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 창비 펴냄

토성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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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1.8.5

페이지

360쪽

상세 정보

"이보다 더 강렬한 작품은 상상하기 힘들다"(런던 옵저버), "흠잡을 데 없는 걸작"(슈피겔), "자연과 인간, 그리고 문학사에 대한 놀라운 문서"(월스트리트 저널) 등 수많은 찬사를 받은 W. G. 제발트의 대표작. 2001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하기까지 네 편의 소설을 발표한 제발트는 죽음 이후 날이 갈수록 폭넓은 독자와 추종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1995년에 발표된 그의 세번째 소설 <토성의 고리>는 고대 왕국이 있던 영국 동남부 지방을 여행한 후 쓴 문화고고학적인 여행기 같은 작품으로 가슴을 죄어오는 진지한 비가의 어조로 문화와 문명,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종횡무진 넘나든다. 여행한 지역의 인물과 사건, 사물에 얽힌 과거와 지금의 현재를 차분하게 직시하면서 매혹적인 사유를 펼친다.

1992년 8월 소설의 화자는 고대왕국이 있던 영국의 동남부지방(노퍽과 써퍽 주)을 여행한다. 이 순례의 발단은 화자 자신의 내면적 공허였지만 목적의식적인 여행이 아니었던 이 여정은 자주 샛길과 미로로 접어들고 어긋난다. 그러나 이런 이탈 덕택에 화자는 이미 발생했거나 장차 도래할 대재앙의 숱한 증인들을 만나게 된다.

화자는 곳곳에서 부딪치게 되는, 제국주의의 열광이 남겨놓은 유대인이나 노예화된 민족과 문명의 흐름에서 비껴난 아웃사이더 등의 인간집단, 자본주의의 열기가 남겨놓은 폐허의 상징들―파괴된 숲, 청어과 누에처럼 멸종되고 희생된 생물, 버려진 공장, 몰락한 도시―이 마치 "미래의 어떤 대재앙으로 파멸한 문명의 잔해"인 것처럼 여겨져 먹먹한 전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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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리당의나귀님의 프로필 이미지

뷔리당의나귀

@bwiridangeuinagui

분명 두번째 읽는 책인데 신기할 정도로 새로웠다.
요즘 나에게 독서는 손으로 모래를 움켜쥐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잔뜩 움켜잡은 것 같지만 어느새 손아귀에서 대부분 빠져나가고 남는 것은 그야말로 한줌도 안된다.

여행기 형식의 소설이라고 하지만, 허구적 요소보다는 상당부분 실제 역사 또는 작가 스스로의 경험을 반영한 현실적인 여행기로 보인다.
지적이고 진지하다.
희생당한 또는 스스로 몰락한 인간 문명은 물론이고 동물, 식물에 대한 파괴에도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 책의 제목인 토성의 고리에 대한 설명이 소설 시작 전에 기재되어 있는데 내용이 흥미롭다.
토성의 고리는 적도 둘레를 원형궤도에 따라 공전하는 얼음결정과, 짐작건대 유성체의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과거에는 토성의 달이었던 것이 행성에 너무 가까이 위치하여 그 기조력으로 파괴된 결과 남게된 파편들인 것으로 짐작된다(로슈 한계: 위성이 모행성의 기조력에 부서지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한계 거리)

제목과 연관되는 주제의 문제의식이 줄거리 내내 여러가지 다양한 변주를 통해 제기된다.

