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지음 | 은행나무 펴냄

우리는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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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인 책

출간일

2005.11.18

페이지

399쪽

이럴 때 추천!

행복할 때 , 달달한 로맨스가 필요할 때 읽으면 좋아요.

상세 정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등 남녀 간의 연애심리를 독특한 방식으로 분석한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알랭 드 보통. 그의 사랑과 인간 관계 시리즈 3부작 가운데 남은 한 편이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인다. 예전에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것을 공경희의 번역으로 새롭게 선보이게 된 것. 원제 'The Romantic Movement'.

이 책 또한 다양한 현학적 분석과 세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연애의 탄생에서 성장, 결말까지의 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해 나간다.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주인공 '앨리스'와 그녀의 남자친구 에릭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이상적 사랑이 현실 속에서 성숙해가는 모습을 재미있고 유쾌한 필치로 그려나간다.

말랑한 러브 스토리에 플라톤, 탈레스, 헤겔 등 철학대가들의 사상과 오스카 와일드, D.H. 로렌스 등 문학가들의 정의, 앤디 워홀의 예술적 의미가 절묘하게 녹아든 또 한 편의 '알랭 드 보통 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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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언급한 게시물25

솔님의 프로필 이미지

@solevgl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독서모임 책으로 읽게 되었다. 서점에서 구매를하는데 몇장 넘기다 보통의 3부작은 다 읽게 될 것 같은 예감에 결국 3권을 다 구매했고 1부를 읽자마자 2부를 바로 들었다. 우리는 사랑일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말은 연애의 초입에 드는 생각이라면 ‘우리는 사랑일까’의 경우 연애의 중반에 강력히 드는 생각이다. 처음엔 뭣도모르고 좋아죽다가 다른점들이 보이며 우리가 과연 사랑일까 라는 질문이 드는 그 시기. 1부가 남자의 입장이고 2부가 여자의 입장이라는데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시작 차이는 이렇게도 다른것인가.

그래서인지 나는 2부작인 이 책을 더욱 재밌게 읽었다. 앨리스가 냉소도 지겨워질 때 만난 남자를 운명으로 생각할때도 그모습이 나같았으며 만나는도중 헤어질만한 순간에도 운명론으로 그 의심을 누르는 장면도, 본인을 아끼지만 아끼지 못하는 모순적인 모습에도.

앨리스는 결국 본인을 아끼는 길을 택한다. 과연 그 길이 정답일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정답일 선택이었을테다. 나또한 그런 선택을 해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점점 발전하며 점점 무감각해지며 어찌저찌 나는 또 사랑을 하고 있다.

이 책은 계속 읽게 될 것 같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처럼.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지음
은행나무 펴냄

2023년 4월 12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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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석

@gimjunseok

관계란 스스로 균형을 잡고자 하는 원초적이고 잔혹한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방정식으로 나타났을 때, 두 사람이 함께 하려면 양쪽에서 40단위[이것을 x라고 한다]에 이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자.
엘리스 20x + 에릭 20x = 관계 40x
40x라는 값은 관계가 지속된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잔인한 점은 총량을 양쪽이 똑같이 지불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양쪽이 20단위씩 노력을 내놓는 관계가 가장 합리적이겠지만, 원래 한쪽이 상대방 보다 더 많이 노력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떻게, 또는 왜 그럴까? 덜 노력하는 편은 어떻게 정해질까? 상대가 얼마나 신경 쓰느냐를 측정하는 몹시 냉소적인 감각에 따라서 그렇게 된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감정을 재고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은 얼마일까? 상대가 거부하고 사랑이 끝나기 직전까지 얼마만큼 밀어붙일 수 있을까?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지음
은행나무 펴냄

👍 달달한 로맨스가 필요할 때 추천!
2022년 3월 27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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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

@hoonhoon

냉소도 지겹고 본인과 타인의 결점만 찾아내는 것도 지겨워진 그녀는, 다른 사람을 향한 감정에 휩싸이고 싶었다. (8)

수지는 식사나 영화 관람, 강변 산책 등 자신의 낭만적인 만남에 동거인 친구를 데려갔다. … 속으로는 박탈감에 시달리면서도 친구를 위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집에서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 전자레인지에 데운 인스턴트 생선이나 인스턴트 닭고기 음식 접시를 무릎에 놓고, 전쟁으로 유린된 지역의 운명에 관심 있는 척 뉴스를 보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 편이 더 좋았다.
그녀는 이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애인이 없으니 오히려 사람이 필요치 않은 듯이 느껴졌다. (11)

