 양면 관계를 이룬다. 순수주의자들은 자신의 순수를 무기와 명분으로 삼아 정쟁을 종교 전쟁으로 몰고 간다. 정치를 혐오하고 저주하는 유권자들은 그런 명쾌한 접근법에 환호한다.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정치에 등을 돌린 가운데 그런 소수의 전사들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정치권 역시 그런 ‘시장 논리’에 굴복한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10대 0’의 정치다.
여야 싸움에서건 같은 당내 싸움에서건,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당성을 10, 상대편의 정당성을 0이라고 주장하는 고질병을 앓고 있다. 진실은 7대 3이거나 6대 4이거나 5대 5일 텐데도 언행은 ‘10대 0’에 근거한 과장과 과격과 극단을 치닫는다. 그래야 열성 지지자들의 피를 끓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또는 그렇게 해온 체질 때문이겠지만, 이게 나중엔 부메랑이 되어 타협의 발목을 잡는다. 양쪽 진영 모두에서 타협을 야합이라고 욕해대니 죽으나 사나 출구가 없는 격돌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순수와 정치가 만나면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날이 갈수록 우리 언론의 당파성은 심화되고 있다. 날이 갈수록 분열로 온 사회가 찢어지는 ‘사이버발칸화(cyber-balkanization)’는 극단을 치닫고 있다. 상대편을 향해 서로 독선적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대지만, 피차 역지사지를 하지 않는 독선 공방 속에서 모든 건 권력 쟁탈의 의지로 환원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확신’을 의심하라!
이 책은 강준만 교수가 『감정 독재: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2013),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2』(2014), 『생각의 문법: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3』(2015)에 이어 내놓는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시리즈의 4번째에 해당한다. 강준만 교수의 메시지의 한결같다. “자신의 확신을 의심하라!”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우리 인간이 똑똑함과는 거리가 먼 감정적·습관적 판단에 얼마나 취약하고 허약한가 하는 걸 잘 말해준다. 즉, 우리가 독선을 범해선 안 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닫자는 것이다.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이 마비되니, 정치 아닌 다른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한계와 모자람을 인정하자고 꼬드기는 것이다. 그런 우회적 설득 시도를 정치에 접목시킨다면,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될 것이다.
한국 정치의 개혁과 사회적 진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똑똑함과 확신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 세력을 쓰레기로 매도하면서 면책 심리를 키우고 반대 세력을 악마화하는 ‘증오 마케팅’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버릇을 버리는 게 왜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또 정치적 판단을 할 때 인간의 뇌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 영역이 작동한다는 걸 인정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소통과 타협과 화합의 길로 갈 수 있게끔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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