(인상 깊은 문구)
-겨울의 해는 빛이 얼마나 재 속에서 사라지는지, 밤이 얼마나 재빨리 우리를 에워싸는지 보여준다. 한 시간, 한 시간이 계산서에 더해진다. 시간조차도 늙는다. 피라미드, 개선문, 오벨리스크 따위는 녹아내리는 얼음으로 만든 탑에 불과하다
-나는 이 낚시꾼들이 그들의 주장처럼 민어가 지나가거나 가자미가 수면으로 떠오를 때, 혹은 대구가 해변을 향해 헤엄칠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렇게 밤낮으로 해변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뒤로 하고 앞에는 오로지 공허만 남아 있는 장소에 머물고 싶을 따름일 것이다
-비행기가 해변을 지나 녹색 젤리처럼 펼쳐진 바다로 접어들 무렵, 나는 이런 고도에서 우리 자신을 내려다보면 우리가 우리의 목적과 결말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것이 없는지가 끔찍하리만큼 분명해진다는 생각을 했다
-목숨이 붙어 있던 아이들 중 많은 아이들은 배가 고픈 나머지 목에 걸고 있던, 개인 정보가 적힌 마분지 판을 씹어 먹었으니, 결국 극도의 절망 속에서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지워버렸던 것이다
-인간 문명 전체는 애당초부터 매시간 더 강렬해지는 불꽃일 뿐이었으며, 이 불꽃이 어느정도까지 더 강렬해질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서서히 사그라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장에 직접 있었고, 자신이 본 것을 다시 한번 되살려내는 연대기 기록자는 자신을 파괴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자기 몸에 새겨넣는다

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창비 펴냄

2018년 11월 29일
0
이정복님의 프로필 이미지

이정복

@v7gbvnml3yz9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는 책

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창비 펴냄

읽고싶어요
2015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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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강렬한 작품은 상상하기 힘들다"(런던 옵저버), "흠잡을 데 없는 걸작"(슈피겔), "자연과 인간, 그리고 문학사에 대한 놀라운 문서"(월스트리트 저널) 등 수많은 찬사를 받은 W. G. 제발트의 대표작. 2001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하기까지 네 편의 소설을 발표한 제발트는 죽음 이후 날이 갈수록 폭넓은 독자와 추종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1995년에 발표된 그의 세번째 소설 <토성의 고리>는 고대 왕국이 있던 영국 동남부 지방을 여행한 후 쓴 문화고고학적인 여행기 같은 작품으로 가슴을 죄어오는 진지한 비가의 어조로 문화와 문명,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종횡무진 넘나든다. 여행한 지역의 인물과 사건, 사물에 얽힌 과거와 지금의 현재를 차분하게 직시하면서 매혹적인 사유를 펼친다.

1992년 8월 소설의 화자는 고대왕국이 있던 영국의 동남부지방(노퍽과 써퍽 주)을 여행한다. 이 순례의 발단은 화자 자신의 내면적 공허였지만 목적의식적인 여행이 아니었던 이 여정은 자주 샛길과 미로로 접어들고 어긋난다. 그러나 이런 이탈 덕택에 화자는 이미 발생했거나 장차 도래할 대재앙의 숱한 증인들을 만나게 된다.

화자는 곳곳에서 부딪치게 되는, 제국주의의 열광이 남겨놓은 유대인이나 노예화된 민족과 문명의 흐름에서 비껴난 아웃사이더 등의 인간집단, 자본주의의 열기가 남겨놓은 폐허의 상징들―파괴된 숲, 청어과 누에처럼 멸종되고 희생된 생물, 버려진 공장, 몰락한 도시―이 마치 "미래의 어떤 대재앙으로 파멸한 문명의 잔해"인 것처럼 여겨져 먹먹한 전율을 느낀다.

출판사 책 소개

독창적이고 낯설고 아름답다!
매혹적인 사유로 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W. G. 제발트의 대표작