불만이 있다면 자신이 타인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뿐이었다. (13)

배가 고픈지, 고단한지,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지 혼자 있고 싶은지, 책을 읽고 싶은지, TV를 보고 싶은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28)

당신이 찾아와 웃음 지으면, 아침이 가치 있게 느껴지거든요. (38)

앨리스는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어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꺼렸다.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예전에는 혼자인 것이 농담과 가벼운 장난의 대상이었지만, 점점 말 못 할 무게감이 더해졌다. (48)

유혹을 받아들이기란 매우 어렵다. 너무 빨리 넘어가면 헤퍼 보일 수 있고, 너무 미적대면 상대가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61)

사랑을 나누는 방식에는 우리의 성생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키스는 과거에 했던 키스들의 종합형이고, 침실에서 하는 행위에는 과거 거쳤던 침실의 흔적이 넘쳐난다. (64)

"당신이 하고 싶은 건 뭐든. 마음껏 하루를 보내자구요.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어요." (70)

앨리스가 지금 에릭을 [신중하게 말해서] 사랑하는 것일 리가 없다면, 그녀는 아마 사랑을 사랑한 것이다. (73)

토니 같은 남자가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접근하자 그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면서도, '사람을 적당치 않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아'라는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은 눌러버렸다. 그녀는 키스하기 싫어하는 게 잘못된 일일까봐 토니와 키스했다.
에릭이 이런 본능에 어긋나는 행동을 불필요하게 만들어주었기에, 이제 앨리스는 손뼉을 칠 수 있었다. (74)

앨리스는 스스로와 친구들에게 '성숙한 관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딱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극장 초대를 거절하고 자기 공간을 지키려는 남자는, 애인이 눈앞억 없으면 못 견디는 남자보다 성숙한 것 같으니까. (79)

그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이 레스토랑을 좋아하는 감정과 구조적으로 비슷했다. 다른 사람이 가치를 알아주고 탐낸다는 점이 그녀의 욕망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 다른 사람들이 갈망하는 남자가 바로 그녀를 원했다는 사실이 그녀의 허약한 자존감을 붙들어주었다. … 타인의 도움 없이도 좋고 싫은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수지에게는 부러움을 살 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는 음식 비평가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작은 폴란드 식당을 런던 최고로 꼽았고, 세상이 칭찬하거나 관심을 쏟지 않는 남자라도 사랑했다.(92)

"슬퍼서"라거나 하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 없이 그냥 울고 싶었다. 허약해진 기분이 엄습해서, 세상의 요구에 적절한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무너질 수 있는 공간을 바랐다. 다시 마음을 수습할 때까지 누군가의 품에 조용히 안기고 싶었다. (113)

그 남자는 자기 능력으로 타인의 약점을 보완해주지 못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식의 잘못을 용서하는 부모와 같은 태도를 취할 줄 몰랐다. … 에릭은 운전을 잘 못 하는 앨리스의 약점을 부모처럼 돌보지 않고, 대신 속력을 내서 달리는 편을 택했다. (127)

화장을 지우고 옷을 벗어던지면 무장 해제된 기분으로, 상처 입기 쉬운 상태에서, 애인이 자신을 비웃거나 신체적인 약점을 잡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기 몸을 불리하고, 취약하고, 사람들에게 관용을 구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지만, 그녀는 벗으면 어쩔 수 없이 움츠러들었고, 옆에 있는 남자를 믿어도 된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야 했다. (130)

에릭은 강과 숲에서 벌거벗은 채 뛰노는 것을 좋아할지는 몰라도, 감정의 벌거숭이가 되는 상황에서는 매우 다급하게 상징적인 '가운'을 찾아 헤맸다.

감정적인 벌거벗음은 남에게 자신의 약함과 모자란 부분을 드러내는 데서 시작된다.
… 내 필요를 고백할 때는 감정적으로 벌거숭이가 된다ㅡ당신이 없으면 헤매게 될 거타고, 독립적인 사람처럼 보이려 애썼지만 꼭 그렇지도 않으며, 인생의 방향이나 의미도 모르는 형편없이 유약한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내가 울면서 이야기할 때, 남들이 그 사실을 알면 끝장이지만, 나는 당신이 비밀을 지켜줄 거라고 믿는다.
… 내가 평소 자신감 넘치는 미인이 아니더라도, 당신이 내 두려움과 공포를 줄줄 꿰고 난 뒤에도 당신은 날 사랑할 것인가. (132)

관계가 진전되면 한쪽이 시간의 틀을 확장하고 싶어지고,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신 있게 "돈을 모아 내년 말에 스키를 타러 가는 게 어때?"라거나 "은퇴 후에는 유람선 여행을 할까?"라는 말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에릭이 암시하는 시간의 틀은 극도로 짧아서, 일주일을 넘어가지 않았다. 앨리스는 미래가 더 분명히 보이기를 바랐지만, 그 남자는 연대기적으로 장래에 관계되는 위험스런 일은 쏙쏙 빠져나갔다. (136)

사랑이란 일부분은 빚을 지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빚지는 데 따른 불확실성을 견디고, 상대를 맏고 언제 어떻게 빚을 갚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는 일이다. (140)

그 남자는 앨리스가 관계에 의심을 품을 때를 감지하는 촉각을 갖고 있었지만, 그 전에는 그녀의 감정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149)

그 남자는 자기모순을 알았고, 무엇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성질을 부릴 때면 그 남자는 본인이 화를 잘 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크레타인이 되었다[화를 잘 내는 사람이 "내가 성질을 잘 부린다는 걸 알아"라고 말한다]ㅡ그래서 그 남자의 잘못은 비난받을 여지가 적어진다. 그래서 앨리스는 이렇게 자문하게 되었다. '에릭이 진짜 성미 고약한 자식이라면, 자기 입으로 그렇다고 말하겠어?' 그녀는 자기 결점을 아는 것은 그 결점이 없는 것과 같다고 믿는 오류를 범했다. (154)

그 남자의 모순된 행동은 앨리스의 논리적인 이해력을 뒤흔들기에 이르렀다. 한 남자가 어떻게 그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냉담할 수 있을까? 앨리스는 두 요소 중 한 가지를 빼는 것으로 모순을 해결하려고 했다ㅡ어쩌면 그 남자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면 그 남자는 진짜 냉담한 게 아니라 단지 피곤하거나 수줍을 뿐이다. (155)

여기서는 대상 영속성이 아닌 사랑의 영속성 문제다. 이 사랑의 영속성이란 무언인가? 상대가 당장 관심의 징표나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사랑이 지속되리라는 믿음, 상대가 밀라노나 빈에서 주말을 보내더라도 다른 정인과 카푸치노를 마시거나 초콜릿 케이크를 먹지 않으리라는 믿음, 침묵은 단순한 침묵일 뿐 사랑의 종말을 암시하는 게 아니라는 믿음.
앨리스는 에릭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어머니에 대한 아기의 믿음과 비슷한 신뢰가 필요했다. 당장 보이지 않고 증거가 없어도 매달릴 수 있는 무엇인가가. (159)

평소에는 멀쩡한 사람도 사랑을 하면 편집증에 걸리고, 별별 최악의 생각을 다 한다. … 상대를 높이 평가하니 내가 버려질 가능성이 점점 커질 수밖에. (160)

그녀의 기본 감정은 항상 당신이 어떻게 날 사랑할 수 있겠어?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에릭을 신뢰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을 누군가가 오랫동안 성실하게 애정을 바칠 만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게 관건이었다. 앨리스는 에릭이 자신의 곁에 머무를 수 있을까 의심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매력을 불신했다. (163)

당신은 날 많이 사랑하지 않아라는 억압된 두려움과 내가 말도 안되는 걱정으로 당신을 괴롭히면 안 되는데라는 타고난 심리적 규범이 폭발적으로 뒤섞여 상호 작용하는 것이 애인의 편집증을 낳는 마법이다. (168)

사랑에서는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능력으로 간주된다. …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170)

스탕달은, 애인 사이에서는 언제나 한쪽이 상대방을 더 사랑하며, 그래서 두 사람 관계의 권력이 인지되기 마련이라는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양쪽이 저울의 수평을 유지할 때에만, 한쪽이 "시랑해요"라고 말하면 상대도 자연스럽게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할 때에만, 권력의 존재를 잊을 수 있다. (172)