W. G. 제발트는 “현대 작가 중 신비에 싸인, 가장 숭고한 작가 중 한 명”(뉴 리퍼블릭 북 리뷰), “현재 가장 많이 토론되고 있는 독일 작가”(독일어판 위키피디아)로 독일 출신 작가 중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숭배자와 연구자를 거느린 작가일 것이다. 2001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하기까지 그는 몇권의 에쎄이집과 네 권의 소설,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이외 수많은 에쎄이와 독일어권 문학을 다루는 탁월하고 논쟁적인 논문들을 발표했는데,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네 권의 소설이었다. 제발트의 소설들은 해외 여러 작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먼저 영미권에서 크게 주목받았으며 현재도 많은 문학비평에서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출세작이 된 두번째 소설『이민자들』, 마지막 소설이 된『아우스터리츠』에 이어 이번에 출간된『토성의 고리』(Die Ringe des Saturn, 1995)는 영국 동부지방을 여행한 후 쓴 문화고고학적 여행기 같은 작품으로 그의 세번째 소설이다. “인류의 역사소설”(월스트리트 저널), “먼 거리를 이동하는 정신적 여행을 기록한 작품 중 최고작”(타임즈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작품에서 제발트는 가슴을 죄어오는 진지한 비가의 어조로 문화와 문명,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심원하고 냉철한 성찰과 자각으로 잊히지 않을 감동을 준다.

흠잡을 데 없는 작품. 제발트는 거의 환각처럼 고양되는 지각능력을 가졌다.―슈피겔
제발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토성의 고리』에도 사실과 허구는 교묘히 섞여 있어 그 경계가 분명치 않으며 소설 속 화자 또한 여러모로 제발트 자신과 겹친다. ‘영국 순례’라는 부제처럼 1992년 8월 소설의 화자는 고대왕국이 있던 영국의 동남부지방(노퍽과 써퍽 주)을 여행한다. 이 순례의 발단은 화자 자신의 내면적 공허였지만 목적의식적인 여행이 아니었던 이 여정은 자주 샛길과 미로로 접어들고 어긋난다. 그러나 이런 이탈 덕택에 화자는 이미 발생했거나 장차 도래할 대재앙의 숱한 증인들을 만나게 된다. 화자는 곳곳에서 부딪치게 되는, 제국주의의 열광이 남겨놓은 유대인이나 노예화된 민족과 문명의 흐름에서 비껴난 아웃사이더 등의 인간집단, 자본주의의 열기가 남겨놓은 폐허의 상징들―파괴된 숲, 청어과 누에처럼 멸종되고 희생된 생물, 버려진 공장, 몰락한 도시―이 마치 “미래의 어떤 대재앙으로 파멸한 문명의 잔해”인 것처럼 여겨져 먹먹한 전율을 느낀다.

폐허에 가까이 갈수록 망자들의 신비로운 섬에 와 있다는 생각은 점점 사라졌고, 그 대신 미래의 어떤 대재앙으로 파멸한 우리 자신의 문명의 잔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본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가 남겨놓은 금속과 기계의 쓰레기더미 사이를 돌아다니는 미래의 이방인처럼 나 또한 어떤 존재들이 여기서 살고 일했는지 (…)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그날 내가 실제로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를 모른다.(278~79면)

파괴되어버린 과거의 잔존물들은 끝없이 이어지고 이런 여정이 계속될수록 화자는 “한 시대 전체가 끝나는 건 한순간의 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마치 “신의 거대한 도시에 있는, 지구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처럼 느꼈던 화자는 슬픔과 우울을 관통하고 몸의 마비까지 겪게 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역사를 희생자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미 청소년 시절에 전쟁과 유대인 학살에 대한 부모 세대의 침묵에 분노했던 제발트는 작품을 통해 역사 속의 고통과 파괴를 다가올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으로 간주하는 일체의 담론에 근원적인 이의를 제기하며 전체의 미래를 위해 내세워지는 낙관론 자체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역사 속의 파괴와 고통은 어떤 약속으로도 보상될 수 없고 인간 문명의 역사는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대재앙이라는 것이다.