용기를 내서 "커피 마시러 올래요?"라거나 "혹시 그 영화 봤어요?"라고 물어야 한다. 누군가가 헛기침을 하고는 "당신과 함께 있는 게 좋아요", "우리 결혼할까요?"라고 말해야 한다. 자신의 말을 권력의 저울에 올려놓고, 두려워하면서 상대방이 똑같은 무게로 다가오기를 바라야 한다. (173)

가까운 친구들은 이런 면을 놀리면서, 오늘 할 말의 분량을 다 해버렸느냐고 놀렸지막, 그 남자를 잘 모르거나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은 그의 이런 면에 위압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본인의 말주변이 부족하다고 자기 탓을 했고, 편집적인 증세를 보였다. '내가 그렇게 지루한
사람인가?'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말없는 사람은 상대의 불안을 반사한다ㅡ침묵과 마주하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죄가 발각되었다고 느끼고, 아둔한 사람은 멍청한 걸 들켰다고 생각한다. 신체적으로 위축된 사람은 못생겨서 그러리라고 여긴다. (186)

이 시나리오가 저녁 내내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앨리스는 이 시무룩한 상대에게 와인을 쏟아버리거나, 배를 때리면서 혀를 찾으러 가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기처럼 지루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걸어가곤 했다. (188)

마음이 열려 있고, 명쾌하고, 예측 가능하고 시간을 잘 지키는 애인보다는 힘들거 하는 애인이 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190)

그 남자는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여자를 이용했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의 이상형 노릇을 해야 하는 짐도 지고 있다. 상대는 그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달라고 [물론 상냥하게 에둘러서] 요구한다. 가끔 그 남자가 할 말을 잊는 것도 이해가 되는 일이다. (191)

'당신을 쫓아다니는 여자가 많다는 걸 알아요. 당신 같은 미남은 당연히 그렇겠죠' 하는 식의 노골적인 칭찬을 감당하려면 경험이 필요했다.
에릭도 앨리스처럼 허영심이 강했다. 보통은 이런 말을 들으면 좋아서 흠흠 하겠지만 그 남자는 칭찬을 들으면 어색해서 우물쭈물했다. 번화가에서 여자들의 시선을 받으면 기분 좋지만, 잠자리에서 더 직접적인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모순이 있었다.
그 남자가 곧잘 무심해지거나 딴청을 부리거나 앨리스의 전화에 응답하지 않는 것은 [예의 바르지 않은 것은 둘째 치고] 자신이 그만한 애정을 받아 마땅하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는 감상에 뜨악해서 제대로 대응을 할 수가 없었고, 상대의 애정에 받아들이기 힘든 [그리고 못마땅한] 역겨움을 경험했다. (192)

그 남자는 무방비적으로 사랑하는 그녀의 방식이 두려웠다. 그 남자는 애정을 받는 것이 거북해서, 사무실에 가서야 앨리스에 대한 감정을 끄집어내 생각했다. … 우스꽝스런 벽화 따위에는 관심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 그녀는 그 남자의 모든 말과 행동에 감탄하는 짓을 그만둘까. (194)

앨리스의 불편한 느낌은 에릭의 감정에 자신의 육체가 어떤 구실을 할까 하는 물음에서 나온다. 그녀는 그 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남자가 자신의 곁에 있는 궁극적인 이유가 육체적인 매력이 아니기를 바랐다. (200)

에릭이 장난스럽게 가슴을 칭찬할 때면, 그녀는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상식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을 위학 보상으로 여겼다. (203)

어떤 사람이 성공을 거두고, 사무실과 집, 요트를 가지고, 말을 잘하고, 미인이거나 지성을 갖추었다면 곧 누군가의 사랑을 받게 된다. 하지만 사랑에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이상적인 모범이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첫 번째 사랑은, 무력하고 약한 상태에서 보살핌을 받는 것이다.
… 그들은 침을 흘리고, 똥오줌을 누고, 토하고, 울어대고, 이기적인 존재로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는 것이다. … 그녀는 한편으로 침 흘리는 아기 노릇을 하고, 복잡하고 비이성적으로 굴고, 보채고 싶었다ㅡ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매력적이고, 재치 있으며, 떼를 쓰지 않는, 책임감 있고 성숙한 여자 노릇을 해야 에릭의 사랑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 앨리스가 자동차 회사를 옹호한 것은, 단점이 있어도 사랑받을 권리를 변호하고자 함이었다. (209)

하지만 그 남자는 직장의 불화나 친지의 병과는 관계없는, 감정의 혼란 따위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 남자는 속절없는 슬픔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분이 울적해져서 원초접으로, 비합리적인 수준으로 위로받고 싶을 뿐 다른 이유가 없는 슬픔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213)

제대로 할 줄 모르면 자기가 바보같이 느껴지죠. 그 나이에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그 일이 하기 싫으면 외계인이 된 기분이 들죠. (217)

앨리스는 생일, 축제일, 동창 모임이나 결혼식에서와 같이 당연히 행복해야 하는 때늑 늘 초조했다. 행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 일을 즐기기가 힘들었다.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감탄을 늘어놔야 하는 경우에 그랬다. 행복해야 한다고 계속 되새기는 것보다 서글픈 일이 있을까. (243)

두 사람은 거리낌 없이 화를 내고, 잠시 후에는 다시 사랑했으며, 분노와 사랑 두 가지를 다 있을 수 있는 일로 문제없이 받아들였다. (245)

눈에 보이게 굶주리고, 집이 없거나 한쪽 다리를 잃은 게 아니리면, 다른 고민은 본인이 지어낸 것이며 따라서 따지고 들 가치가 없다는 게 인간 심리에 대한 그 남자의 관점이었다. (265)

에릭과 함께하는 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그녀는 그들이 어떤 관계로 나아가는지 묻지 않았을 터였다. … 하지만 이런 의문들이 생겼을 때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에릭의 성질을 돋우고, 아침 다이빙을 취소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그녀는 머릿속에서 철벅이는, 알록달록하고 낯설고 무서운 물고기를 쫓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267)

여자들은 까탈을 부리도록 타고났다는 오랜 통념에 근거하여, 여자가 까탈을 부리는 원인을 제공하는 남자들은 면죄부를 얻었다. (268)

왜 실제 여행 경험은 그토록 기대와 다른지, 섬과 호텔이 훌륭함에도 왜 계속 혼란스러운지 의아한 까닭은, 그녀가 짐을 꾸릴 때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두고 오는 걸 잊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탠로션이며 자기계발 책, 비키니 수영복과 선글라스를 싸며서, 자기 자신까지 챙겨왔기 때문이었다. (283)

누구와 사귈 때, 사람만 달랑 올 수가 없다ㅡ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문화가 따라오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관습이 따라온다. 특정한 지역성이라고 헐 수 있는 요소가 함께 온다. 이러한 성향은 민족성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계층과 지역과 집안의 특성이 뒤섞여 구성된다. 본인은 이 무의식적인 요소들의 집합을 정상 상태로 여긴다. … 그녀가 물려받은 아버지의 취향이 남자친구의 집안 풍습과 충돌했다. … 그 남자의 지역성에는 정상의 표준 개념이 확고해서, 극장에 가는 것이나 음식, 색깔에 대한 취향, 선호하는 예법이 다를 경우 앨리스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292)

전에는 그녀가 에릭의 취향에 맞지 않는 부분은 드러내기를 꺼렸다. 가구에 대한 그 남자의 미니멀리즘 취향과 정치적 견해억 반대하는 의견을 억누르곤 했다. 다른 넥타이를 사라고 권하거나 도심에서 차를 더 천천히 몰라는 말도 삼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주장하는 일도 꺼렸다. … 그가 있을 때는 제임스 테일러의 음악을 듣지 않았다. 또 그에게 전희를 다르게 해달라는 주문도 하지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앨리스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자신의 개성을 뚜렷이 표현한 적이 있었던가 하고 자문하기에 이르렀다. (296)

옆에 있는 사람에 따라서 그녀가 다른 사람이 된다는 뜻이었다. 더욱이 그중 어떤 모습은 다른 경우보다 더 낫고 더 그녀답기도 했다. … 같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보다 더 '자신답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308)