유럽에서 선사시대에 화재에서 살아남은 숲의 나무들은 나중에 주택이나 배, 혹은 철을 녹이는 데 필요한 엄청난 양의 목탄을 만들기 위해 벌목되었다. (…) 이제 거대한 불길은 대서양의 반대편에서 타올랐다.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너른 땅 브라질의 이름이 프랑스어로 목탄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고등식물의 목탄화, 모든 가연성 물질들의 지속적인 연소는 지구상에서 인간을 확산시키는 동력이다. (…) 우리가 고안해낸 기계들은 우리의 신체나 우리의 동경처럼 서서히 작열하는 심장을 갖고 있다. 인간 문명 전체는 애당초부터 매시간 더 강렬해지는 불꽃일 뿐이었으며, 이 불꽃이 어느 정도까지 더 강렬해질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서서히 사그라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장은 우리의 도시들이 빛을 발하고, 아직은 불이 번져간다.(199~200면)

내면의 공허를 몰아내기 위해 시작된 이 순례는 결국 화자에게 구원은커녕 역사의 종말론적인 흐름을 뚜렷이 각인시키며 초라한 잔해, 우울한 잔영만 남긴다. 여행이 끝나도 후유증은 이어지고 결국 화자는 마비상태에 빠져 입원하기에 이른다.

글로 그려낸, 더없이 아름답고 애잔한 역사화 같은 작품
작품에서 기약된 미래가 없다는 통찰을 안겨준 몰락의 현장들은 지상의 모든 것의 덧없음을 보여준다.『토성의 고리』에는 화자 혹은 작가 자신의 영혼적 동지라고 할 만한 17세기의 인물 토머스 브라운이 등장하는데 1658년에 그가 출판한 『유골단지』(Hydriotaphia)라는 책이 상세히 소개된다. 이 책은 당시에 노퍽 근처의 들판에서 발견된 단지에 남아 있는 화장(火葬)의 잔해들을 꼼꼼히 관찰한 책으로 브라운은 “세월의 흐름을 이겨낸 이런 물건들이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예로부터 해골과 모레시계는 ‘덧없음’(Vanitas)을 상징하는데 토머스 브라운이 유골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 작품 속 화자가 토머스 브라운의 유골을 추척하는 것은 이 덧없음이 이 작품의 주요한 주제임을 보여준다.
‘토성의 고리’라는 제목도 마찬가지다. 서양에서 토성은 멜랑꼴리와 시간을 상징하는 천체이다. 시간은 덧없음을 깨닫게 하며 이 덧없음이 낳은 정조가 멜랑꼴리다. 제발트가 서두에 인용한 글에서도 볼 수 있듯 토성을 공전하고 있는 것은 토성의 기조력으로 인해 파괴된 달의 잔해들이며 그 고리는 시간의 힘에 의해 파괴된 파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파괴의 불가항력적인 성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그 폐허의 고리는 지구의 그 어떤 것도 몰락의 운명을 피할 수 없고 인간 또한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없으며 영원히 남아 공전할 수밖에 없는 토성의 고리처럼 지구상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때때로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사는 데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들이고, 삶이란 끝없이 진행되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259면)

하지만 화자의 슬픔과 우울은 결코 흐릿하고 피상적인 감상이나 무기력한 냉소로 빠지지 않는다. 제발트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시각과 엄격한 자세로 현실을 성찰해나간다. “파멸을 이겨낸 것들에서 비밀스런 환생능력의 흔적을 찾고자” 한 토머스 브라운이 파멸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환생하는 애벌레와 나방의 능력에 매료된 것처럼 화자의 눈에 누에의 변태(變態)는 덧없음과 우울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처럼 보인다. ‘텍스트(text)’라는 말이 ‘섬유’를 뜻하는 textus에서 유래되었듯이 제발트는 누에가 실을 잣듯 글쓰기를 통해 사물을 시간의 흐름에서 구원해내고자 한다. “난국들로만 이루어진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과정에서 파괴된 채 잊혀져가는 것들을 복원해내고 우리 앞에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제발트가 이 작품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소명인 것이다.