친구들이 주로 앨리스의 단점을 놀리는 식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그녀는 일상의 강박증에서 희극적인 분위기로 전환할 수 있었다.
… 그녀는 친구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자신의 단점을 좋아해준다고 느꼈다.
그녀는 에릭하고서는 왜 비슷한 과정을 체험하지 못하는지 의아했다. 그와 만날 때는 표현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거나, 매몰차게 견해가 갈리기 쉬웠다.
… 그 남자는 앨리스의 성격을 금방 파악해서 재치 있게 대처했다. 그녀가 식당에서 늘 그렇듯이 주문할 음식을 정하지 못하고 머뭇댄 일을 놀리려고, 그 남자는 식사 중간에 웨이트리스에게 디저트 차림표를 갖다달라고 부탁했다. 시간에 맞춰 주문하려면 미리 차림표를 연구해야 한다면서. (310)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ㅡ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312)

모든 게 머릿속 생각일 뿐인지 실제로도 그런지 모르지만, 그녀는 오래전부터 그 남자와 있으면 가치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을 느꼈다. 그 남자와 함께 있는 앨리스는 돈을 함부로 쓰고, 지성적이지 않고, 감정적인 데 매달리고, 타인을 귀찮게 하는 의타심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었다.
에릭이 그런 말을 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같이 있을 때 그녀 스스로 느끼는 바가 그러했다. (313)

에릭과 같이 앉아 저녁을 먹을 때면, 적당한 상대만 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리라는 자신감을 잃고, 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ㅡ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 말하고 싶어할 수 있는 것까지 타인이 결정한다는 증거다. (317)

그날 저녁 그녀는 평소보다 에릭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평소보다 뜨겁게 사랑했다. 애정이 식은 것을 자각하지 않고자 함이었다. 어느 층위에서, 그녀는 틀림없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열정적인 사랑 행위가 가능한 걸 보면. (341)

애정을 받고도 응답할 줄 모르는 남자를 사랑하는 한 여자의 슬픈 이야기가 여기 있었다. … "그 사람이 당신을 짓밟게 놔두지 말아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당신이 문 앞의 깔개처럼 굴면, 그 남자는 당신을 존중하지 않아요" (344)

문제가 있는 사람[사랑을 받기만 하는 사람, 질투가 심한 사람, 감수성이 무딘 사람, 다른 성에 더 관심 있는 사람, 결국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사람…]을 사랑할 경우, "문제는 그의 탓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게 가장 흔한 반응이다. (364)

앨리스는 늘 밤을 그 남자의 아파트에서 지냈는데, 그것은 그 남자에게는 매우 편리하고 그녀에게는 불편한 일이었다. … 대화가 펼쳐지는 어느 지점에서, 앨리스는 자신이 가지 않으면 에릭은 자기 집에서 나오지 않으리라는 감을 잡았을 것이다. 저녁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그 남자의 욕망은 아주 작고, 분명히 그녀의 욕망보다 약했다. 그 남자는 혼자 있는 것마저 감수할테지만, 그녀는 쉽게 그러지 못했다ㅡ그래서 노력하는 일은 그녀의 몫으로 떨어졌다. (370)

더 많이 두려워한 까닭에 이기적인 길에서 더 자주 벗어난 사람은 물론 앨리스였다. 에릭은 사랑이 끝나도 개의치 않는 듯 완강했다. … 그들의 관계에서 에릭은 대부분 제 몫의 노력을 지불하는 것을 피했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앨리스가 애쓰리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남자가 10단위만 노력하면, 그녀가 나머지 30단위를 채울 터였다. (373)

그런데 지금 여기서 에릭이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한 달 전에 이 말을 들었다면 앨리스는 기뻐서 뛰었겠지만, 이제 그 남자의 눈앞에는 그 말을 한 사람 앞에서 그보다 더 냉소적일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냉소적인 사람은 너무 많이 바라고 너무 오래 기다린 사람을 뜻했다. (383)

"네가 그리워하는 건 사랑이야." (385)

앨리스는 오지에서 돌아와 아주 소박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는 여행자처럼, 독신 생활에 다가갔다. 이제 밤이면 침대를 독차지하고 팔다리를 마음껏 펼 수 있었으며,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과 만날 수 있었다. 못 읽고 쌓아놓은 책 더미도 공략하고, 저녁반 수업에 등록해서 이탈리아어를 배울 수도 있었다. 아주 평온했고, 이런 생활을 내주고 감정을 뒤흔드는 연애를 하려는 사람이 있다니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386)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지음
은행나무 펴냄

2022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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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등 남녀 간의 연애심리를 독특한 방식으로 분석한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알랭 드 보통. 그의 사랑과 인간 관계 시리즈 3부작 가운데 남은 한 편이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인다. 예전에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것을 공경희의 번역으로 새롭게 선보이게 된 것. 원제 'The Romantic Movement'.

이 책 또한 다양한 현학적 분석과 세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연애의 탄생에서 성장, 결말까지의 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해 나간다.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주인공 '앨리스'와 그녀의 남자친구 에릭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이상적 사랑이 현실 속에서 성숙해가는 모습을 재미있고 유쾌한 필치로 그려나간다.

말랑한 러브 스토리에 플라톤, 탈레스, 헤겔 등 철학대가들의 사상과 오스카 와일드, D.H. 로렌스 등 문학가들의 정의, 앤디 워홀의 예술적 의미가 절묘하게 녹아든 또 한 편의 '알랭 드 보통 표' 작품.

출판사 책 소개

이토록 흥미진진하고 지적인 연애소설은 처음 본다!
유쾌한 연애술사 알랭 드 보통이 선사하는 공감 100배 러브스토리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너를 사랑한다는 건》을 잇는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 최고의 걸작!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외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알랭 드 보통.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여러 저서 중 장르상 ‘소설’로 분류되는 것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ssays in Love》(1993),《우리는 사랑일까 The Romantic Movement》(1994), 《너를 사랑한다는 건 Kiss and Tell》(1995), 이렇게 세 편뿐이다. (괄호 안은 원서 발표 연도.) 작가의 초기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이라 불리는 이 장편소설들은 전 세계 20여 개 언어로 번역·출간되어 수많은 독자를 매료시켰으며, 자전적 경험과 풍부한 지적 위트를 결합시킨 이 독특한 연애소설들로 그는 ‘90년대식 스탕달’ ‘닥터 러브’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 중 특히 여주인공(앨리스)의 시선으로 그려진 유일한 책 《우리는 사랑일까》는 수많은 여성 독자들의 공감과 찬사를 받아온 최고의 걸작으로, 도서출판 은행나무는 보다 감각적인 표지의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선보이며 젊은 독자들의 가슴을 두드린다.
2010년에는 국내에서 이 책을 소재로 각색한 네 편의 옴니버스 영화가 제작되어 무료로 상영되기도 했다. (http://romoseoul.com/ )

당신이 꿈꾸는 가장 낭만적인 로맨스
연애의 탄생에서 결실까지, 남녀의 심리를 꿰뚫는 놀라운 통찰력

그 누가 고리타분한 연애 이야기를 알랭 드 보통만큼 세련된 감각으로 풀어놓을 수 있을까? 남녀 간의 연애심리를 독특한 방식으로 분석한 소설들로 독자들에게 널리 사랑받아온 그의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 이 책 또한 연애의 탄생에서 성장, 그리고 결말까지 알랭 드 보통 특유의 다양한 현학적 분석과 세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연애의 진행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나간다.
하지만 이번 소설 속 주인공은 바로 이 책의 주요 독자가 될 20대 중반의 커리어우먼 ‘앨리스’다. 한창 사랑에 대한 갈망과 환상으로 가슴 설레고 있을 독자들에게 앨리스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놓은 듯, 닮은 존재이다. 따라서 앨리스의 입장에서 열렬히 공감하며, 마치 마법과도 같이 그녀의 로맨스에 몰입할 수 있다.
작가는 앨리스가 꿈꾸는 낭만적 사랑과 그녀의 남자친구 에릭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이상적 사랑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성숙한 사랑으로 완성되어 가는가를 간명하고도 유쾌하게 보여준다.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사랑의 목표는 소통과 이해이기 때문에, 화제를 바꿔서 대화를 막거나 두 시간 후에나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힘없고 더 의존적이고 바라는 게 많은 사람에게 힘들이지 않고 권력을 행사한다.
스탕달은, 애인 사이에서는 언제나 한쪽이 상대방을 더 사랑하며, 그래서 두 사람 관계의 권력이 인지되기 마련이라는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양쪽이 저울의 수평을 유지할 때에만, 한쪽이 “사랑해요”라고 말하면 상대도 자연스럽게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할 때에만, 권력의 존재를 잊을 수 있다. - 171~172쪽

그는 이 책을 통해 포물선과도 같은 사랑의 경과를 보여준다. 특히 우리가 연애를 하면서 겪게 되는 소소한 심리적 갈등과 연애관에 대해 기후와 건축, 쇼핑, 종교 등 로맨스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다양한 주제들을 끌어내 분석하고 정의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장은 막연하거나 애매하지 않으며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때문에 독자들은 그들이 자신의 사랑을 성숙시켜 나가는 과정을 통해 한 번쯤 경험해 봤음직한 낭만적 연애의 실체와 허상을 발견하고, 이와 동시에 깊은 철학적 사유의 즐거움마저 얻을 수 있다.