이 시대의 성찰을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정전(正典) 같은 작품
총 10장으로 구성된『토성의 고리』는 제발트의 전작들처럼 사진이 삽입되어 있다. 작가 본인이 직접 모은 이 사진들은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제발트의 글에 사실성을 강조해준다. 하지만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가 어디까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인지 면밀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제발트는 현실과 허구, 문학과 자전적인 글, 실제 사진과 허구의 사진, 실제 인물과 허구 인물들을 뒤섞어놓아 작품 전체에 존재론적인 불안을 부여하고 있으며 역사적 지식을 구성하는 지각의 틀 자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자 한다.
지금은 해양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선원열람실에서 발견한 제1차 세계대전 화보집의 사진들에서 촉발되어 70만명의 남자와 여자, 아이들이 소름끼칠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된 야세노바크 수용소, 우스타샤 수용소에 대한 문서를 추척하고 기록한 과정을 담은 4장의 글과 사진에서 우리는 전쟁과 대학살의 흔적에 가시지 않는 섬뜩한 전율을 느낀다.

목숨이 붙어 있던 아이들 중 많은 아이들은 배가 고픈 나머지 목에 걸고 있던, 개인정보가 적힌 마분지 판을 씹어 먹었으니, 결국 극도의 절망 속에서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지워버렸던 것이다. (…) 그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기억의 그림자들이 여전히 계속 배회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120~21면)

1916년 런던의 감옥에서 반역죄로 처형당한 로저 케이스먼트는 당시 유럽의 제국들이 열을 올리던 아프리카 식민지사업의 허황됨을 고발한 사람이었다. 조셉 콘래드가 “타락해가는 유럽인들 가운데 오직 올곧은 사람으로 여겼다”고 알려진 케이스먼트를 그린 5장의 이야기에서는 케이스먼트가 처형당하기까지의 과정과 함께 콘래드의 유년시절, 부모를 잃고 선원이 되어 항해생활을 다니던 중 로우스토프트에 머물렀던 몇달간의 생활, 이곳에서 처음 영어를 접했고 이후 그의 작품 『어둠의 심연』의 배경이 된 콩고에서의 생활도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6장에서는 원래 중국 황제에게 납품할 목적으로 제작되었으나 영국동부철도의 지선에 투입된 철도 차량의 흔적을 추적하며 서태후를 둘러싼 중국의 19세기 후반의 역사를 흥미롭게 서술함과 동시에 던위치에 머물던 문인 앨저넌 스윈번과 워츠 던턴의 생활을 소개하며 중세 유럽에서 중요한 항구로 꼽히던 던위치의 과거와 몇차례 재앙과 개발로 폐허가 되어버린 오늘날의 모습이 교차된다.
8장은 600년 이상 아일랜드에 거주하다 영국의 써퍽으로 이주한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가문의 역사와 아일랜드의 구석진 곳에서 외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애슈버리 가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1940년대초 군사연구소들이 수많은 비밀 프로젝트들을 시험한 주요지역이었으나 지금은 가장 낙후된 곳이 되어버린 오포드 해안지역 이야기를 담았으며, 10장에서는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지배하던 시절 페르시아 승려 두 명이 누에알을 대나무관에 숨겨 중국에서 비밀리에 가져온 이래 마치 민족사업처럼 반강제적으로 그리스, 이딸리아,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전역으로 퍼진 양잠업의 흥망성쇠를 훑고 지금은 몰락한, 산업혁명 시기 영국의 비단 제조공장과 그 직조공들의 애환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각 장마다 그 지역의 인물과 사건, 사물에 얽힌 과거와 지금의 현재를 냉철하고 차분하게 직시하는 이 작품은 한 장의 사진보다 더 강렬하고 오래 남을 풍경을 선사한다.『토성의 고리』는 이 시대를 성찰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정전(正典) 같은 작품이며 글로 직조해낸, 먹먹한 전율을 주는, 더없이 아름답고 애잔한 역사화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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