지적 유희와 통찰력을 지닌 포스트모더니즘적 구성
이 소설은 단순히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이들로 하여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낭만주의 신파를 예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히려 폭넓은 지적 유희와 시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통찰력, 그리고 이러한 무게감을 덜어내는 신세대적 재치가 물씬 풍기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성향을 고수한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소설 속에서 앨리스를 ‘사랑의 순결한 속죄양’을 꿈꾸는 현대판 낭만주의자로 등장시킴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녀가 처한 입장에 공감하며 그녀의 사랑과 비극적이고도 한편으론 낭만적인 결말에 마음 졸이도록 만든다. 또한 문학과 예술사로부터 온갖 다양한 낭만주의 요소를 이끌어내 그녀가 꿈꾸는 갈망과 이상에 오색찬란한 아우라를 창조해낸다. 하지만 한편으로 작가는 냉철한 거리를 유지하며 아주 느린 걸음으로 ‘사랑의 서사시’를 진전시킨다.

오스카 와일드에 의하면, 예술이 생활을 모방하는 게 아니고 생활이 예술을 모방한다. 이런 당황스런 경구를 통해, 오스카 와일드는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그것은 예술이 생활보다 나은 점이 있다는, 3차원적인 애인에게 받는 키스는 영화에서 보는 키스보다 판에 박은 듯 형편없다는 것이다. 와일드의 ‘낭만적인 미학’은 토니 같은 남자들에게 그녀가 내리는 판결문과 같았다. 토니는 사무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앨리스에게 키스했는데, 토니의 입에서는 양파 수프 냄새가 폴폴 났고, 행동거지는 오랜만에 돌아온 주인을 맞아 촐랑대는 개와 비슷했다. - 27쪽

이렇듯 말랑말랑한 러브스토리에 플라톤, 탈레스, 헤겔 등 철학 대가들의 사상과 오스카 와일드, D. H. 로렌스, 플로베르 등 문학가들의 정의, 그리고 앤디 워홀의 예술적 의미가 어떻게 절묘하게 녹아 있는지 엿보는 재미만으로도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즐거움은 무한하다.

현학적 분석과 진지함의 무게를 더는 재치
알랭 드 보통의 글이 지닌 매력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가 생각하는 인물에 대한 탐구와 사상들을 표현하기 위해 기존의 소설 형식에서는 쓰이지 않는 그림과 표 등 시각적인 도식들을 자유롭게 활용한다는 것이다. 왜 소설에 그림을 넣으면 안 되는가? 오히려 이것들은 복잡한 로맨스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남녀의 심리구조를 대비한다든가 연애의 진행상황을 설명함에 있어 이보다 더 확실한 도구는 없는 듯하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추상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장 제목들이다. 그는 의도적으로 일반적이면서도 평범한 제목을 배제하고 ‘유쾌증’이니 ‘진실의 층위’니 하는 철학적인 제목들을 고집한다. 때문에 목차만을 놓고 언뜻 살펴볼 때는 마치 심리서나 전문서를 펼쳐든 느낌이다. 하지만 제목이 주는 무게감에 비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도리어 재치 있고 발랄하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라면 역시 “사랑해”라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고백을 젊은 감각을 통해 응시하는 능력이다. 이 책은 마치 ‘올바른 사랑에 대한 관점’, ‘사랑에 대한 우울증’과 같은 심리학 논문과 같다. 그가 깨달은 대로 ‘사랑해’라는 말은 질문이 될 수도 있고, 촉진제일 수도 있으며, 카드놀이에서 시작되는 패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낭만적 사랑의 진실은 수많은 연애 경험을 통해 우리가 터득해온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머리 싸매고 고민할 것 없어! 내일은 또다시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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